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한테 취미가 어디 있나요? 아침 일찍 농장에 가서 일하고, 저녁이면 일기예보를 보고 내일의 일정을 준비하는 거 말고는 뭐 특별할 게 있나요?”
올해로 귀농 9년 차인 고창아로니아의 최용호 대표는 대한민국 최초 북유럽과 북아메리카 원산지인 아로니아를 국내 재배 및 대량생산에 성공한 아로니아 1세대 농민이다. 아로니아는 과거 중세유럽에서 킹스베리(왕의 음식)라고 불릴 만큼 안토시아닌과 같은 항산화물질이 풍부해, 주부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과일 중 하나다. 하지만 기후 여건 차이와 우량묘목 선별에 관한 정보 부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지난 수십 년 간 국내에서 재배가 되지 않았다. 더욱이 수입산 과일이 생소했던 시절, 그의 이름 앞에 붙은 ‘국내 최대’라는 수식어에는 그동안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열정을 가지고 품종개발에 힘써왔는지를 짐작케 한다.
지금도 그는, 혁신창조농업가로서 체리, 흑노호, 스위스 사과 등 국내 재배 가능한 새로운 품종개발에 열을 올린다. 먼 옛날 길을 내기 위해 산을 묵묵히 나르던 우공(愚公)의 심정처럼, 그 또한 자신이 키운 묘목과 열매가 우리나라에 가득 번질 그 날만을 기다리며, 오늘도 묵묵히 새로운 희망을 가꾸어 나가고 있다.
참된 농민이란? 투기꾼 아닌 투자가가 돼야...
2007년 사업 실패 후, 고향 땅으로 내려온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몇 년 안에 일당 100만원을 버는 농가가 되어보겠노라”라고 말한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당시 많은 이들이 그의 말을 믿지 못하며, 심지어 그를 실없는 사람으로까지 치부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 외, 오랫동안 농사 경험이 없는 사람이 그 큰돈을 벌겠다고 호언장담했으니 어느 누가 믿겠습니까? 더군다나 외지 사람을 터부시하는 농촌의 특성상 제 말에 처음부터 귀 기울이려는 이는 없었다고 봐야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는 도시에서 사업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도중에도, ‘언젠가 다시 고향 땅에 내려가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슴속에 품고 살았다.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농업에 관한 여러 논문과 서적을 읽으며 선도농가를 방문하며 고향 땅에 돌아갈 그 날만을 기약했다.
인간사 모든 일이 그렇듯, 그의 바람 또한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하지만 사업을 접고 도망치듯 내려온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손아귀에 남은 자산은 500만 원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감히 ‘투기’가 아닌 그 자신에게 ‘투자’하는 쪽을 택했다. 다른 농민들처럼 벼, 고추, 무, 배추 등 평범한 작물이 아닌, 미래 생계를 책임질 새로운 농작물을 찾는 데 매진했다. 그는 아끼고 모은 돈을 외국의 전문서적과 논문을 구하고 번역하는 데 사용했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배우고 노력했다. 고된 노력 끝에 그는 ‘아로니아’의 국내 재배 가능성을 점치며, 몇 년 뒤 국내에서 아로니아 선구자로 대량생산 성공했다. 더불어 주위 사람들에게 처음에 그가 말한 바대로, 하루 일당 100만원이 넘는 성공한 귀농인으로 거듭났다.
그는 이 성공에 대해 “투기와 투자의 가장 큰 차이는 계획성입니다. 사업 실패 후 일확천금만 노렸다면 혹은 절망만 가득했다면, 오늘날의 성공은 없었을 것입니다. 남들이 가는 똑같은 길을 가기보다 항상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한발 더 나아갔다는 점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는 생각합니다.”라며 겸손히 답변했다. 귀농인으로서 재기에 성공한 지금도, 그는 ‘아로니아&와송100’과 같이 아로니아 동결건조분말 및 연구에 열정을 가지며. 아로니아를 향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아로니아 1세대에서 체리의 선구자로 거듭나기까지
그의 끝없는 도전
체리 선진국인 우크라이나, 중국, 미국과 달리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체리열매 생산을 못하고 있다. FTA, 우루과이라운드(UR) 등 관세장벽이 허물어지며, 대형마트에서 체리를 찾는 수요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데 반해, 체리에 관한 국내 연구는 사실상 전무한 수준이다.
