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바를 불 때 가장 행복한 튜비스트, 중앙대 음대 허재영 교수

“음악교육은 무한 반복보다는 물리적 현상과 원리를 깨달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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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란 음을 소재로 하여 박자·선율·화성·음색 등을 일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회화·조각·건축물 등 조형예술은 3차원의 세계에 실재하는 공간적인 대상을 영구적인 형태로 창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 음악은 소리의 순수성에 시간적 성질을 가미한 단적인 시간예술이다. 즉 조형예술이 공간예술이라면 음악은 시간예술이라 규정할 수 있다. 여러 악기 중에서 국내 최초로 튜바 독주회를 열었고 세계 3대 튜바 팀에게 멤버로 제의받을 만큼 세계적 튜바 연주자로서 인정을 받고 있는 튜비스트, 중앙대 음대 허재영교수를 만나 그의 음악세계와 음악철학 및 교육관에 대해서 인터뷰했다.

 

대학입학을 위해 처음 접한 수자튜바가 인생을 바꾸었다
허 교수는 여의도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합창반에 들어갔다. 그런데 혼자 해야만 재미있는데 여럿이 하니까 주목도 못 받고 재미가 없어서 합창반을 그만두었다. 학교가 설립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밴드부가 창설되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관악반이다. 당시에 가장 인기 있었던 악기는 섹소폰이었다. 다들 차지하고 남아있는 게 고작 작은북이었다. 고3이 되면서 대학을 진학해야 하는데 1년 안에 할 수 있는 악기를 찾다가 아무도 하지 않은 행진용 수자폰(튜바)을 불게 되었다. 다행히 중앙대 음대에 1977년 합격하게 되었다. 선배라고는 전국대학에 74학번 딱 한분이 있었다. 그는 튜바로 합격한 중대 음대 제1호였던 것이다. 그래서 혼자 배웠다.
“중학교 때부터 뭐든지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인지 악기도 열심히 불었죠.” 습관적으로 형성된 열심이 오늘의 그를 만든 것 같다.

사실 그는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자라왔다. “아버지는 제가 태어난 지 2개월 되었을 때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한 번도 아버지 이야기를 안 하시고 이모로부터 아버지가 공부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작은 누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전교 1등 했는데 집안이 어려워서 대학진학의 꿈을 접었어요.” 고등학교 때 집이 연신내였는데 추운겨울에도 마포대교를 건너서 여의도고등학교까지 걸어 다녔다고 한다. 한강다리가 정말로 길다라는 것을 프랑스나 독일에 갔을 때 알았다는데 ‘모든 사물도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달라 보인다.’는 평범한 진리도 깨달았다.

소리는 파동이고 물리현상이므로
물리에 대한 이해가 악기를 잘 연주하는 비법

악기가 내는 소리는 모두 물리적이다. 컵을 던질 때, 핸드폰을 던질 때, 종이 한 장을 던질 때, 각각 물리적인 현상이 다르다. 그런데 그동안 음악교육은 이런 물리적인 현상을 이해하고 가르친 게 아니고 길게, 짧게, 부드럽게 등과 같이 주관적인 기준으로 학습했다. 원리를 가르쳐주어야 오래가고 객관적인데 느낌이나 감으로 알려주니까 금방 잊어버리고 배우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생각하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무게가 다르니까 떨어지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하고  진동이나 파동이 다르니까 소리가 달라진다는 원리를 터득해야 합니다.” 맞는 말이다. 사실 중, 고등학교 때 예체능은 실기위주로만 시험을 보고 대학에 들어가니까 원리를 모른다. 주법과 호흡법처럼 공기를 마시고 내쉬는 모든 행위는 물리현상현상인데도 말이다. 심지어 작곡과에서도 단순히 소리에 대한 이해정도만 하지 물리를 배우지 않는다.

그는 학생들에게 “만일 다른 사람들을 가르친다면 기존의 방식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정관념에 대한 것부터 탈피해야한다고 한다. 즉 튜바는 체격이 좋아야 한다든지 남녀의 차이나 연령의 차이로 인해서 악기선택도 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한다. 악기도 무조건 좋은 것으로 시작해야한다는 생각도 옳지 않다고 한다.

가난 때문에 알게 된 나눔과 더블어 살아가는 법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받아들여야”

지금은 국가장학금 등 장학제도가 잘 되어있다. 하지만 허 교수가 대학을 다닐 때는 성적 장학금과 실기 장학금밖에 없고 오로지 융자만 있었다. 그래서 그는 대학4년 동안 교복이 번질거릴 정도로 닳아서 가난의 대명사였다고 한다. 가난은 너무도 잘 알기에 박봉이지만 매달 30~50만원을 장학금으로 모아서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도와주고 있다.

그는 “종교를 떠나서 운명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사람이 부유하게 혹은 가난하게 태어나고 싶은 것은 것이 아니라 운명으로 받아들여서 가난한 사람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은 부모님에게 하루 한 번씩 감사하다고 해야 한다.”라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또 부유하게 태어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면서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나눔을 실천하는 게 곧 행복이라고 했다.

