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백년 한글 서예 먹빛 찬란한 인생

교육자·서예가·시인 다채로운 역할, 서예가 한곬 현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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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넘도록 한길을 걸으며 찬란한 먹빛 인생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자신이 쓴 글을 표구해 벽에 걸어 놓고도 한 달도 채 못 돼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내려 버리는 사람. 자신의 글씨에 “끝없는 반성을 하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 한곬 현병찬 선생이다. 현병찬 선생의 글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출렁이며 파도체 본연의 미를 자아내고 있다. 앞서 제주현대미술관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개최하고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는 현병찬 선생의 서예 인생을 올레길처럼 둘러보도록 하자.

서예에 오롯이 바친 60년 한 길
한 곬 현병찬 선생은 그의 아호에서 알 수 있듯 서예에 오롯이 한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그가 붓을 잡은 것은 60년 세월이 넘었지만 언제나 공부하는 마음으로 초심을 잃지 않는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8년 전 고향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사범학교 재학 시절 소암 현중화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아 서예를 시작했다. 1960년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며 1980년 해정 박태준 선생에게 가르침을 이어받아 서예 기술을 발전시켰다. 대한민국 서예 초대작가전,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초대작가전, 대한민국 현대 서예초대작가전, 한글서예 큰 잔치 초대, 한중서예 교류전, 제주 오키나와 미술가 교류전 등의 다양한 전시회에 참여했으며 제주말(方言) 동경 대판 서예전 주관 및 출품을 맡았다. 19981992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대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보유했으며 현재는 저지문화예술인마을 촌장과 (사)한국미술협회부이사장, 한국예문회 수석부회장, (사)제주도한극글서예사랑모임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제주도서예협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도 현판과 제주 저지문화예술인마을 표지판 글씨체는 한곬 선생의 작품이다.>←줄쳐있는 부분은 사실이 아닌 부분임
1992년 국전미술대전 서예부문 대상을 수상해 한글서예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은 한곬 선생의 궁체는 수려하면서도 중후해 외유내강의 한민족 특성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궁체가 조선시대 궁중에서 시작돼 실용적인 서사 목적으로 사용됐고 광복 이후 그 맥을 이어 한문서예와 더불어 서단의 한 부분으로 존속하면서 60여 년을 갈고 다듬어졌다면 현 선생의 60년 서예 인생은 그 과정의 연속이었다. 한국의 서예를 대표하는 궁체는 현 선생의 대표 서체이며 현 선생은 한국의 대표적인 한글 서예가이기 때문이다. “더는 완벽한 모습의 궁체가 나타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정교하다”라는 감상평은 현 선생의 서예 저력을 방증하는 실례라 할 것이다.
현 선생의 판본체는 많은 변화 과정을 거쳤는데 1990년대에는 자음 이응을 육각형으로 쓰는 등 강직한 형태를 나타내던 서체가 2000년대 초에는 획의 물결을 강조해 율동이 넘치는 형태로 바뀌더니 이후 점차 각을 줄이고 부드러운 여성과 인자한 어머니의 모습처럼 바뀌었다. 무한한 희망으로 다가오는 제주 바다의 파도와 제주 사람들의 인품, 친근한 제주 말씨를 하나로 엮어 파도체라고 이름 지은 선생의 판본체 변형은 묵직하면서도 날렵하고 강직하면서도 부드럽고 생동감 넘치는 생명의 제주 파도 형상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는다. 또 한곬 선생은 전통서체인 궁체와 판본체를 완벽하게 서사할 뿐 아니라 무궁무진한 변화를 주는 판본체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강한 것을 부드럽게, 육중한 것을 가볍게 표현해 부드러움 속에 강한 것을, 가벼움 속에 중후한 것을 표현해냈다.
