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으로 쌓은 믿음과 열정의 중요성

주식투자의 귀재 도성 박영두 대표

  • 입력 2017.07.27 09:17
  • 수정 2017.07.27 12:16
  • 기자명 김병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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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처럼, 때론 시련은 우리의 인생을 더욱 강인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주식투자의 귀재, 도성(도전 없는 성공없다)의 박영두 대표가 그 예다. <조선일보>, <헤럴드경제>, <시사뉴스타임> 등 여러 언론매체에서 주목을 받고, 미래경영대상, 신한국인대 상, 이코노미대상, 경기도의회 의장 표창 및 최근 국회의원 우수기업 표창까지 수여한 주식전문가로 소문난 박대표 역시 항상 잘 닦여진 도로 위만 달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40여 년의 세월 중, 무려 30년 넘는 시간을 남들 보다 더 숱한 고통과 시련을 헤쳐 나가야만 했다.

가난한 집, 끊임없는 좌절 속에 피어난 ‘열정’
박 대표는 유년 시절 20여 곳을 이사를 다닐 만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숱한 좌절 속에서도 부모님은 5식구의 생계를 위해, 새벽같이 노점상을 꾸리며 부지 런히 일해 왔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농가의 7남매 중 장남이었기에, 그 아래 6명 동생들의 시집과 장가를 책임져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시련 속에서도 그의 가족에게 불행은 계속 이어졌다. 전세자금으로 힘들게 마련한 ‘1,000만 원의 희망’이 어느 목사를 사칭한 사기꾼에 의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을 때, 박대표의 아버지는 자살을 결심할 만큼 낙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불행 속에서도 박 대표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던 해, 그는 비싼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학교 태권도 선수를 자진했다. 지역 우승 시 장학금을 준다는 말을 듣고, 부모님의 근심을 덜어주 고자 한 박 대표의 결정은 3년 내내 지역 내우승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덕분에 박대표는 중학교 3년을 등록금 걱정 없이 다닐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그는 대학특기생으로 쉽게 대학에 갈 수 있을 뿐아니라, 3년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경기 에어로빅’으로 종목을 바꿔 등록금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진로 변경으로 아버지와 갈등을 빚었으 나, 박 대표의 의지와 열정이 남달랐기에 끝내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었다. 또한 고3 시절, 지금의 아내를 만나 미래를 함께할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녹록치 않은 사회, 터무니없는 주식투자
고등학교 졸업 후 박 대표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대학이 아닌 사회로 뛰어들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김밥을 만들어 팔고 오전 9시 에는 신발장을 만드는 파랑새 가구공장에 출근해 일했다. 오후 6시 일과가 끝나고 나서도 다음날 김밥장사를 위해, 재료 구입 및손질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박 대표 아내 역시 식당에서 지문이 없어질 만큼 일을 하며, ‘보증금 200만 원 월세 25만 원’이 라는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그 덕분에 박 대표의 손에는 3,000만 원이라는큰 목돈이 쥐어졌다.

애석하게도 박 대표 부부의 결실은 단 30일 만에 200만 원으로 다시 곤두박질쳤다. 박대표의 중학교 동창인 주식투자가의 말을 듣고, 아무 생각 없이 투자한 주식이 화근이 됐다. 이 사건 이후 박 대표는 한동안 속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심지어 죽을 생각까지 하기도 했으나, ‘아직 젊으니 다시 시작하자’는 아내의 깊은 마음을 듣고 박 대표는 이전보다 더 열심히 살기로 결심한다.

잠 못 이루며 배운 주식공부, 남부럽지 않은 자산가로 만들다.
이후 그는 이전의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 더열심히 일했으며, 틈틈이 주식투자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학창시절부터 남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승부근성이 박 대표를 더욱 채찍질했다. 그렇게 공부하면서 박 대표는 단기투자의 달콤한 유혹보다는 기업의 성장 가치를 파악해 투자하는 장기투자가 훨씬더 가치 있고, 고부가가치의 투자임을 깨닫 는다. 예컨대 2007년 1월 1,000원대 막 상장한 ‘후성’에 투자하라는 그의 일화는 지금도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시 생소했던 탄소배출권에 대해 박 대표는 높게 평가 하며, ‘후성’이 몇 년 뒤, 8,000원 대까지 오를 거라고 장담했다. 그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탄소배출권이 매스컴에 터지면서 후성의 주가는 7,000원대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더불어 한때 2만 원대였던 컴투스 주식을 스마트폰 게임의 활성화를 예측해 강력히 추천했으며, 지금 118,0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박 대표는 기업의 성장을 바라보는 뛰어난 투자 솜씨 덕분에, 800만 원으로 다시 시작한 주식이 5년 만에 수억 원대의 가치로 성장해 있었다. 박 대표의 성공신화와 뛰어난 주식투자 솜씨는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를 통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으며, 그에게 자문하는 이들의 수도 점차 늘어났다. 그리하여 박 대표는 자신의 재능을 조금이라도 기부하자는 취지로 도성이라는 인터넷카페를 만들게 되었고, 지금은 어플회원을 포함한 정회원 수 3만 5천여 명이 넘는 카페로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후 회원 수가 수만 명에 이르자 믿고 따르는 회원들 위주의 지금은 어플리케이션 <주식투자 도성>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주식 투자의 성공 열쇠 :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열정과 믿음
끝으로 박 대표는 미래의 ‘도성’을 꿈꾸며 도전하는 이들에게 “주식 투자의 성공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열정과 자신이 산 주식에 대한 믿음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라며 강조했다. 덧붙여 “도전 없는 성공 없다는 도성의 이름처럼,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끊임 없이 도전하는 열정적인 삶을 살다 보면, 끝내 좋은 결과가 찾아올 것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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