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발자취, 우리가 물려줘야 할 미래의 자산

<운산역사기행-현장을 가다>의 저자, 운산 박순진 법무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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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단순한 과거가 아닌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는 거울이다. 위대한 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란 과거와의 대화’라는 말처럼, 우리는 지난 역사를 되짚어 봄으로써 민족의식의 고취와 함께, 미래를 향한 잣대를 가늠해 볼 수가 있다.

운산 박순진 법무사 역시 그러한 점에서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법무사는 지난 4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우리의 옛 성현들의 정신이 깃든 역사현장과 문화유적지를 여러 차례 방문하며, 과거의 흔적에 귀 기울였다. 그 노력의 결과 역사 기행시집인 <운산여행기행-현장을 가다>의 집필을 완료할 수 있었다. 더불어 현재 그는 자신의 책이 전국의 모든 학교에 보급돼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역사의식 고취에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다.

역사의식의 고취, 우리 최고의 문화유산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와 역사를 좋아하는 문학청년이었다. 특히 <이산 김광섭>시인의 시 ‘나의 사랑하는 나라’를 가장 좋아했던 그는, 오래전부터 분단의 아픔과 비극적인 역사 현실에 대해 가슴 아파했다. 더욱이 대학시절 본격적으로 역사를 공부하게 되면서, 박 법무사는 문화유산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그 소중함을 깨닫고 그 보존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해왔다. 그러한 고민 속에서 조상의 발자취를 따라 역사현장을 탐방하는 일은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며 역사기행의 소회를 말하고 있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선사가 역사집필을 위해 전국 곳곳을 탐문했듯, 저 역시 역사현장을 돌아보면서 선조들의 삶의 양식과 그 지혜를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정확한 실측을 위해 험악한 백두산을 7번이나 올랐던 <고산자 김정호>와 같이, 우리 역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옛 성인들의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좇다 보면, 우리 민족이 얼마나 위대한 문화유산을 가진 민족인지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근 60여 년간, 우리 민족은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역사의식 고취와 문화유산 보존을 등한시 해왔다. 오로지 ‘경제적 풍요’에만 몰두한 나머지 ‘정신적 유산’을 도외시 한 채 불균형적인 외적 성장을 계속 이어왔다. 그 결과 현재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선진국 대열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지고 상대적 빈곤은 더 심각해진 상태다. 심지어 몇몇 청년들은 상대적 빈곤감을 회피하기 위해 ‘혼밥’, ‘혼술’이라는 생활 패턴을 추구하고 스스로 사회와의 단절의 길을 택했다. 이에 대해 박 법무사는 무제한적 지식경쟁에만 치우친 현재의 파행적 교육시스템을 바로 잡고, 자신과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전인적 교육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바른 역사 교육을 제안했다. 

“50~60이 된 우리 부모 세대가 오로지 경제적 빈곤만 해결하면 된다는 근시안적 사고로 정신적 유산을 남기지 못한 것이, 지금의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이에 따라 급격히 다가오는 공동체의식의 약화는 세대 간의 갈등을 더욱 깊게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 해결책으로 청소년들로 하여금 역사현장의 문화유산을 몸으로 체득하여 호연지기를 기르게 하고 체험학습 중심의 역사교육을 할 것을 제안합니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역사교육을 통해 ‘올바른 국가관’을 형성하게 할 뿐 아니라 청소년들과 아이들에게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교육은  훗날 그 나라와 그 민족을 지탱할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도 경제발전에 걸맞은 문화역량을 길러 세계 속의 한류문화를 정립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왜곡된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의 풍조를 극복하고 이 나라를 지켜온 선인들의 발자취를 잘 새기고 가다듬어 우리 시대에 맞는 시대정신을 확립하여 다음 세대에게 물러줘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운산역사기행은 우리의 주체성과 자존감을 갖추고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차세대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읽을거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현들의 발자취를 따라 쓴 기행시 : <운산역사기행>
박 법무사는 4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전국의 명승지, 유물,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떠오른 생각과 그 문화유산에 얽힌 역사적 배경을 정리해왔다. 동시에 새로운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같은 곳을 몇 번이고 다시 방문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한 그의 노력의 결정체가 바로 <운산역사기행-현장을 가다>이다. 

이 책은 박 법무사가 직접 답사하고 느낀 기행시 109편으로 이뤄진 시집이다. <삼국유사>와 같이 역사 현장에 얽힌 이야기를 토대로, 그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적은 서사시(敍事詩)이다. 더불어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독자를 향한 작가의 질문을 담은 글이다. 

더 나아가 그는 올바른 역사의식의 정립과 그 의식의 고취를 통해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이 책에 담았다. ‘단, 하루라도 통일된 나라에서, 선진 시민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그는, 삼국통일 후 통일신라가 펼쳤던 문화융합운동과 같이 남북을 아우르는 민족적 자존감을 우리의 문화유산에서 찾고 우리의 올바른 역사의식을 정립하는 일이 곧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강력히 믿으며 이를 실천하고 있다. 

내 인생의 은사 : 장인 금종우, 아내 금순옥 
박 법무사는 <운산역사기행-현장을 가다>를 집필하는 일 뿐 아니라 그의 일생을 살아가는 데, 소중한 인연으로 자신의 장인인 고(故) 금종우 교수와 아내인 금순옥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장인어른인 금종우 교수는 때론 어버이처럼 자상하게 때론 도학자처럼 근엄하게, 그를 항상 바른 길로 인도해줬다. 모질게 꾸짖기보다는 인생의 선배로서 따뜻한 조언으로, 그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장인어른이 작고한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박 법무사는 장인어른이 한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자신의 삶의 지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평생 학자이셨던 장인어른의 그림자를 따라 조금씩 써온 글들이 지금의 책으로 나올 수 있었다며,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았다. 

그의 아내 역시 박 법무사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잘 다니고 있던 은행을 갑작스럽게 그만둔 박 법무사에게 핀잔보다는 그가 가고자 하는 길에 묵묵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현재 그가 소신을 가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살 수 있었던 것도 아내의 믿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내비쳤다.      

     

올바른 역사교육이 통일을 향한 지름길 
현재 박 법무사는 <운산역사기행>이 전국의 학교와 도서관에 교양서로서 보급되길 바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책이 학생들에게 역사현장 교육을 통해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하고 정서 함양을 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또한 일반 독자들 역시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양식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문화역량을 드높여 한류문화 확산에 영향을 미치기를 희망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그는 우리 한반도의 통일을 꿈꾸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법무사는 “우리 청년들에게 우리의 문화유산을 답사하며 이 땅을 지켜온 훌륭한 선조들의 발자취를 되새기고 선인들에 대한 긍지를 갖게 하는 교육은 곧 ‘우리 조국’과 ‘우리 땅’을 사랑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이는 곧 우리 민족의 통일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라며 가슴 깊이 품어왔던 자신의 바람을 역설했다. 희망찬 내일을 향한 박 법무사의 도전이 그의 책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메아리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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