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의 작은 텃밭으로 부터 시작한 시

이봉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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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주는 감동은 일상에서 나타난다. 시인은 각자의 시적 표현으로 독자에게 말을 건다. 다양한 문학 장르 중에서도 시의 가치는 바로 비유와 상징을 통해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사전적인 의미를 탈피해 시인의 언어로 표현해 낸 시는 독자의 가슴 속을 울린다. 이봉희 시인의 시에서 우리는 그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시인의 티없이 말고 깨끗한 이미지는 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봉희 시인은 어떻게 시와 조우하게 되었을까. 짧은 머리에 소박한 웃음이 인상 깊은 이봉희 시인이 시와 인생을 고스란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남편의 사랑으로 견뎌냈던 어제와 오늘
이봉희 시인은 4년전 자궁암 판정을 받았다. '암'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힘든 항암치료를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은 가족이었다. 악화되는 투병 생활은 끊임없이 찾아오는 고통으로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딸과 남편은 이 시인에게 어떠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함께 견뎌 나갔다.

"여느 환자들보다 유난히 통증이 자주 찾아와 항암치료 과정이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제가 시작(詩作) 활동도 전혀 하지 못할 정도 였죠. 암 세포와 싸우면서 예민해지고, 강박관념에 사로 잡힐 때도 있었죠. 그 때마다 남편은 제 손을 잡아줬어요.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간병을 자처했죠"

남편의 극진한 병간호는 진심어린 사랑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환자가 혼자 사용하는 요양병원에서도 남편은 이봉희 시인 곁에 있겠다며 늘 곁에서 간병인으로서 역할을 해냈다. 남편은 이 시인의 존재에 대해 늘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했고, 이에 힘입어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항암치료를 무사히 견뎌낼 수 있었다.

항암치료를 끝낸 이후 새로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 이봉희 시인의 도전을 응원한 것도 남편이었다. 시작 활동과 도예, 천연염색, 야생화 재배에 대한 연구 등 그가 관심이 있다면 언제든지 긍정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이봉희 시인은 남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하며 남편의 든든한 버팀목아래 앞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음 속의 작은 텃밭으로 부터 시작한 시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봉희 시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소중이 자리잡고 있다. 시골의 소박한 분위기,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아직도 기억 속에서 생생하다. 이러한 시인의 감성은 현재의 시작 활동까지 이어졌다. 살아오면서 상처투성이인 날도 있었지만, 시는 이봉희 시인에게 좋은 치료제가 되었다. 문학과 함께 자라온 이 시인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문학과의 인연을 놓지 않았다.

"백화점 근무할 당시에 우연히 한 문화 전시회를 보았어요. 그러던 중 한 시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저의 시작활동을 선뜻 동행해주셨습니다. 신춘문예에 떨어졌지만, 선생님의 조언으로 글을 계속 써왔고 1993년 계간지를 통해 등단할 수 있었습니다.  출간된 시를 보며 느꼈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네요"

이봉희 시인은 등단 이후 학생들의 글쓰기 지도를 하며 자신의 재능을 발휘했다. 미취학 아동의 한글 교육부터 중고등학생의 논술 교육까지 행복한 글쓰기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학생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수업참여를 도왔고, 이봉희 시인의 진심을 느낀 학생과 교감하며 좋은 성적까지  이끌어 냈다. 이봉희 시인은 학생들의 동시 창작 지도를하면서 마음의 정서 안정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전하며 문학가로의 활발한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이 사회가 조금 더 따뜻한 꽃을 피울 수 있었으며 좋겠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항상 따뜻함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제 학생들에게도 늘 강조했습니다. 인문학은 이의 바탕이 될 것입니다. 학생들이 꿈꿀 수 있는 내일을 위해 저는 늘 새로운 영역을 탐구했습니다"

이봉희 시인은 학생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이를 위해 학생들이 직접 쓴 동시와 자신의 시를 엮었고, 출판하면서 누구나 무언가를 꿈꿀 수 있고 이루어 나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후 용기를 얻은 학생들을 보며 이 시인은 자신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눌 수 있다는 일념으로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서른 살에 아이를 낳은 이봉희 시인은 낙후된 영아시설을 보고 사회봉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 다짐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장애인 학교에서 글을 외우기 힘들어하는 장애인에게 엄마의 마음으로 인내를 통한 반복학습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각박한 삶 속에 지금 사회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마음의 정서에 기초적인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본성은 문학에서 나옵니다"

이봉희 시인의 바램은 우리 사회가 꿈이라는 꽃을 피울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이다. 요즘 그는 도자기를 배우고 있다. 도자기에 시를 새겨 시가 우리네 삶에 근접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다. 따뜻함으로 아이들에게 따뜻함을 주는 사람이 되어라고 가르칠 것이라는 그의 웃음에서 따스함이 느껴진다.

프로필
1966년 경남 함안 출생
부산시인협회, 부산문인협회 회원
1993년 한글문학 겨울호 "불꽃"으로 당선
1995년 시집 <보낼 수 없는 편지>
2003년 시집<파란하늘을 보았니>

 

고려담쟁이

                       이봉희   

소나무 큰 덩치를 잡고 버티려고

안간힘을 쏟아 붓던 파랗게 질린 입술

매화꽃 향기 흐르던 봄날도

소나기 퍼붓던 뜨거운 여름날도

구절초 향기 그대에게 가던 가을날도

네 안에 타오르던 사랑

아!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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