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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증인가 법무법인 월드 박태석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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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어느 날, 인터뷰를 위해 법무법인 월드를 방문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을 여러 차례 다룬 스타 검사, 전 특검 출신인 박태석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의 이력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냉철한 이미지를 떠올린 것도 잠시, 온화한 인상의 박 변호사의 환한 미소가 친근하게 다가왔다. 유능한 법조인으로서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박 변호사의 이야기로 초대한다.

검찰에 몸담은 20년

박 변호사는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20여 년 동안 검찰에 몸담았다. 특히 기업범죄, 관세, 조세 등의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두각을 나타냈다. 박 변호사는 2007년 법무법인 월드를 설립했다.

박 변호사는 주저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법무부 관찰과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갱생보호공단을 확충한 것은 박 변호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갱생보호공단은 출소자가 갈 곳이 없는 경우 숙식을 제공하는 곳인데, 국가 예산상 제약으로 인원에 한계가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박 변호사는 직접 발로 뛰며 시설을 확충해 운영했다. 박 변호사는 공무원 윤리 개선에도 일조한 바 있다. 법무부의 지원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방 검찰 및 연방 법원 등에서 연수를 받고, 공무원 부패방지 및 선거부정 방지분야를 연구하여 <정치개혁 이렇게 한다>라는 책을 펴냈다.

법무법인 월드

글로벌 시대,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찾고 있다. 그중에는 한국에 정착하려고 하는 이들도 많다.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 사회, 특유의 가족 중심의 문화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우리의 이웃들이 있을 수 있다. 박 변호사는 이 같은 현실을 인지하고 필요한 지원을 통해 그들이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도록 돕는 일을 해왔다.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정착을 위해 난민 자격의 취득이 필요하지만 그 입증이 쉽지 않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박 변호사는 이러한 부분에 도움을 주며 그들이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 일조했다. 또한, 변호사협회 법률지원단에서 활동하며 탈북자와 난민들에게 필요한 무료 상담 및 변론을 통해 필요한 지원을 이어왔다. 법조인으로서 소임을 다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하고 있는 박 변호사는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다.

수지 씨 이야기

박 변호사는 최근 광주에 위치한 충현원을 방문했다. 3살 때 미국으로 입양한 입양아로서 56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수지 브로디 보글러(한국 이름 최성진) 씨를 돕기 위해서다. 최성진 씨는 한국에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어머니와 자신의 뿌리를 찾기를 원했다.

최 씨는 1957년 광주 충현원에 들어갔다. 충현원은 미국의 선교사가 6·25 때 고아들을 위해 지은 보육원이다. 그곳에서 한국 이름 ‘최성진’과 ‘1956년 10월 11일’이라는 생년월일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최 씨가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최 씨는 입양 후 여러 상황을 종합하여 1958년생으로 추정이 되어 그렇게 알고 자랐다. 한국에 방문할 때까지도 자신이 1958년생이라고 알고 있었다고 했다. “저는 항상 제가 제 나이에 비해 똑똑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라며 최 씨는 웃었다. 최 씨는 자신을 후원해주던 후원자의 가정에 입양되게 된다. 브로디 씨 부부다.

브로디 씨는 2차대전 당시 일본에 파견됐던 미군이었다. 브로디 씨의 가정은 1남 2녀의 자녀가 행복하게 자라고 있는 화목한 가정이었고 그들은 최 씨의 언니, 오빠가 됐다. 그녀는 “저뿐만 아니라 저의 세 형제자매인 켄트, 제니, 사라와 부모님에게도 인생이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고 전했다. 최 씨는 유복한 환경에서 부모님과 언니 오빠들의 사랑을 마음껏 받으며 행복하게 자랐다. 그녀는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최 씨 부부는 뉴욕주에서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 씨는 교육분야에서 여러 가지 자선사업을 하고 있는 자선사업가다. 그들은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플로리다를 자유롭게 오가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가족으로 맞이하다

최 씨가 한복을 맞추며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고운 한복이 썩 잘 어울렸다. 그녀는 비슷비슷한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속에서 자신을 찾아냈다. 선교사들이 어린 최 씨에게 가르쳐준 “Onward Christian Soldiers"라는 노래를 입양 후에 언니들과 함께 불렀다고 했다. 충현원을 방문한 세 자매는 그 노래를 함께 불렀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훌륭하게 자라 다시 방문한 한국, 아름다운 한옥으로 남아있는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그 노래는 박 변호사의 가슴 속에 여운으로 남았다. 충현원에 있는 최 씨의 관련 자료 속에는 놀랍게도 최 씨의 큰언니와 오빠인 켄트와 제니의 사진이 있었다. 아마도 최 씨를 입양하기 위해 가족을 소개했던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가족으로 맞이하기 위한 브로디 씨의 정성과 따스한 마음이 빛바랜 사진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그녀의 당시 여권 사진도 남아있었다.

세계한인입양인대회가 2016년 8월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800여 명, 많은 입양인과 그의 가족들이 함께 자리했다. 어떤 이들은 친부모를 만나기를, 어떤 이들은 만나지 않기를 원했다. 한국의 입양아들은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 살아가고 있다. 최 씨는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것을 생각하며 지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금 일깨워준다. “제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들의 인생, 업적 그리고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다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마음과 귀와 눈을 여세요. 그리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많이 공유하세요!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영원하게 만들 것입니다”

박 변호사는 관공서와 언론기관들을 수차례 방문하는 등 최 씨의 뿌리를 찾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박 변호사의 책장에는 최 씨가 한국에서의 추억을 담아 선물한 멋진 책 한 권이 꽂혀 있다. 박 변호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최 씨와 같은 입양아를 비롯해 외국인 근로자와 난민을 위해 관심을 기울이며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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