 

재차 강조하는 교육의 중요성과
열정적인 연습과 원리의 깨달음으로 나날이 늘어나는 연주실력

음악은 재미있다고 하는 그는 교향악단생활을 거의 20년을 했다, 항상 악기 속에서 사니까 어떤 때는 소음으로 들릴 때가 있어 때론 귀도 좀 쉬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과도한 연습으로 1988년 안타깝게도 앞니를 상실했다. 또한 내이관 압력이상으로 2005년부터 악성 이명에 시달리면서 불면증, 우울증으로 고통 받다가 고막을 뚫었다고 한다. 악기라는 게 진동에 의해서 소리가 나기 때문에 직업병이 발생한다. 소리는 정확히 들어야 하고. 불어야하기에 ‘이명 현상’이 심하다. 귀를 주로 사용하는 음악가로서의 당시 심정은 음악인생뿐만 아니라 인생을 포기하고픈 좌절감으로 팽배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더욱 연습과 연구에 주력한 결과 “나는 악기를 불 때 가장 행복하다. 그 안에 나의 인생이 담겨 있으니까. 평생을 튜바와 함께할 것이다.” 라고 다짐을 했단다. 

그의 음악인생에 있어서 가장 거부감을 주는 요소가 ‘반복’이라는 것인데 반복만 많이 한다고 실력이 늘지 않다는 것을 유학생활 중에 겪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강조했다.“30년 전에 독일로 유학 가서 기초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밥 먹고 혼자서 연습만 했어요. 동양에서 온 연습벌레는 금방 소문이 퍼졌죠. 그러던 중 어느 교수님이 날보고 두 손으로 엑스표시를 하는 거에요. 연습이 다가 아니라는 뜻이었어요.“

국내 잘못된 교육방법을 지적하는 허 교수는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하고 열정이 뜨거워도 악기의 원리의 이해가 못하면 무용지물입니다. 물론 연습을 많이하는게 낫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연습시간의 투자보다는 악기를 다루는 방법론과 원리를 이해해야한다.”고 말한다.
 
 한 악기를 가지고 여러 명의 연주자가 같은 곡을 연주해도 사람마다 호흡법과 주법이 달라서 다른 음색과 음악이 나온다. 따라서 악기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항상 연구할 필요가 있다 즉 악기의 과학적인 원리를 이해하면서 연주 하는 것이 음악적 완성에 도달하는 첩경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또한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 질문이 없다는 것은 관심이 없다.”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아울러 배우는 사람의 잘못보다는 가르치는 사람이 잘못 가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꼬집었다. 다시 말해 획일적인 교수법과 무한반복만을 강조하는 우리 교육현실의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유학파출신 교수들도 우리현실에서는 그곳에서 배운 방식이 아니라 우리현실에 맞게 바꿔버리는 태도인데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 응용, 비교·분석할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주법과 호흡법에서 기본적인 공통점은 있지만 학생들 또한 개체성을 인정하고, 내면의 움직임에 의해 음악을 표현해야 한다는 말이다. 

 국내 최초로 튜바  독주회 경력을 갖고 있는 허교수는 “독주회라는 것이 청중과 소통하며 연주자의 음악적 기량을 발표하는 것이지만, 저에게는 그동안 연구하고 발견한 주법, 호흡법 등을 응용 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독주회에 대한 확실한 철학과 신념을 밝혔다. 그래서 독주회는 자신이 연습하다가 개발한 기법을 보여주는 동시에 개선할 점도 발견한다고 했다. “튜바를 비롯한 금관악기는 다른 목관악기와 현악기와는 달리 음역에 제한이 없고, 연주자의 능력에 따라 다양한 음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악기입니다.”라 튜비스트로서의 자부심을 피력했다.

독주회를 통해 기량을 향상시키고 튜바의 활성화와 대중화에 노력
열정적으로 제자들을 양성해 국제콩쿠르에서 좋은 성적 올림

 중앙대학교 음악대학을 거쳐 독일 Koln(쾰른)국립음악대학을 졸업한 그는 쾰른 국립음악대학 오케스트라와 독일 Youth Wind Orchestra 단원으로서 독일순회 연주를 하는 등 해외에서도 활발한 연주활동을 해 왔으며 국내 최초의 튜바 & 유포니움 독주회를 비롯하여 총 30회 이상의 튜바 독주회를 개최했다. 4장의 튜바 & 유포니움 Live CD를 발매하여 세계적인 관악기 작곡자인 Barton Cummings로부터 ‘Suite for Tuba No.4’를 헌정 받았을 뿐 아니라 ‘Concerto for Tuba and Concert Band’ 세계초연을 위촉받기도 하였다. 
그의 제자는 유포니움 전공자로서는 국내 최초이자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 전공생 최초로 국제 관악 콩쿠르에 입상하는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으며 그동안 허 교수의 제자들 중 4명이나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한국 튜바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허재영 교수는 튜바 음악의 활성화와 대중화를 위해 연주회의 다이내믹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다양한 퍼포먼스나 타악기와의 합주 등을 통해 관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있다. 2012년 6월에는 국내 클래식 음악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음악평론가협회(회장 김영식)에서 선정한 제28회 서울음악대상을 수상에 이어 2014년 제5회 대한민국 미래창조경영 대상 수상했다.

“선생님은 점점 더 실력이 늘어갑니다”고 학생들이 말한다. “저도 갈수록 나아지고 있고 재미가 있고, 실력이 느는 것 같아요.”라고 허교수도 공감했다. 악기를 다루는 연구를 안 하면 퇴보가 빨라진다. 발전은 희미하지만 퇴보는 한순간이라고 하는 그는 인생의 종착역까지 튜바와 함께 하겠다며 튜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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