그에 반해 최 대표는 아로니아 때와 마찬가지로, 일찍이 노화 예방 및 비타민이 풍부한 체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체리 선진국에서 연구한 여러 외국 논문과 서적을 손수 구입해 읽으며, 현지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왔다.
“체리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알아보기 위해 산지와 농지에 직접 수천 그루를 심어보기도 하고, 접목에 사용할 적절한 대목을 찾기 위해 여러 논문과 서적을 찾아 읽기도 하며 직접 외국 체리농가를 찾아다니며 지금까지 수억 원의 연구비를 투자하며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특히 그가 주목하고 있는 체리 품종은 미국산 체리 품종이다. 일본에서 생산된 체리 품종은 신맛이 강한 산미체리인 반면 미국에서 생산된 체리 품종은 단맛이 강한 단미체리이기 때문이다. 미국산 품종은 크고 달며 단단해, 단단한 과일을 베어 물기 좋아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다양한 수입산 과일로 입맛이 서구화되어가고 있는 지금, 과즙이 넘치는 국내산 체리 생산은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어머니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과일 생산의 시기였다. 설사 국내에서 체리 재배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7-8월에 쏟아지는 미국산 체리와 가격 경쟁에서 국내산 체리가 우위를 점하기는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최 대표는 이러한 계절적 수요를 감안해 5-6월에 국내 생산이 가능한 체리 품종 개발에 힘써왔다.
최 대표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 내년 봄에는 체리 묘목이 출하될 예정이다. 그는 이미 지난해 국내에서 체리 재배 생산에 성공이라는 소귀의 성과를 이뤄냈다. 그로부터 근 1년 후, 또다시 그는 해외에 체리 묘목 수출이라는 거대한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다.
더불어 그는 아로니아와 체리 외, 또 다른 도약을 준비 중이다. 그는 “체리가 본격적으로 생산되면 체리 열매 또한 농축액과 같은 가공식품 개발에도 전념할 것입니다. 또한 3년 내 흑노호, 스위스 사과 등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춘 다양한 수입산 품종을 재배해, 우리 식문화를 바꿔나갈 것입니다”라며 강한 확신에 찼다.
꿈을 심다. 희망을 키우다
“중국식 토루와 같은 이색적 고아원이 짓는 게, 나의 앞으로의 꿈”
어릴 적부터, 최 대표는 수십만 평을 가진 대농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최근에는 여기에 더해 가난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이색적인 고아원을 지어 함께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둥글게 둘러싸인 겹겹이 쌓인 중국식 토루 건축물에 가난하고 어려운 아이들이 마음껏 뛰논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앞에는 작은 조랑말을 키워 아이들이 타고 놀며, 가까운 곳은 체리 농장과 흑노호 농장 그리고 스위스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고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곳을 만든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 않겠어요?”
그가 말하길, 고아원 인근 수십만 평의 체리 농장은 제주도 감귤농장처럼 1인당 15,000원가량 비용을 받아 자유롭게 체험하고 맛볼 수 있는 테마농장으로 만들 계획이다. 이곳의 수익의 대부분은 고아원을 운영할 비용으로 쓰일 것이며, 고아원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대학교까지 무상으로 지원받으며 자라날 예정이다.
최 대표는 “추측건대, 수십 명의 아이를 대학까지 보내고 키우려면 연간 10억 매출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앞으로 등골이 휠만큼 벌어야만, 실현되지 않겠습니까?”라며 앓은 소리를 냈으나, 그의 미소에는 전혀 힘든 내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최 대표의 눈빛은 꿈을 향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