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얼을 담아 울려 퍼지는 소리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2호 판소리 예능 보유자 정의진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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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란 창자(唱者)와 고수(鼓手)가 ‘창(唱)’이라는 노래, 아니리(白)라는 말, 발림(몸짓)을 함께 하며 이야기를 해나가는 음악극을 말한다. 음악과 함께 문학적, 연극적 요소가 존재하는 종합예술로 일컬어진다. 정의진 명창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2호 판소리 예능 보유자다. 미소 띤 얼굴로 인터뷰에 응해준 정 명창은 모습도, 마음도 모두 아름다운 예술가였다. 정 명창의 판소리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사진: 양재문 작가
사진: 양재문 작가

명창 집안, 새로운 명창의 탄생
“잘한다!” 관객석 여기저기서 흥에 겨운 추임새가 쏟아진다. 수궁가의 한 대목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정의진 명창은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멋진 목소리로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공연장 안은 분명 실내이건만 한 줄기 바람이 부는 듯, 예술의 향기가 피어오른다.

판소리는 그 전승 계보와 더불어 지역적 창법으로 유파가 나뉜다. 동편제(東便制)와 서편제(西便制), 중고제(中高制)가 있다. 동편제는 전라도 서북지역, 서편제는 전라도 서남지역, 중고제는 경기도와 충청도의 판소리를 의미한다. 정창업 명창은 서편제의 거두로 일컬어지는 뛰어난 명창으로 판소리의 전성기라 평가받은 철종 때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명창의 집안은 정창업 명창에서 정학진 명창, 정광수 명창, 정의진 명창으로 이어지는 ‘명창 집안’이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작품들이 정 명창의 판소리 명문가에서 이어져 왔다.

정 명창은 16세 무렵 우연한 기회에 판소리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아버지가 제자들을 지도하시는 소리를 어깨너머로 듣고 한 소절을 따라 불렀지요. 그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알렸습니다”라며 정 명창은 그 시절을 회상했다. 아버지는 방학을 맞아 정 명창을 정응민 선생에게 보냈다. 정응민 선생은 “이 아이는 아주 큰 재목이 될 것입니다”라고 극찬하며, 열성을 다해 정 명창을 지도했다. 이후 박록주 선생, 그리고 아버지인 정광수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타고난 소질에 배움도 빨랐던 정 명창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원 전국 판소리 명창대회에서 수상을 하며 판소리계의 주목을 받았다.

정의진 명창의 아버지 정광수 국창
정의진 명창의 아버지 정광수 국창

사뿐히 움직이는 춤사위 또한 예사롭지 않다. 정 명창은 살풀이 등 춤도 별도로 배웠다고 한다. 판소리를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접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통해서다. “아버지는 근엄하시고 점잖으신 분이었습니다. 저에게 판소리를 가르치시며 사자성어도 함께 알려주시곤 했었지요”라고 정 명창이 아버지, 그리고 스승을 향한 사랑과 존경을 듬뿍 담아 전했다. 정 명창의 아버지인 양암 정광수 국창은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춘향가’ 및 ‘수궁가’ 보유자로 지정된 바 있다. 삼남국악원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국민문화 향상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점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정 명창은 아버지를 기리며 그의 고향인 나주에 아름다운 공적비를 세웠다.

소리의 맥을 이어가다
판소리 발생 당시에는 12마당이 있었으나, 수궁가·심청가·적벽가·춘향가·흥보가의 다섯 마당이 소리와 사설이 온전히 남은 채 정착된 것으로 알려진다. 수궁가는 그중 하나로 동물을 의인화하여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인간 세상을 통찰하며 재치있는 표현과 구성으로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가는 수궁가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정의진 명창의 수궁가는 정광수 국창도 인정할 만큼 최고의 실력을 갖춘 작품이다.

정 명창은 사단법인 정광수제판소리보존회를 이끌며 판소리 제자를 키워내고 있다. 또한,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초빙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최고의 위치에 있지만 그녀는 안주하지 않고, 소리 내는 법을 연구하며 끊임없이 발전 중이다. 학구적으로도 노력하는 정 명창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제자들도 대부분 석사, 박사 과정을 통해 이해의 깊이를 더해가는 중이다. 정 명창이 제자들에게 전하는 것은 판소리뿐 아니라, 그녀의 열정이기도 한 셈이다.

