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칼럼] 틈의 독서_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독서 추천

  • 입력 2017.06.29 18:13
  • 수정 2017.06.30 10:52
  • 기자명 김나영 대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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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여행의 계절이다. 지친 직장인들에게는 기다리던 휴가의 시간이고 대학생들에게는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바다로, 산으로, 때로는 방으로 떠나는 이들의 계획은 저마다의 설렘으로 가득 차있다. 푸른 바다와 산, 그리고 안락한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휴식이 마침내 도래한 것이다.

‘틈’의 시간은 여행을 하는 중에 만나는 잠깐의 휴식과 같다. 즐거운 여행이라도 계속되는 일정에는 지치기 마련이다. 이 ‘틈’은 여행을 하면서 꽤나 자주 만날 수 있는 순간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이나,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 잠이 오지 않는 여행지의 밤과 잠깐의 티(tea) 타임 등 모든 순간 속에 ‘틈’은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익숙지 않은 곳에서의 독서는 이미 읽어본 책이더라도 전혀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바다에서 읽는 것과 방에서 읽는 것이 다르고, 밤에 읽는 것과 낮에 읽는 것 또한 다르다. 출근 시간 만원 전철에서 읽는 것과 집에서 온전한 나만의 시간에 읽는 것 역시 차이가 크다. 그러므로 여행지에서의 독서는 여행 속의 또 다른 여행이라는 색다름을 안겨주기도 한다.

7월을 앞두고 여행을 준비하는 히치하이커들의 ‘틈’을 위해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도서 네 편을 추천하고자 한다.

이상한 의사의 유쾌한 처방! <오쿠다 히데오-인더풀>

『인더풀』, 오쿠다 히데오, 양억관 옮김, 은행나무, 2005
『인더풀』, 오쿠다 히데오, 양억관 옮김, 은행나무, 2005

『인더풀』은 2004년『공중그네』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오쿠다 히데오의 장편 소설로『공중그네』와 더불어 오쿠다 히데오의 유머를 한껏 만날 수 있는 유쾌한 작품이다. 정신과 의사인 이라부와 간호사 마유미, 그리고 흔하지 않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그린 작품으로 오쿠다 히데오의 대표 작품이자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소설은 이라부의 병원을 찾는 이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한 걸음 나아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쩌면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을 오쿠다 히데오는 개성적인 인물들과 예측하기 힘든 사건을 보여줌으로써 오쿠다 히데오 식의 소설로 재 탄생 시킨다. 정신과 의사이자 이라부 종합 병원의 후계자인 이라부는 항상 “후후후”하고 웃으며, 상담하기도 전에 주사를 먼저 놓는 주사 페티시가 있다. 간호사 마유미는 무감각한 표정으로 항상 환자가 오건 말건 잡지만 본다. 지하에 자리한 이 음침하고 이상한 정신과를 찾는 이들 역시 범상치 않다. 스토커가 자신을 따라다닌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연예인 지망생과 발기가 멈추지 않는 회사원, 수영 중독에 빠진 남자와, 휴대폰 문자 중독으로 손을 떠는 10대, 걱정 때문에 집을 나서지 못하는 기고가까지 이들 역시 이라부만큼이나 개성적인 인물들이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이 있다. 이는 ‘유희의 인간’을 뜻하는 말로 바꿔 말하면 ‘놀이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오쿠다 히데오의『인더풀』은 모든 호모 루덴스들에게 가장 적합한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책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적인 인물들과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 거기에 오쿠다 히데오만의 필력은 오쿠다 히데오가 일본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이유를 설명한다. 여행 중 지치거나 지루한 ‘틈’에는『인더풀』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헤어날 수 없는『인더풀』속에서 잠시나마 피로와 지루함을 잊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다시 삶의 유예를, <하야마 아마리-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하야마 아마리, 장은주 옮김, 예담, 2012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하야마 아마리, 장은주 옮김, 예담, 2012

