자연을 닮은 인공(人工), 자연을 빗댄 구상(具象)

구상화의 거장 이남찬 화백

  • 입력 2017.07.28 12:54
  • 수정 2017.07.28 15:35
  • 기자명 김병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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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처음 만들어낸 예술은 인공(人工)이기 이전에 자연이었다. 구석기인들의 때 묻지 않은 벽화에는 곰, 호랑이 등 고대인들의 바람과 자연을 닮은 구상(具象)이 있었다. 현대에도 그 예술적 기조는 변함이 없다. 광활하고 경이로운 자연을 담고자하는 인간의 따스한 마음과 이를 지배하고 정복하려는 탐미적 마음 모두 훌륭한 예술적 소재가 된다. 특히 오랜 역사를 지닌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에 입각한 구상예술세계에서 자연을 향한 인간의 변화된 자세와 삶의 태도는 새로운 발견이자 시도가 된다.

최근 구상화의 거장 이남찬 화백의 작품에서도 자연과 인간에 대한 작가의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이 화백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 인물을 개입하는 시도로 기존과 다른 새로운 구도적 예술을 꿈꿨다.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조화로우면서도 대비되는 이 오묘하고도 신선한 작가적 발상은 감상자들에게 시각적 임팩트와 함께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남찬-2016_영과 조형의 하모니. oil on canvas. 91.0x65.2
이남찬-2016_영과 조형의 하모니. oil on canvas. 91.0x65.2

풍경, 인간 그리고 삶
이 화백은 자연풍경을 즐기는 자연주의 화가로서, 이국적인 풍경을 잘 그리기로 유명하다. 특히 뛰어난 자연환경과 오랜 전통이 잘 조화를 이룬‘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풍경을 낭만적으로 잘 묘사해, 국내 예술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작품을 보는 순간, 현실에서 벗어나 마치 그림 속 풍경에 있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진다. 안정감과 역동성이 함께 나타난 그의 작품은 많은 이들을 빠져들게 한다.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한 이 화백의 작품에서는 순박한 표정의 유목 민들과 자유로운 모습의 가축들이 어우러진다. 3,000m가 넘는 고산지대의 광활한 대자연은 이들의 모습을 더더욱 평화롭게 만든다. 이 화백은 외국여행을 다니며 마주친 이국적인 풍경에 매료되어,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중국과 히말라야, 베네치아 등의 이색적인 풍경이 이 화백의 작품 속에서 아름답게 펼쳐진다.

중국 여행을 다룬 작품 역시 이 화백의 섬세하고 안정된 묘사가 잘느껴진다. 전통적인 복식과 옛 생활풍습을 이어가는 현지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새롭게 지어진 현대식 건축물들의 대비는 감상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첨단 문명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잊어진 전통의 모습은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과거에 대한 짙은 향수를 느끼게 만든다. 또한 장기를 두는 노인, 베란다에 뜨개질하는 여인, 수상가옥의 노인 등 가난하지만 과거의 모습을 고이 간직한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되뇌어보게 한다.

이남찬-거리의저녁_91x65.2cm_oil on canvas_2016
이남찬-거리의저녁_91x65.2cm_oil on canvas_2016

이 모습은 이 화백의 대표 작품 소재인 베네치아에서도 잘 드러난다. 맑은 운하를 따라 펼쳐진 베네치아의 모습은 중세 시대 배경으로 한 동화를 연상케 하듯 꿈같은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골목골목마다 베네치아를 상징할만한 풍경과 모습으로 베네치아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든 다. 밝은 태양 빛을 떠오르게 하는 노란 색채감은 더욱 베네치아 모습을 낭만적으로 만든다.

특히 이 화백의 이번에 선보인 <베네치아의인상>과 그의 대표작인 <추억의 베네치아(300호)>는 유화의 세계를 한층 더 위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은 나룻배 위에서 펼쳐진 중세를 간직한 베네치아의 오래된 건축물은 상상 속 꿈의 도시를 연상케 한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이태리 국기의 섬세한 표현은 생동감마저 느껴지게 만든다. 하지만 이에 대비해 물에 비친 일그러진 베네치아의 모습은 앞으로 영영 수면 밑으로 사라질지도 모를‘베네치아의 유한성’을 암시 하는 듯하다.

이 화백은 종종 자신의 그림 속에 나타나곤 한다. 때로는 배 위에 앉아있는 관광객 중 한명으로, 때로는 거리의 포스터 속에서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화백의 그림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작품 속 그를 만나는 과정이 또 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이남찬-베네치아의인상 162.0x97.0 oil on canvas 2001
이남찬-베네치아의인상 162.0x97.0 oil on canvas 2001

미술계의 따가운 시선, 그리고 도약
이 화백은 고등학교 재학시절 국전에 입상하는 등 일찍이 미술에 대한 재능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단순히 타고난 재능으로만은 불가능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수십만 시간의 연습과 수련 없이는 불가능했다. 심지어 이 화백은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몇날며칠을 밤을 꼬박 새워가며 완성하는 등, 지금도 작품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원로 화가들과 달리 쉽게 작품을 완성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습에 이 화백은 우리 미술계의 앞날을 크게 걱정했다. 이 화백은 ‘그림에 완성이 없다’는 말을 항상 가슴에 새기며 회화 연습에 매진해 온 원로 세대들과 달리, 어느새 우리 예술계가 새로운 소재와 발상에만 몰두한 나머지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고 유행만 좇는 풍조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했다.

이 화백은 “미술의 기본은 회화입니다. 부단한 노력 없이 요행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지금의 풍조는 우리 예술 사조를 발전이 아닌 저해 아닌 요인 중 하나입니다. 항상 작품의 안정적인 구도와 부단한 연습, 이 기본에 충실한 작품을 추구할 때 새로움과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라며 꾸짖었다.

더불어 이 화백은 구상과 추상이 구분된 지금의 미술대전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화백은“유럽의 여러 미술대전은 구상과 추상예술이 함께 전시돼, 구상예술가들은 추상예술가들을 통해 작품의 영감을 얻고, 추상 화가들은 구상 화가의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기본을 되새기게 해 예술계의 전반적인 발전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전시회와 미술대 전은 서로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습니다”라며 설명했다.

이남찬-축제_30호P(91x65.2cm)_oil on canvas_2009
이남찬-축제_30호P(91x65.2cm)_oil on canvas_2009

또한 이 화백은 우리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술가들이 새로운 발상과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은 작품 활동을 이어가기에 여유롭지 못하다. 비싼 대관료를 시작으로 캔버스, 유화, 붓 같은 작품 도구를 손수 마련하고 나면, 개인전이 끝난 후 빚더미에 앉기 십상이다. 과거와 달리 정부의 지원과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심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점 역시 현실이다.

이 화백은 “우리 미술계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 화가들 역시 유행과 관습을 따라가는 풍토를 지양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미술계를 바라보는 일반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지원이 많이 필요합니다”라고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했다.

한편 이 화백은 오는 8월 18일에서 27일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개최되는“KOREA LIVE Art Fair”의 작품 출품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프랑스 ‘Association Culture Coréenne’ 협회가 주최하며, 수준 높은 한국의 문화와 회화세계를 유럽에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머나먼 땅 프랑스에서도 이 화백의 열정이 다시 한 번 세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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