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소송은 한 때 뜨거운 감자로 신문과 뉴스에 등장하는 단골손님이었다. 연장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의 계산방법에 대하여 이제까지 달랐던 노동부와 법원의 입장이 대법원 판결로 인하여 정리가 된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소가가 큰 노동사건은 3년차 변호사가 의뢰받기에는 벅찬 소송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민정 변호사는 승소를 거듭했고, 이를 계기로 현재까지 노동전문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모든 사건을 내 일처럼 꼼꼼히
이민정 변호사는 올해로 6년차 변호사다. 대구달서경찰서 범죄피해자 신변 보호단 고문변호사, 전문건설업체 철근 콘크리트 사용자협의회 고문변호사, 대구 외국인 인력지원센터 고문변호사 등 다수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그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이 변호사는 부산 노동청에서 2년을 근무하면서 노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히 임금체계개선 컨설팅 사업과 통상임금 관련 소송을 하기 위해 과감히 사표를 내고 대구에서 법률사무소를 개업했고, 현재는 두 개의 상장기업의 사측 변호를 맡고 있다.
이민정 변호사는 꽤나 비중 있는 통상임금 소송을 맡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노동사건을 다루고 있다. 특히 노동 분야에서 남성이 활동한다는 통념을 깨고 이 변호사는 여성이 아닌 한 명의 변호사로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려 많은 노력을 했다고 전했다. 여성이 해내기에 어려운 사건이라는 주변의 우려를 30억 원, 100억 원대 사건에서 승소하였고 건설노조와의 노사협상과정에도 참여하면서 신뢰로 바꾸었다.
그는 승소할 수 있었던 자신의 강점을 몇 가지 이야기했다. 동료 변호사들보다 사건 투자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세심하고 꼼꼼하게 사건을 진행했다. 여러 사건을 맡기보다는 한 사건을 맡더라도 완벽하게 사건을 파악하자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다른 강점은 여성 변호사라는 것이다. 이는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는 반대로 생각했다. 여성 의뢰인들은 남자 변호사에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존재한다. 이 변호사는 같은 여성으로서 그들이 편안하게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 도와준다. 특히 그들이 자신을 신뢰하게 만들고자 더 많은 노력을 한다고 전했다.
로스쿨 1기, 제 1회 가인법정변론대회 정의상 수상
이민정 변호사의 고향은 대구다. 어린 시절 수영, 합기도, 피아노 등 다양한 분야를 배웠던 이 변호사는 부모님의 특별한 교육관아래 팔방미인(八方美人)으로 자라났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최소화 했고 이 변호사의 꿈을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해주신 부모님 덕분에 독립심도 키울 수 있었다.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였던 이민정 변호사는 부모님의 권유로 경북대학교 화학교육과로 진학했다.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해나가던 중 주변에서 임용을 준비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교생실습을 나가게 되었을 때 저의 목표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역시 보람 있는 일이지만 학교라는 울타리 밖의 세상과 마주하고 싶었습니다. 과감히 임용을 포기하고 서울에 올라가 꿈을 찾아다니기도 했고, 취업 준비도 해보았습니다.”
자신의 꿈을 찾아나선 이민정 변호사는 2009년부터 로스쿨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로스쿨에서 새로운 미래를 찾기로 결심했다. 이 변호사 이외에도 뛰어난 학생들이 로스쿨에 지원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전공을 공부했지만 오로지 법조인이 되겠다는 저마다의 신념을 갖고 모였다. 사범대에 진학해 줄곧 학업성적이 뛰어났던 이 변호사는 자신의 위치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압박감을 느꼈다. 첫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는 이과 전공만 줄곧 공부해왔기에 익숙하지 않는 법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함을 느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삶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는 법이 곧 익숙해졌다.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과 법 공부에 흥미를 느꼈다. 한참 법 공부에 빠져있을 때 대법원이 주최하는 가인법정변론대회가 열렸다. 실제 사건을 각색해 변호사 팀과 검사 팀으로 나눠 공방 재판 과정을 똑같이 진행하는 대회였다. 각각의 로스쿨에서 3명이 팀을 이뤄 출전했고, 이 변호사는 1년을 꼼꼼히 준비해 마지막 결선까지 진출해 정의상을 수상했다.
“함께 준비한 동기들과 좋은 상을 수상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형사사건 팀으로 대회에 참가했는데 여러 역할을 맡으면서 예비 변호사로서 많은 점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덕분에 법조인의 길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얻으며 공부에 열중해나갔죠.”
겸손의 자세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수습 변호사 시절, 이민정 변호사는 한 화재 사건을 담당하게 되었다. 발화점의 위치에 대하여 논란이 있었고, 남은 가스양으로 몇 초 만에 폭발을 할 수 있을지 국과수 자료를 분석하고 풀어내야했다. 지도 변호사는 화학을 전공한 이 변호사에게 힘을 실어줬고, 그 힘을 얻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했고, 프로그램을 사용해 발화지점 흔적을 토대로 수사기관의 문제점을 찾아냈다. 이를 기반으로 변론요지서를 작성해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된 사건을 2심에서 끝내 무죄판결을 받아 승소했다. 이 변호사는 다른 전공을 가진 것이 변호사 업무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변호사로서 언제 가장 뿌듯함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그는 의뢰인이 “진심으로 노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표할 때라고 한다. 본인의 소송 결과의 승패 여부를 떠나 그의 노력에 만족하고 수긍할 때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현재 로스쿨 1기 동기들과 법률사무소 <감동>에서 노동관련 소송을 맡고 있다. 노동시장 이야기들은 금방 사회적 이슈로 자리 잡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이 변호사는 윤상서 ·강훈 변호사와 함께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더 넓은 세상을 만나기 위해 노동시장 전체를 파악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민정 변호사의 좌우명은 진인사대천명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가 돌아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변호사라는 직업이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늘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패소를 경험할 때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며 이 변호사는 앞으로도 의뢰인의 입장을 대변 할 예정이다. 신뢰받는 변호사로서 의뢰인들 마음속에 힘이 되었던 변호사로 남고 싶다. 2017년은 이민정 변호사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대구를 대표하는 노동전문변호사로서 이 변호사의 밝은 내일에 응원의 메세지를 보낸다.
■ 법률사무소 감동 이민정 대표변호사
■ 卒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1기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사과정 (상법)
■ 前 고용노동부 부산노동청 근무(2012~2014)
■ 現 대구광역시 소청심사위원
대구지방 경찰청 시민감찰위원
대구지방 검찰청 서부지청 형사조정위원
대구달서경찰서 범죄피해자 신변보호단 고문변호사
전문건설업체 철근콘크리트 사용자협의회 고문변호사
대구외국인 인력지원센터 고문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