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씩, 한결같이! 이홍주 대표가 말하는 골프 피팅

“더 나아가 미국이라는 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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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대에서 국내 프로선수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일반 골퍼들 사이에서도 골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에 발맞추어 다양한 골프장과 편의 시설도 늘어났다. 대중화 된 골프, 나만의 실력 향상을 위해서는 어떠한 요령이 필요할까. 해답은 바로 골프 피팅에 있다. 내 몸에 맞는 클럽 제작으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골프 피팅의 세계로 이홍주 대표와 함께 빠져 보자.

“골프는 상대방과 경쟁을 하는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경기장의 환경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절대로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영역을 내가 만들고 선택한 장비를 가지고 자연과 승부를 내는 점이 굉장히 멋있었고 특별하게 느껴졌죠.”

끝없는 도전과 수많은 경험
국내 골프 피팅 협회 1급 피팅 자격으로 이홍주 GOLF 대표자리에 있기까지 그의 도전은 쉽지 않았다. 주니어 선수 출신인 이 대표는 IMF를 겪은 후 골프계를 떠나야 했고, 미국으로 옮겨가 새로운 도약의 시간을 가졌다. 이홍주 대표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위치한 Golfsmith사에서 골프 피팅의 다양한 업무를 배워 나갔다. 현장에서 살아 숨 쉬는 경험은 뜻밖의 많은 흥미와 재미였고 이는 골프 피팅을 시작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10년이란 시간이 흘러 또 다른 골프와 연결의 끈을 이어갔다.

“골프는 상대방과 경쟁을 하는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경기장의 환경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절대로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영역을 내가 만들고 선택한 장비를 가지고 자연과 승부를 내는 점이 굉장히 멋있었고 특별하게 느껴졌죠.”
이홍주 대표는 일본을 오가며 새로운 기술과 장비 영역을 익혔다. 피팅, 단조헤드, 그리고 샤프트까지 모든 부분을 하나씩 배워나갔다. 그 후에도 끊임없는 노력을 더해 경남 산골짜기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골프 피팅에 관한 전문 지식을 공유해나가던 이홍주 대표는 지인의 권유로 첫 피팅을 경험 했다. 서툴렀던 첫 경험은 클럽의 무게배분을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아쉬운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에 그치지 않고 피팅에 대한 기술적인 원인에서 부족했던 점을 분석하였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까지 해오면서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떠올리며 ‘내가 너무 거만했구나’ 하고 생각했죠.”
이홍주 GOLF는 2004년 설립된 Club Fitting Center에서 많은 골퍼와 함께 자신의 노하우를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13년간의 많은 아마추어 및 선수(KPGA, KLPGA), 주니어와 국가대표를 기준으로 한 특별한 경험을 클럽 피팅으로 좀 더 쉽고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랐다.

올바른 스윙의 첫걸음, 클럽 피팅으로부터
클럽 피팅은 수제화를 신은 듯 내 몸에 맞는 클럽을 사용함으로써 더 나은 경기 결과를 가져오는 동시에 올바른 스윙과 부상을 미리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골프를 즐기는 일반 골퍼들은 클럽 피팅이 프로들만 즐기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이홍주 대표는 오히려 클럽 피팅을 초보자가 받아야하는 첫 입문과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많은 골퍼들이 원하는 관성모멘트를 실현하기 위해선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맞는 클럽의 길이를 선택 후 첫 레슨을 받기를 권장한다.

“처음 골프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장단점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무작정 레슨을 시작하며 골프에 입문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세계 상위 3%의 스윙을 보며 꿈꾸기에는 이미 습관화 되어 혼란과 부상을 겪으며 골프를 배워갑니다. 클럽 피팅을 통해 기본적인 클럽의 길이, 그립 사이즈, 헤드의 난이도를 올바르게 잡은 후 스윙을 익힌다면 실력 향상에 기여할 것입니다.”

운동만 하던 막내에서 최고의 자리로
부산 토박이로 4남매 중 막내로 자랐던 이홍주 대표는 아버지의 바람으로 어렸을 때 체육으로 진로를 결정했다. 초등학교 1학년 테니스를 시작으로 복싱, 수영 등 많은 운동을 섭렵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던 골프는 이 대표에게 이전과는 다른 재미를 주었다. 본격적으로 골프를 배웠던 중학교 2학년 시절,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게 되면서 잠시 멈추게 되었다.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에 체육 특기생으로는 진학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동아공업고등학교 조정부에 진학을 했다. 2년 동안조정 후보로서 성실하게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주전 선수가 다치게 되면서 출전 기회가 생겼다. 그는 두 달간 호흡을 맞춰가며 준비한 첫 시합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운동선수로서 자리매김을 하면서 동시에 대학진학을 했다. 선수로서의 대학생활은 3월부터 10월까지 온종일 경기를 뛰었고 남은 두 달은 동계훈련을 다니며 바쁜 학창시절을 보냈다. 체전 우승을 계기로 학교생활과 국가대표 선수생활을 병행했으며, 1997년 동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영광을 안았다.

이홍주 피터, 더 넓은 무대를 향해
이홍주 대표는 골프피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고객들에게는 올바른 사용법과 큰 부상을 방지하는 법에 대해 신중히 노력하고 있다. 모든 클럽에 대한 기술들이 안정적인 단계지만 더 큰 꿈을 향해 도약 중이다.
“저의 피팅 기술력이 과연 미국이라는 무대에서 어느 정도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검증받고 싶습니다. 국내 기술자로써 우수한 기량을 갖춘 골프 피터, 많은 전문가들이 있다는 점을 알리는 일도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샘플 개발로 기회가 된다면 클럽과 골프 피터의 기술적 자질을 가지고 미국 땅을 꼭 한번 밟고 싶습니다.

이홍주 대표는 훈훈한 눈웃음 머금은 미소를 띠며 꿈을 향해 나아간다. 그 누구보다 굳건한 의지와 열의에 가득 찬 눈망울이 기억에 남는 국내 골프 피터 이홍주 대표. 그의 또 다른 도전이 새로운 기대를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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