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칼럼] '두 발로 유럽 횡단' 한 청년 김동하 씨 이야기

4,017km의 유럽 대륙을 도보로 횡단한 대한민국 청년 김동하 씨 이야기

  • 입력 2017.05.31 17:09
  • 수정 2017.06.19 14:18
  • 기자명 이루리 대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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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걸어갈 땅이 없습니다.’ 여기 4,017km의 유럽 대륙을 도보로 횡단한 대한민국 청년이 있다. 김동하 씨(24)는 2016년 5월 24일부터 인천에서 출발해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거쳐 벨라루스, 폴란드, 체코, 독일을 걸었고, 프랑스에서는 순례자의 길이라 불리는 셍쟝 삐에 드 뽀흐를 걸었다. 

이후 최서단인 포르투갈의 호까곶에서 그의 여정은 끝났다. 유럽 여행은 한국 대학생들이 졸업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4100km를 걸어서 횡단하겠다며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해 소규모 후원이나 투자 등의 목적으로 인터넷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 다수의 개인들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행위)으로 여행 경비의 반을 충당했고, 텐트와 침낭을 포함해 26kg의 짐을 들고 유럽 땅을 걸어서 횡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행 중에 느낀 고독함, 육체적 결핍 중에서도 묵묵히 완주하는 모습, 또 여행 중에 그가 만난 사람들과의 따듯한 소통을 담은 자신의 여행기를 SNS에 올리기도 했는데, 그 특유의 담백하고 솔직한 이야기는 때로는 대리만족을, 때로는 위로를 전해주면서 많은 청춘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 한국 나이 26살, 대한민국의 청년이라면 취업을 목전에 두고 스펙이라는 것을 쌓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여행의 시작점이 된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김동하 씨는 약 1년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유럽을 도보로 횡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약 6개월간의 여행에 앞서 일정 비용을 후원을 받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비슷한 계획을 가지고 후원을 받은 사람들은 나름 SNS에서 유명인사이거나, ‘여행스펙’이 이미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대학생이고 이뤄낸 업적도 없는 스스로가 작아 보였지만, 그는 오히려 “일반 사람도 펀딩을 받아서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도전의 장벽을 낮추고 싶었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개시하고 마감일까지 2주일 남은 상태에서 여전히 후원금액은 목표액에 한참이나 미달됐다. ‘저 4,000km 걷는데 저 좀 응원해주세요’라는 한 마디를 하는 것이 부끄러워지고, 어느샌가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주변 사람과 스스로에게 이 일이 얼마나 어려웠던 일인지 합리화하기 위한 문장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학점 평균 3점에 만년 휴학생‘의 자신이지만 이미 생각만 했던 꿈들을 이미 현실로 만들어가며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더 이상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자신의 도전을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보자. 그러면 어떻게든 무언가를 얻게 될 것이니.” 2016년 5월 20일, 그는 결국 출국을 4일 앞두고 크라우드 펀딩을 성공시켰다.

도보여행으로 ‘정신적 지구력’ 키워
걷기 여행의 시작은 사소한 우연들로부터 시작됐다. 22살 때 군대에서 2-3km 정도 행군을 하면서 문득 40km를 걷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보았고, 전역 후에는 정말로 그 거리에 해당하는 성북구에서 분당까지 무작정 걸어봤다. 그는 새벽에 분당에 도착했을 때 “묘한 성취감과 희열을 느꼈다”라고 전했다. 이렇게 우연한 계기를 시작으로 그의 가슴 속엔 걷기 여행의 씨앗이 뿌려졌다. 유럽에 가기 직전에는 제주 올레길과 서울에서 목포에 이르는 구간을 걸었다. 모두 약 400km나 되는 거리이다. 그에게 도보여행의 매력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반복’에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걷기의 반복을 통해 지루함을 이겨내고 자기극복과 인내를 통해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곧, “지치지 않고 한 가지 일에 열중할 수 있는 정신적 지구력을 기를 수 있었다.”라는 것이다. 텐트와 침낭까지 포함해 26kg의 배낭을 메고 걷는 것은 신체적인 고통을 수반한다. 그는 ‘어깨가 빠질 것 같다거나, 발이 부서질 거 같은 그런 것들은 너무나 친숙해져서 보통 상태로 산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정도이다. 사실 육체적인 문제보다는 정신적인 문제가 더 크다. 3-4일 정도 누구와도 말할 기회가 없는 것은 기본이다. 기쁨과 고통을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마음의 고통은 가면 갈수록 더 깊어지는 것 같다.’고 SNS에서 그의 감정을 묘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거울 속 쇄골엔 이리저리 빨간 상처들이 나 있고, 머리카락들은 이리저리 뻗쳐 지쳐 보이는 자신에게 ”오늘도 고생했어, 동하야“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다시 묵묵히 걸었다.