드라마 <미생>에서 안영이가 읽은 책으로 알려진 하야마 아마리의『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는 작가인 하야마 아마리가 자기 스스로에게 1년이라는 시한부를 선고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1회 일본감동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담아낸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으며,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변변한 직장도 없이 파견사원으로 일하는 아마리는 스물아홉 생일을 자축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딸기 케이크를 산다. 누구도 함께하지 않은 그녀의 외로운 생일에 그녀는 혼자인 것에 익숙하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마침 자축하기 위해 산 딸기 케이크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고, 그녀는 처참하게 떨어진 딸기 케이크를 보며 그녀의 세상이 무너짐을 겪게 된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모든 것들이 사소한 일 하나로 마침내 깨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녀는 자살을 결심하지만, 막상 시도하지는 못한다. 자살을 하지 못한 아마리는 한 가지 결심을 한다. 라스베이가스에 가서 인생을 즐긴 후,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에 죽기로 말이다. 아마리는 라스베이가스를 위해, 그리고 스스로의 죽음을 위해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라스베이가스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위해 돈을 모으고, 다른 것이 아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삶을 설계하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카운트하면서 살아가는 순간에서야 진정으로 본인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책 속에 나오는 아마리는 우리 세대의 모습과 닮아있다. 파견사원, 교류하지 않는 외톨이, 낮은 자존감, 희망 없는 미래, 하고 싶은 것이 없는 무기력함까지. 이 모든 잔상들이 책을 읽을수록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미생>이 우리의 시대를 보여준 드라마라면,『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는 우리의 자화상이라 말할 수 있다. 우울한 밤, 까마득한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면『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이면의 일생, 하루의 하루들 <김현영-하루의 인생>

『하루의 인생』, 김현영, 자음과 모음, 2012
『하루의 인생』, 김현영, 자음과 모음, 2012

하루살이는 유충일 때 1년에서 3년을 살고, 성충이 되어서는 입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하루 내지 일주일 이내를 산다.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르게, 단 하루만을 사는 것은 아닌 셈이다. 김현영 작가의『하루의 인생』은 2008년부터 3년간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들을 묶은 단편 소설집으로, 모든 존재의 하루(日)들을 단편으로 보여주며 농축된 하루(日)의 향을 풍긴다.

소설은 존재들의 시선으로 이루어진다. 어느 음악가의 시선은 이어서 벼룩으로, 벼룩은 곧 달리는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로, 이내 사이드미러에 치인 말벌로 시선을 바꿔가며 존재들의 순간을 보여준다. 또한 평행 우주 속 서로를 연기하는 존재들과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지점들을 보여주며 작품은 모든 인생의 하루에 대해 넌지시 질문을 던진다. 마침내 전혀 다른 단편이라 생각했던 내용들이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는 결국 모든 것이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제목인『하루의 인생』이 왜 “하루의 인생”인지 깨닫게 된다.

김현영 작가의 네 번째 작품이기도 한『하루의 인생』은 김현영 작가의 철학이 가득 담긴 케이크와 같다. 달콤한 향과는 다르게 한 입 베어 물고 씹을 때면 풍기는 맛은 지독한 고독과 참을 수 없는 갈증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책은 쉽게 덮을 수 없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나 수려한 문체와 특유의 분위기는『하루의 인생』만의 독보적인 매력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른 새벽, 잠이 오지 않을 때, ‘나’에 대해 혹은 ‘삶’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면『하루의 인생』을 추천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 기억의 진실 <김영하-살인자의 기억법>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문학동네, 2013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문학동네, 2013

10년, 아니 5년만 지나도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모두가 김영하 작가를 꼽지 않을까? 김영하 작가는 1996년『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등단, 이후『오빠가 돌아왔다』,『퀴즈쇼』,『빛의 제국』,『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등의 작품으로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다. 특히나『살인자의 기억법』은 영화로 개봉될 예정이라 많은 이의 기대감을 한 몸에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은 26년 전 살인을 끝으로 은퇴한 70대 노인이 된 남자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건망증이 심해진 노인은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은 이후로 모든 것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노인은 자신의 기억과 맞서지만 기억은 자꾸만 소각된다. 노인은 조금의 기억이라도 더 지니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그의 딸을 위해서 말이다. 어느 날 수상한 남자가 나타나고, 노인은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수상한 남자에게서 나는 자신과 같은 향기를 말이다. 남자는 노인의 딸에게 계속해서 접근하고, 노인은 처음으로 충동에 의하지 않은 살인을 생각한다.

소설은 스릴러의 향을 품는 것과 별개로 매우 담담한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긴박한 대사나 묘사 없이도 그저 툭 던지는 말들이 모든 것들을 서늘하게 만든다. 은퇴한 연쇄 살인자와, 새롭게 나타난 연쇄 살인자라는 소재를 김영하 작가는 자극적이지 않게 사용한다. 결말에 이르러 모습을 비추는 반전에도 시종일관 유지하는 담담함은 부서지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기 때문에 반전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무더운 여름, 그늘 같은 서늘한 전율을 느끼고 싶다면『살인자의 기억법』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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