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과 자연의 조화로 이뤄낸 우리의 전통

한도요 서광수 명장이 말하는 우리 전통 도자기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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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는 아직도 예스러움을 간직한 채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용품 중 하나다. 마천루가 즐비한 서울 도심에도 장독대 안에서 푹 익은 김치와 발효식품을 찾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도자기공은 드물다. 도자기 제작에 필요한 장작, 유약, 대토 등 비싼 재료비용과 10개 중 3개의 기물만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낮은 성공비율은 많은 이들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광수 명장은 한결같이 전통방식만을 고집해오고 있다. 단 하나의 작품을 위해 수없이 많은 자신을 깨어내고, 자신을 단련해야만 했던 지난 50여 년의 서 명장의 열정은 지금도 한계를 모른다.

서광수 명장
서광수 명장

열정으로 빚어낸 명장의 칭호

서광수 명장은 2003년과 2005년에 ‘대한민국 명장 14호’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1호’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두 칭호 모두 대한민국 최고의 장인에게만 주어지는 칭호로서,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호칭이 아니다.

서 명장은 1961년 14세 어린 나이에 ‘백자의 대가’로 불리는 도암 지순택 선생의 제자로 들어가 도자기 기술을 배우게 된다. 11년의 세월 동안 도자기 제작의 기본 기술과 성형, 조각, 소성, 유약 등을 만드는 법을 모두 전수받는다. 1976년 지순택 선생의 문하를 떠나 ‘도평요’의 요장으로 일을 하며 자신의 색채를 가꿔 나가기 시작한다. 도평요는 당시 실세였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운영하던 곳으로서, 서 명장이 오직 도자기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많은 지원을 받을 수가 있었다. 1986년 지금의 한도요가 위치한 이천시 신둔면에 자리를 잡아, 줄곧 자신의 예술성을 갈고 닦는 데만 매진해왔다.

서 명장의 모든 작품은 소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핀 전통가마 방식으로만 만들어졌다. 전통가마는 기온과 습도에 매우 민감할 뿐 아니라 준비기간이 길어 1년에 4차례만 도자기를 제작할 수밖에 없다. 또한 소요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서 명장의 가마의 장작은 모두 질 좋은 강원도산 소나무로만 사용된다. 또한 백자, 청자 등 도자기 특유의 색을 내기 위해서 전국 각지에서 최상의 품질의 흙을 공수 받아야만 한다. 예컨대 백토는 하동과 양구에서, 태토는 전국의 장석, 석회석 등을 모아 만든다. 이렇게 한 번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자그마치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그뿐만 아니라 흙 반죽, 물레 성형, 조각, 초벌과 재벌 등 수많은 땀과 노력이 깃들어야만 단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이런 수고에도 불구하고 서 명장은 전통가마 방식을 지향하는 이유는 바로 그 빛깔에 있다. 그는 “전통식 가마 방식은 정해진 것은 없다. 불의 세기와 가마 안에서 기물의 위치에 따라 어떤 빛깔을 낼지 저로서도 알 수가 없다. 오직 저의 간절한 바람과 자연의 오묘한 조화가 만들어낸 은은한 우리 전통식 도자기 빛깔은 기계식방식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다.”라며 전통방식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한국도자기의 전통을 널리 계승하다

한도요는 ‘한국도자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겠다’는 뜻으로 서 명장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그의 바람대로, 현재 서 명장의 도자기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서 명장의 뛰어난 솜씨를 가장 먼저 알아본 나라는 일본이다. 1960년대부터 일본에서는 그의 도자기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지금까지 20여 차례나 넘게 일본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심지어 2009년 일본 국영방송 NHK에서 한국도자기 명장 특집으로 서 명장을 방송하기도 했다. 또한 서 명장은 여러 차례 개인전과 방송으로 인해, 급기야 일본 내 그를 따르는 ‘한도 서광수를 사랑하는 일본 모임’이 결성되는 등 나날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일본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에서도 서 명장의 작품을 주목한다. 다양한 색채와 오묘한 아름다움, 그리고 한국 특유의 도자기 제작기법은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대영박물관에 여러 차례 그의 작품이 초청받기까지 했다. 현재도 서 명장의 작품이 유럽 전역의 박물관에 전시되며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서 명장은 우리 전통 도자기인 청자, 분청, 진사, 백자 등 모두 방식에 능하다. 특히 우유 빛깔의 맑은 색을 띤 ‘무지백자 달항아리’에 최고의 대가로 손꼽힌다. 서 명장은 ‘무지백자 달항아리’로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1호’에 이름을 올렸다. 위 아래로 나누어 제작 후 후에 합쳐 만들어진다는 달항아리는 예부터 여자의 잘록한 허리를 닮았다 하여 선비들에게 사랑받아온 작품이다. 서 명장 또한 전통을 고수해오며 잡티 없는 새하얀 달항아리를 만드는데 집중해왔다. 찻잔 크기의 작은 달항아리부터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큰 크기까지, 그의 모든 정성으로 빚어낸 달항아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당연 최고의 도자기로 대우받는다.

달항아리뿐 아니라 서명장이 여태껏 표현해낸 도자기 모양은 그 세월만큼이나 무척 다양하다. 대나무와 참새가 잘 어우러진 문양, 호박을 연상케 하는 먹음직스러운 모양, 아기자기한 연적들까지 실로 샐 수 없을 만큼 많은 작품들이 있다. 이에 대해 서 명장은 “도예가로서 한국의 잊어진 전통과 멋을 고스란히 계승하자는 마음에서 수십 년간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며 우리 도자기에 대한 그의 자긍심을 드러냈다.

현재 서 명장은 자신을 뒤를 이은 제자 육성에 온 힘을 매진하고 있다. 그의 문하에는 현재까지 많은 제자들이 그의 손을 거쳐 갔으며, 지금도 그에게 도예를 배우기를 청하는 많은 제자들이 한도요를 지키고 있다. 일흔에 넘어가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서 명장은 흙을 반죽하는 것에서부터 가마에 이르기까지 몸소 시범을 보이며 남다른 제자 사랑을 드러낸다. 이에 대해 서 명장은 “요즘 젊은 도예가들은 너무 쉽게 작품을 만들려고 해서 안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아준 제자들을 위해 제가 직접 시범을 보이는 건 당연한 거다”며 너털웃음을 쳤다.

더불어 서 명장은 “자연의 오묘한 조화와 사람의 정성이 만나야만 진정한 도자기의 참 빛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하지만 열악한 정부의 지원으로 점차 전통을 고집하는 도예공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며 “정부의 많은 관계자들이 우리 전통이 끊길 현재 위기 상황을 극복할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줄 것”을 간절히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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