현 선생의 고향 제주 사랑은 유별나서 한글서예로 제주어 생활화를 실천하고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이름을 단 글씨체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가 직접 창설한 제주도한글서예사랑모임은 이러한 맥락에서 건립됐으며 매년 전시회와 후진양성 등의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곬 선생은 한글 서예에서 뚜렷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서단에서도 조형성과 작품성에서 뛰어남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전국연구대회 서예교육논문에서 1등급을 차지하는 등 서예 이론에도 박식함을 드러냈다. <한글서예본> 저서와 특기적성교육, 서예지도자료, 현대 한국 대표 서예가 한글서체폰트를 제작해 한글 서예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보통 서예 하면 한자를 연상하기 쉬운데 한자는 중국의 글자요 한글은 순수한 우리나라의 문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계적으로 우수하며 독창적이고 매우 과학적인 글자로 꼽힌다. 국어학계 석학 홍윤표 교수는 <석학인문강좌> 시리즈로 펴낸 <한글>에서 한글 문화를 다양하고 종합적이며 인문학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 인간의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할 새로운 동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한글을 우리말을 표기하는 문자이면서도 동시에 우리 문화를 창조하고 전달하는 기능이 있다. 우리가 모두 한글을 잘 알아야만 더 나은 문화로 발전시킬 원동력을 갖출 수 있다.”고 홍 교수는 설명했다. 우리 문화의 원천인 한글 정보를 수집하고 한글의 원래 뜻이 무엇인지 치밀하게 답사하며 한글이 배우기 쉬운 연유는 무엇인지 한글이 어떠한 측면에서 우수한지 등의 문제제기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창작자인 예술가들도 한글의 문자학적인 연구 외에 한글과 문화, 한글과 예술, 한글과 과학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관계에서 이를 지탱할 동력이 되는 인문학적 다양성을 세밀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병찬 선생은 그의 작품에서 서예의 다양성과 깊이를 뿜어내는데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제주 삶의 정신을 오롯이 담아낸 명승, 속담, 시구 등을 소재로 다양한 서체의 한글 서예작품을 표현하고 있다. 아울러 작품을 통해 정해진 격식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는 파격성과 문화예술의 조형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또 도자기 작품, 제자들과 함께한 작품 등을 전시하며 작품의 다채로움을 꾀했으며 이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한글 서예의 깊은 아름다움과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60년 동안 먹을 통해 한글을 그린 그의 손에는 연륜의 주름과 인생의 지혜가 묻어났으며 이는 오롯이 그의 글자로 투영된다.
한편 현 선생은 역사적 인물에도 관심을 가져 그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는 2013년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의거지 중국 흑룡강성 상지비림원에 ‘안중근시’를 새긴 시비(詩碑)를 세웠다. 이는 세계 서예술을 한 자리에 선보이기 위해 마련된 세계문자서예비림 제막식에서 현 선생이 한글 대표 서예가로 참석해 ‘안중근시’를 한글로 새긴 것을 공개한 것이다. 흑룡강성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지인 만큼 그의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리는 뜻깊은 행사라는 의미가 있다. 현 선생은 또 조선 정조시대 제주도에서 유통업으로 거대한 부를 형성하고 이를 전부 제주도민에게 기부한 여성 기업인 김만덕 객주의 현판을 친필 제작했다. 2007년에는 제주도의 묵향을 담은 서예작품을 통일의 염원을 담아 북한에 보내는 사업을 추진하기도 하는 등 여러 의미 있는 행사를 펼쳤다.
현병찬 선생은 그의 고향 제주를 대표하는 서예가답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청, 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검찰청, 법원, 제주시민헌장탑 등 제주도의 수많은 비문과 현판의 글씨를 남겼다. 또 대한민국미술대전, 남농미술대전, 추사선생추모 전국휘호대회 등 심사위원장과 세종한글서예대전, 대한민국 현대서예문인화대전, 경인미술대전 등 다수의 서예대전의 심사위원과 운영위원을 맡아 왔다.
더불어 그의 큰 업적에 맞게 다채로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미술협회 한글서예분과 위원장, 세종한글서예큰뜻모임 부이사장이사장, 제주도한글서예사랑모임 이사장, 사단법인 영주영묵회 이사장, 제주도서예문인화총연합회 공동회장대표회장, 한국서학회 이사, 공무원서예인회 고문, 제주도서예가협회 고문, 국제서법연합 제주지회 고문, 중국연변문자예술협회 해외고문, 정연회 자문위원 한국예문회 회원부회장 등을 맡으며 서예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박병천 서예학 박사는 “제주도에 우뚝 솟아난 한라산 정상에 비유해도 모자람이 없다”고 현병찬 선생을 극찬했으며 교육자이자 서예계 대들보로서의 현 선생의 비중을 설명했다. 현 선생은 “1만 8천여 신이 살아왔다는 삼다 삼무의 섬 제주의 수많은 민속 문화 가운데 일부라도 시각화된 서예작품으로 남기는 것이 좋겠다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또 부족하나마 지나온 세월의 발자취를 남기려는 의도에서 제주의 언어를 글로 담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필묵에 담긴 제주어는 한층 아름답고 깊이 있어 보인다.