여행이란 ‘태초의 자신’에게 되돌아가는 과정
그에게 여행이란 태초의 자신에게 되돌아가는 과정이다. 그는 “익숙해진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처음 보는 낯선 것들로 채워진 새로운 세계가 제가 원래 있던 곳입니다.”라며 ‘자신 내면의 기호와 욕구를 따라 새로운 것을 낯설게 보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고 정의했다. 유럽인들이 채식을 하는 이유가 한국처럼 건강, 웰빙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대량 도축, 살상이 이뤄지는 반생명적인 현실과 결국 제3세계에게 폐해가 전가되는 비윤리적인 상황에서 비롯된다는 것에서 ‘채식주의‘도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게 된다. 또 “내 안의 차별이 무너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체코에서 겪은 인종차별은 오히려 자신 내면의 차별의 경계를 허물게 된 계기가 되었다. 케밥집 주인은 그를 보고 ’베트남 가게는 저쪽이야‘라며 조롱했다. 그 순간 머리가 하얘지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이 컸지만, 그는 오히려 씩 웃으면서 몇 마디 배운 체코어로 주문을 했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직원들에게 웃어 보였다. 그의 꿋꿋함에 민망해진 주인은 그에게 ’프리 포유~‘라며 캔콜라를 하나 껴주고는 멋쩍은 웃음을 되돌려줬다. ’손가락질하는 손가락 위에 꽃 한 송이를 얹은‘ 용기였다. 그는 “이 순간을 이겨내지 못하면 나부터 나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적용하는 차별의 기준을 허물 수 없을 것 같았다”라고 담담히 얘기했다.

‘두 발로 유럽 횡단’ 후 삶의 ‘확신’ 얻어
김동하 씨에게 여행을 마치고 난 후의 소감을 물었다. “절대 해낼 수 없는 4,000km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모든 불가능은 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만 불가능이었습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만 있다면 불가능은 없다는 걸 몸소 체험했습니다.” 삶의 ‘확신’을 얻었다는 것이다. ‘체력도 정신도 많이 지쳐서 자주 주저앉는데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가자는 마음’으로 걸었고, 의, 식, 주가 결핍된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무언가를 더 얻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삶을 배우게 됐다. 그는 “결핍을 채우는 대신 결핍을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여행을 통해 짧게나마 ‘삶을 사는 연습’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약육강식의 세계인 한국에서 그가 배운 ‘확신’을 어떻게 실현시키며 살 수 있을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안 하기로 했는데”를 강박적으로 의식하는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질서를 물 흐르듯 좇아왔기에 첫 단추가 어긋난 느낌이다. 먼저 이런 것들을 필터링하듯 인식하면서 자연스럽게 여행에서 배운 경험들이 녹아들 것이다

”라고 얘기하는 그의 얼굴에서 담담하면서도 단단한 확신이 느껴졌다. 앞으로의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 나갈 것 같은 모습이었다. 현재 그는 자신의 글을 엮어 출판할 계획 중에 있다. 이미 글은 다 쓴 상태이고, 출판사 미팅을 하는 중이고 7-8월 중 출간될 예정이라고 했다. 그가 혼자 걸으면서 오롯이 느낀 감정들과 경험, 그 안에서의 성장이야기를 담은 그의 책이 오늘날 ‘스펙 쌓기 경쟁’에서 캄캄하고 위태위태한 불안감을 느끼는 대한민국의 청춘들에게 ‘다른 길을 가도 괜찮아’라는 위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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