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술’을 그리다

  • 입력 2013.06.11 14:01
  • 기자명 조성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미술’을 그리다

‘모딜리아니’를 품은 영화 <종횡사해>

영화예술은 태생적으로 ‘회화적’이다. 때문에 영화는 시각예술의 근본이자 모체인 ‘미술’과 일정 영역을 공유하며 발전해왔다. 특히 20세기 초 독일표현주의 영화들은 ‘미술’에서 그 모티브를 직접적으로 차용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사조였다.
영화사상 많은 영화들이 ‘미술’의 영향을 드러내거나 심지어 직접적으로 ‘미술작품’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등 시각적으로 차용하기도 했다.
오우삼 감독의 1991년 작품 <종횡사해>는 오우삼 특유의 허무주의와 강도 높은 폭력 신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작품이다. 반면 <종횡사해>에는 화가 모딜리아니의 숨결이 영화 곳곳에 배어 있는 아름다운 영화이기도 하다.

모순 속 현실을 초월하고픈 ‘욕망’
<종횡사해>에 배경으로 채색되는 모딜리아니의 그림들은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느낌을 결정해주는 ‘모티브’가 된다.
유태계 이탈리아인이었던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그는 일평생 빈곤과 궁핍에 허덕이며 살았던 불운의 천재 화가였다. 길지 않은 생애 동안 모딜리아니는 비평가와 세인들로부터 철저히 소외돼 큰 고통을 받았던 예술가의 전형이었다.
술과 아편, 방탕하고 무절제한 생활들로 짧지만 강렬한 인생을 살았던 그는 ‘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로 분류되는 표현주의자 그룹의 일원이었다. ‘에콜 드 파리’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파리의 몽파르나스를 중심으로 활동한 예술가들이 모인 집단으로 모딜리아니, 샤갈 등이 주축이었다.
모딜리아니가 표방한 ‘표현주의’는 예술의 진정한 목적을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출에  뒀다. 그리하여 회화의 선, 형태, 색채 등은 그것의 표현가능성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균형과 아름다움에 대한 전통적인 회화적 개념은 보다 강렬한 감정의 전달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됐고 표현주의에 있어 대상에 대한 ‘왜곡’은 주제와 내용을 강조하는 주요한 수단이 됐다.
모딜리아니는 내면의 갈구가 확연히 드러나는 ‘멜로드라마적’인 초상화들로 유명한 화가였다. 전체적인 구도 상 잘 짜이고 균형 잡힌 그의 작품들은 조국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대가들과 세잔의 영향 하에 있었다.
운치와 매혹, 섬세함과 절제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그의 초상화들은, 넓은 평면과 깊은 색채감들로 화면을 구축했고 또한 미학적 아름다움이나 정서적 고양을 위해 형태를 왜곡해 ‘사실주의적’ 흐름으로부터도 벗어났다.
야수파가 강렬한 느낌의 색채를 강조한 반면 모딜리아니의 주된 관심은 깊은 운율을 주는 선이었고 비인간화를 추구하는 입체파의 정신은 강렬한 정서를 표현하는 그에겐 너무나 지적인 무엇이었다.
모딜리아니가 영국인 저널리스트였던 첫 번째 연인과 헤어진 후 만난 그의 영원한 반려자 쟌느 에뷔테른느는 모딜리아니의 수많은 초상화의 모델이 됐다. 결핵의 합병증으로 서른다섯의 젊은 모딜리아니가 운명한 다음날 그녀는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모딜리아니를 담은 <종횡사해>의 시각적 쾌
당연한 이야기지만 쟌느 에뷔테른느를 꼭 빼어 닮은 모딜리아니 초상화의 인물들은 백조 같은 긴 목, 고양이 눈 형태의 그윽하고 아름다운 눈, 주걱 모양의 살짝 뒤틀린 코, 수줍은 듯 오므린 입과 가면 같은 평면적인 얼굴로 흡사 나무기둥 모양을 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런 인물들은 특유의 텅 빈 벽을 배경으로 고전적인 견고함과 대담함을 담지하고 있다. 자연주의와 추상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하는 한편, 자유자재로 대상을 과장하고 왜곡함으로써 자연으로부터의 독립을 표방한다.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은 이렇듯 재현적(再現的)이며 동시에 비재현적이다. 그는 그림이란 어떤 질서에 의해 모여진 색채로 덮인 평면이라는 순수주의자들의 요구를 충족시켰을 뿐만 아니라 화폭에 인간적이고 성적이며 사회적인 의미를 풍부하게 함축시켰다.
<종횡사해>에서 차용된 모딜리아니의 색깔은 전체적으로 이 영화의 톤을 담백하게 이끈다. 미국영화 <엔트랩먼트>의 스토리라인을 따르는 <종횡사해>에서의 모딜리아니의 변용적 이미지는, 미술품을 훔친다는 전체 얼개를 통해 관객들에게 풍성한 시각적 볼거리를 제공한다.
셈 페킨파에게 영향을 받은 오우삼의 <종횡사해>는 특유의 안무 같은 슬로모션, 휠체어를 탄 주윤발과 종초홍의 댄스가 관객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될 만큼 인상적이다. 이 영화에서도 예외 없이 황당한 상황설정과 과장된 로맨티시즘이 되풀이되지만 이는 역시 소소한 웃음을 주는 홍콩 무비 스타일 특유의 유머라고 할 수 있다.
오우삼의 홍콩 누아르에 등장하는 비극적인 영웅들은 사회적 음지를 활동무대로 하는 비주류의 시대착오적인 낙오자들이라는 측면에서 모딜리아니의 불행한 삶과 묘한 정서적 공감대를 만든다. 더불어 비장미마저 느끼게 하는 극렬한 폭력신이 난무하더라도 그의 영화는 인간적 감정이 배어나오는 모양이 모딜리아니의 초상화들과 너무나 닮아있다.
모딜리아니의 사망 이후 1920년 프랑스의 언론은 그에 대한 추모기사로 넘쳐났다. 빈곤과 모순에 가득찬 삶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과 예술적 초월에의 욕망으로 점철된 모딜리아니의 생애는 진정한 예술가의 초상이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