사진: 한선희 작가
사진: 한선희 작가

한국을 넘어 세계로, 자랑스러운 판소리
미국의 카네기홀, 옥색 한복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정 명창이 공연을 마치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마이크 없이, 특유의 풍부한 성량으로 공연한 정 명창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이 번졌다. 판소리는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예술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

이야기를 따라 숨죽이고, 굽이치는 판소리 장단에 울고 웃는다. 일상을 탈피해 그 흐름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우리 민족은 판소리를 통해 사회를 풍자하고, 서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희망을 나타냈다. 오늘날 판소리가 잘 보존되어 훌륭히 전해지고 있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서려 있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아버지에게서 딸로 구전되어 내려오는 판소리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함께 살아 숨 쉬며 공존하고 있으니, 실로 경이롭다. 그 생생한 생동감과, 예술이 주는 아름다운 영원함에 감격이 밀려온다.

1964년 국가에서 판소리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했다. 이로 인해 제도적인 지원이 뒷받침되며, 판소리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판소리는 민족 특유의 해학과 기지가 예술과 조우하여, 다채로운 극적 요소로 재탄생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판소리에 함축된 정서를 공감하며 정체성을 찾고, 서로 소통한다. 전통을 보존하고 지켜나가야 하는 이유다. 판소리가 더 널리 전해져, 보다 많은 이들에게 삶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정의진 명창 Profile

‣ 현 서울 무형문화재 제32호 판소리 예능 보유자
‣ 현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초빙교수
‣ 현 (사)정광수제판소리보존회 이사장

‣ 1963 남원 전국 판소리 명창대회 명창부 차상 수상
‣ 2006 전주 대사습 판소리 명창부 차상 수상
‣ 2007 전주 대사습 판소리 명창부 차상 수상
‣ 2007 제15회 임방울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 대상(대통령상) 수상
‣ 1961 전남보성 정응민 선생님께 춘향가 사사
‣ 1962 정광수 선생님께 수궁가 사사
‣ 1972 서울 국립극장 유파별 판소리 발표회 출연
‣ 1974 MBC 및 TBC 방송국 다수 출연
‣ 1975 KBS 방송국 장수만세 심사위원 5년 6개월간 출연
‣ 1976 정광수 선생님 이수자 제1호 지정 - 문화재 청장
‣ 1978 KBS, MBC 등 방송 활동 다수 출연 후 활동 중단
‣ 2002 국립극장 창극출현 ‘선화공주·서동왕자’ 서동왕자역
‣ 2003 종로구 구민회관 뺑파전 ‘심봉사’ 역
‣ 2003 KBS 국악한마당 창극 ‘선화공주·서동왕자’ 서동왕자역
‣ 2003 대를 잇는 명창 후손프로에 출연 ‘수궁가’
‣ 2004 미국 뉴욕 카네기 홀에서 ‘수궁가’ 공연
‣ 2004 국악방송국 ‘수궁가’ 공연
‣ 2004 고 양암 정광수 국창 1주기 추모공연
‣ 2007 양암제 수궁가 3시간 완창 발표회
‣ 2007 국악방송, 교통방송, KBS 라디오 국악프로그램 출연
‣ 2008 양암 정광수 국창탄신 100년 기념공연 - 국립극장달오름극장
‣ 2008 양암 정광수 국창탄신 100년 기념공연 - 나주문화예술회관
‣ 2008 국악한마당 출연 - KBS 방송국
‣ 2008 양암제 흥보가 3시간 완창 발표회 - 국립극장달오름극장
‣ 2009 제1회 판소리 흥보가, 제자 발표회 - 예인공감(창덕궁소극장)
‣ 2010 (사)양암 정광수 국장추모사업회 대표
‣ 2010 (사)한국전통예술진흥회 이사
‣ 2010 (사)판소리유파 대제전 공연 - (사)한국판소리보존회
‣ 2010 제2회 판소리 수궁가, 제자 발표회 - 국립민속박물관대강당
‣ 2010 국악방송 출연- 서울특별시
‣ 2011 광주MBC 우리가락 우리문화 출연
‣ 2012 제3회 수궁가 제자 발표회 - 무형문화재전수회관
‣ 2013 서울시 무형문화제 제32호 판소리 예능보유자 지정
‣ 2013 (사)정광수제판소리보존회 이사장 취임
‣ 2013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출강(초빙교수)
‣ 2015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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