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조경 칼럼] 봄이 열린다

  • 입력 2017.02.17 15:37
  • 수정 2017.02.21 10:29
  • 기자명 정정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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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낀 유리창에 비추어진 햇빛이 눈 부셨던 긴 겨울도 이제는 간다. 겨울이 길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자연을 통해 볼 수 있는 푸름이 많지 않아서 일까? 추위 때문에 활동을 적게 하면 시간이 늦게 가는 것과 같은 이유일까? 아니면 추운 것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다른 계절에 비해 겨울을 길게 느껴지게 만드는 걸까?
추운 겨울에는 실내와 실외를 경계하는 유리창에 성에가 낀다. 특히 그 옛날 유리창에는 외부와는 단열이 부실한 대신 더욱 아름다운 성에가 낀 것을 볼 수 있었으나 요즘 겨울은 실내온도가 춥지 않아 이 같은 성에를 감상 할 곳이 매우 한정적이다.
<닥터지바고> 영화 속 ‘다차’의 창문에 유리창에 끼어있는 성에와 창살문에 쌓인 눈의 모습이 추억처럼 기억되기도 한다.

그래도 그동안 겨울을 덮고 있던 흰색의 아름다움을 여지없이 녹이는 태양이 있다. 이 빛에 의해 또다시 만들어지는 봄! 이 ‘봄’은 모든 것이 깨어나는 듯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이때쯤이면 힘 없어 보이는 새싹들이 대지의 지표를 들어 올릴 만큼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것을 뚫고 나오거나, 부서뜨리거나, 넘어트리면서 세상에 나와 사물을 본다.

자신을 남에게 보여주고, 빛을 통해 나 이외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서로를 보는 것이 ‘봄’이다. 이렇듯 ‘봄’은 사람이 주체가 되는 계절이기 보다는 긴 겨울을 땅 속에서 지내다가 어린 싹으로 지표를 뚫고 나와 삶을 시작하는 식물들이 주체가 되는 개념을 갖는 단어이다. 자연의 근본을 파악함으로서 만들어지는 단어가 ‘봄’이라고 생각한다.

조경은 시각적인 것을 통해 처음 접해진다. 식물들이 바라본 ‘봄’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시각(視覺)과 연관되어진다. 조성된 조경 공간 또한 시각적인 것으로부터 인간에게 인지되므로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정원을 어떻게 조성했느냐’에 따라서 보여 지는 결과물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느냐가 매우 중요하므로, 조경이 미술의 영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이다. 다시 말해 조경에 있어서 미술적 요인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납매, 히어리, 매화, 홍매화, 영춘화, 산수유는 작은 꽃을 피우며 봄을 맞는다. 이때쯤 꽃샘추위가 겨울을 잊고 사는 모든 것들에게 가혹하게 다가오지만, 자연에 역행하며 철모르고 피는 꽃들을 정리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위에 나열한 꽃들은 무서운 꽃샘추위에도 적응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최첨단 장비를 갖춘 기상청보다 정확한 이 꽃들 덕분에 사람들 또한 덩달아 봄을 맞이하게 된다.

봄이 열린다. 조경인의 마음도 자연환경과 가까운 생각으로 친환경이라는 진정성과 함께 봄을 열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의식 있는 어머니와 의식 있는 조경인들과 함께 건강한 살림살이를 볼 수 있는 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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