한 미술관장은 “현병찬 선생의 서예적 아날로그 감성과 현대적 감성이 어우러진 서예 작품은 독창적인 한글 서예의 세계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현 선생의 서예 작품을 감상한 관람객은 “마치 기계로 쓴 듯 정갈하고 빈틈이 없으면서도 수십 년 서예가로서의 기운이 풍기는 서체는 따스하고 인정이 넘친다”고 감상평을 남겼다.

시인 현병찬 제주어로 한글 아름답게 조탁
현병찬 선생은 2015년도에 언어의 조탁가 시인으로 등단을 하는 등 끊임없는 수련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마음에 와 닿는 시 구절을 쓰다 보니 저 자신이 시인이 됐다. 글자 놀이에서 말의 향기가 풍겨 나옴에 제주언어 사용에도 열중했다.” 그는 시인이 된 과정을 이렇게 풀어냈다.
서예가이자 교육자인 현 선생은 2016년 9월 24일 제주현대미술관 초청 현병찬 서예전을 개최했다. 당시 미술관 정문 앞뜰에는 시비가 제막됐다. 이는 현 선생의 제자들이 현 선생의 희수전을 맞아 정성과 뜻을 모아 마련한 것으로 교육자로서 거의 반세기를 교직에 몸담음과 동시에 서예인으로서 60년 한글 서예 사랑 외길 인생을 살아온 예술인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시비 제목 <곶자왈>은 제주도 말표준어로 ‘덤불숲’이라는 뜻이다. 현 선생이 직접 짓고 쓴 이 시비는 제주도의 풍광을 현장의 살아있는 언어로 재미있게 노래하고 표현한 시로 제주방언의 특이한 미감과 해학적인 시상의 운율, 조형적 운치의 형상미가 한데 어우러진 작품이다.
‘덤불숲 가시덤불숲/ 소나무 밑 고사리들과/ 돌 틈의 칡넝쿨들도/ 하늘 보려고 대롱대롱베롱베롱/ 한껏 남보다 커보려고/ 모가지까지 늘리며/ 경쟁하며 모두 나와서/ 빙그레빙그레 웃는구나/ 벌레들은 저리가라/ 새들도 이따가 오라/ 그렇지 않아도 기쁨겨를 없는데/ 왜 이리 북적대느냐’
시 <덤불숲>이다. 이를 통해 현 선생의 제주언어 사랑과 시인 면모를 볼 수 있다.
서예술만으로 끝나지 않는 현 선생의 작품은 시로 그 영역을 확대했다. 시는 인간 당대의 삶을 진솔한 문화적 체험을 통해 문학 역사 철학의 복합적 총체를 형성하며 문화의 실체적 본질을 전하는 생태계의 영원성을 추구한다. 당대의 주체로서 당당하게 인간 존재의 순간적 자유를 창조하려는 목적이다. 그것은 21세기 문화적 특성으로 공감의 감성 소통력을 발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즈음에서 선생의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힘은 무엇이며 근원지는 어디일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 첫째는 한국인의 정신적 본향으로서 한글사랑, 둘째 영원한 평화 마음의 안식처인 고향 산천, 셋째 만인을 즐겁게 하기 위한 세상과의 소통, 넷째 화려하고 역동적인 창작 유희의 감성미를 뿜어내는 역설의 미학이다.
