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칼럼] 그리다, 쓰다, 꿈꾸다 -영원한 푸름의 세계

전경남 동화작가

  • 입력 2017.05.11 15:52
  • 수정 2017.05.11 17:04
  • 기자명 김나영 대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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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는 아이들의 첫 친구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이의 곁에서 책을 읽어주며 교감을 나누고, 아이는 책을 읽으며 다양한 지식과 지혜를 습득한다. 아이는 습득한 것들을 양분 삼아 상상력을 키우고 꿈을 짓는다. 결국 책은 아이와 부모 사이의 교감이라는 매개체가 되는 동시에 아이의 첫 친구가 되는 셈이다.

 여기 아이들의 친구로서 훌륭한 이야기가 있다. 산길을 걷다 자신의 얼굴이 붙여진 하얀 종이를 본 너구리는 자신의 얼굴 아래에 적힌 글을 읽기 위해 한글을 배우러 학교에 가기로 결심한다. 여우를 찾아가 인간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뒤 학교로 향한 너구리는 ‘이너구’라는 이름으로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듣기 시작한다. 이 귀여우면서도 엉뚱한 이야기는『초등학생 이너구』,『신통방통 왕집중』등을 쓴 전경남 작가의 손 끝에서 피어난 상상력이다.

『신통방통 왕집중』으로 제4회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을 받은 전 작가는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 있는 이야기를 섞어 전하는 이야기꾼이다. 교훈이나 재미, 둘 중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두 가지 모두를 섞어낸 전 작가의 이야기들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사랑받는 동화이다. 자칫 어른 중심의 교훈으로 흘러갈 만한 이야기들도 전 작가의 손 끝에선 중심을 잡고 아이들의 세상으로 흘러간다. 선물 같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하고, 이야기가 가진 교훈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전 작가가 가진 가장 큰 힘이자 전 작가만의 색깔이기도 하다.

착하지 않아도 괜찮아, 동심
 우리는 어른과 어린이를 구분할 때 주로 ‘동심’을 이야기한다. 어른은 동심이 없는 존재로, 어린이는 동심을 지닌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 작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많은 분들이 동심을 아름다운 것이나 순수한 아이들의 영혼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동심은 거창한 게 아니에요. 아이들도 어른들과 똑같고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순수한 마음이 있을 때도 있는 걸요. 때로는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욕심부리고 또 어떤 때는 심술도 부린답니다.”

 아이들에 대해 착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전 작가는 덜 가져서, 그리고 덜 알기 때문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차이점을 굳이 꼽자면,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조금 덜 가졌고, 조금 덜 아는 존재라는 게 아닐까요? 덜 가져서 보이는, 덜 알고 있어서 보이는 존재. 그게 바로 아이들이겠죠. 오히려 덜 가지고, 덜 알기 때문에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눈을 가지고 볼 수 있는 또 다른 존재는 동화작가고요.”

좋아하는 일을 하기위해 시작한 글쓰기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한 전 작가는 무대에 서는 것이 너무 떨려 마이크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 후에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일은 뭘까?’하고 고민했어요. 찬찬히 떠올려보니 글쓰기가 생각나더라고요.” 방송 작가로 일을 하기도 했던 전 작가는 동화를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에 대해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던 순간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을 재우는데 잘 안 자는 거예요. 그래서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어요. 신기했던 건 아이들이 울다가도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하면 뚝 그치는 거예요. 꼭 ‘이야기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는 것처럼. 그렇게 옛이야기를 하나 둘 지어내다 보니 동화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한겨레 창작학교를 다니며 동화를 쓰기 시작한 전 작가는 공모전에 낸 작품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동화작가로의 길에 들어섰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전 작가는 처음 동화를 쓸 때는 어렵지 않아서 오히려 놀랐다고 말했다. “처음엔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쓰면 쓸수록 어려워지는 게 동화라는 분야더라고요. 아는 만큼만 쓰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지금처럼 아는 게 많으면 오히려 동화를 쓰는 게 어려워요.”

 그렇다면 전경남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에 대해 전 작가는 ‘구분’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을 쓸 때가 타인과 나를 구분하는 지점인 것 같아요. 평범한 가정의 구성원으로 있다가도 글을 쓸 때면 그 속에서 나와 ‘나’라는 존재 그 자체로 존재하니까요.”

 글을 쓸 때 비로소 ‘나’로 존재한다며 웃는 전 작가는 동화를 처음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있던 마음들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마음으로 쓰는 것, 나에게 있던 마음들을 찾아내는 것. 이런 게 동화를 처음 쓰는 작가들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요?”

 다만 아이들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금물이라는 게 전 작가의 생각이다.“조심해야 하는 건 아이들을 절대적으로 믿거나, 너무 희망적인 존재로 믿으면 안 된다는 점이에요.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는 게 당연하니까요.”

 
위로의 문학, 위안의 문학
 전 작가는 동화에 대해 작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쓴 문학이자, 근원적인 위로가 가능한 문학이라고 설명한다. “동화는 위로의 문학이자 위안의 문학이죠. 실제로는 작가 자신을 위로하는 문학이기도 하고요. 동화의 가장 큰 장점은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는 거예요. 스스로가 회복할 수 있는 이유는 어느 정도 작가 본인이 희망의 결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그 희망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문제점들을 계속 치유하는 거예요. 이게 동화가 가진 매력이기도 하고요.”

 특히나 전 작가는 위로의 문학이자 위안의 문학이 되기 위해선 배려하는 마음을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화작가는 아동에 대한 생각들, 예컨대 배려 같은 것들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해야 해요. 아동을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배려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작가의 기본적인 태도이기도 하고요.”

핀셋의 역할을 하는 게 동화작가의 일
 전 작가에게 가장 좋아하는 문학의 구절에 대해 묻자, 전 작가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인『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이야기했다.『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아픈 동생 카알과 전설에 나오는 왕자 같은 형 요나탄의 이야기로, 요나탄은 불길 속에서 카알을 구하다 먼저 죽고 둘은 죽음 뒤에 존재하는 나라 낭기열라에서 만나게 된다는 모험 이야기다.

 “책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 있단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지.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와 다를 게 없으니까.’”

 곪은 부분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확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곪은 부분이 나을 수 있도록 치료하는 일이다. 전 작가는 “상처가 있는 부위를 확인하고, 소독해준다는 점에서 동화작가는 핀셋의 역할을 하기도 해요.” 라고 말한다.『사자왕 형제의 모험』에서 형인 요나탄이 말한 것처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곪은 부위를 확인하고 소독하는 것은 작가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작가가 왕따나, 학교폭력, 소외계층 등과 같은 사회 문제를 주시하는 이유는 핀셋의 역할을 통해 곪은 부위를 소독하기 위해서이다. 남들이 보지 못한 부분까지도 상처를 확인하고 소독하는 일. 어쩌면 이는 작가가 부여받은 책임인지도 모른다.

그리다, 쓰다, 꿈꾸다
 그리고, 쓰고, 꿈꾸는 영원한 푸름의 세계에서 영원히 철없는 할머니로 남고 싶다는 전 작가의 포부는 유쾌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아이들과 멀어지기 때문에 동화를 쓰는 게 어려워진다며 웃는 전 작가는 그럼에도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이 목표라고 이야기한다. “저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글을 쓰고 싶어요. 계속 까불고 장난치면서, 키득거릴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목표예요.” 이 유쾌한 포부는 전 작가의 다짐이기도 하다. 때로는 감동을 주기도 하고, 즐거운 웃음을 선물하기도 하는 전 작가의 선물 같은 이야기에 고마움을 전하며 전 작가의 내일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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