그의 작품 <한글의 힘>은 ‘한글날 노래’를 옮긴 작품으로 한글이 세계의 으뜸 문자로서 쓰기 쉽고 간결하며 그것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훈민정음 서문>은 본래의 서체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분석이다. <주시경 선생 말씀>은 ‘말’과 ‘글’ 두 글자를 좌우에 배치해 동적으로 시각화한 감성적 이미지가 빼어난 작품이다. 내용은 “말과 글이 다스려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려 지나니라”가 핵심이다. <희수>는 제목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 서문에 나온 ‘상형이자방고전象形而字倣古篆(물건의 형상을 본뜨되 글자는 옛날의 전자篆字를 모방하였다는 뜻)’을 연상하게 한다. 상형과 방고전의 원리를 습득한 작가의 통찰력이 작품에서 빛을 발한다. <오름에는 향기가 있다>는 ‘김순이님의 시, 오름은 살아 있다’에서 시인의 ‘살아 있다’를 서예가가 ‘향기가 있다’고 제목을 바꾼 점이 이채롭다. 이는 화론에서 말하는 자신의 존재인 긍정의 자유를 기철학적이고 경락학적 ‘몸 철학’의 감성으로 인식했을 때 느끼는 ‘수(受)’ 즉 ‘촉(觸)’의 향기이다. 그 감성적 인식을 필획의 선으로 표현한 것이며 대자연의 섭리에 따른 정갈한 필치의 절제된 감정을 잉태한 오름의 향기는 한글 서예 회화 디자인이 융합된 총체적 의미의 집약체다. <흐르는 물처럼>은 한글의 간결한 선의 형상적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한 작품이다.
<영주십경>에서 ‘영주’는 진시황의 한무제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불사약을 구하러 사신을 보냈다는 가상의 선경이다. 이 작품에서는 제주의 아름다운 10경을 노래했다. 일출봉 사라봉 망선문 백록담 산지포 고마장 산방덕 폭포 귤밭 돌이다. 모두 제주의 풍광을 대표하는 말들로 반흘림의 궁체로 정갈하면서도 중량감 있는 운치가 일품이다. 마음의 안식처로서 경건함의 표상으로 자연물을 그려냈다. <한라산>은 한라의 기상을 제주에서 태평양까지 세계를 향해 펼쳐 보겠다는 제주의 자연풍광을 노래한 시다. 작가의 생동하는 붓이 여과없이 작품에 녹아 있다. <제주 해녀 예찬시>는 ‘바다에서 복을 캐고’라는 제목이 붙은 직접 짓고 쓴 서사시다. 바다를 삶의 터전이자 생의 보고로 살아가는 해녀 가족 구성원 사이의 진솔하고 순수한 생활 현장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작가가 삶의 현장에서 무수히 체험하면서 얻어지는 인격의 깊이는 일상의 창조이며 바탕으로 그의 작품에서 다시 태어난다. 물꾸럼물꾸럭, 숨비소리 등 제주 방언의 신비하고 순정한 토박이 말이 정겹게 다가오는 때다. <먹으로의 여행......길>은 희수(喜壽)를 맞은 작가의 내면적 성찰 고백서로 진한 감동을 주는 추천시다. 60년이라는 긴 세월을 붓과 함께한 작가가 제자들과 후학들에게 보내는 우정의 편지이자 자기 개벌서인 것이다. <고은 선생 시>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은 시인이 냉철한 시선으로 쓰고 서예가는 자기 감각으로 아름답게 이미지화했다. <안병욱 선생 말씀> ‘먹을 가는 것은 곧 자기의 인격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요/ 글을 쓰는 것은 자기의 인생을 정성스럽게 쓰는 것이요/ 붓을 씻는 것은 자기의 때 묻은 마음을 정갈하게 씻는 것이다’라는 글에서 반백년 넘게 먹을 갈고 그것으로 글을 써온 현 선생의 인생을 짐작할 수 있다. 쉬지 않고 자신을 다잡았을 그에게서 인생의 경륜이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 이는 서예술의 절제와 비약의 인식적 확장을 상징화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송강 선생 사미인곡 중에서>는 관직에서 물러나 서민들과 전원에 살며 임금을 그리는 조선시대 문인 송강 정철 선생의 내면이 보이는 작품이다. 순수하고 정감 있는 우리말을 아름다운 자연의 언어로 피력했으며 당대를 대표하는 정교한 언어의 창작 작품이다.

현병찬 선생은 아주 긴 시간 글을 써왔다. 서체를 통해 뜻을 표현했고 이내 자신의 사고(思考)를 글에 담아내기도 했으며 반듯한 인품으로 후학을 양성해왔다. 또 사회 각 분야에서 그의 역량을 펼칠 역할을 맡아왔다. 먹, 글과 함께 한 그의 인생이 아름답고 고결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조용히 쉼 없이 먹을 갈아왔을 그간 그의 시간과 인내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그의 작품에서 우러나는 향기는 시대와 세대를 거슬러 오래오래 세인들의 가슴 속에 살아 파도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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