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와 현실주의 미학을 넘어

풍자와 해학의 경지로 확장, 심화된 작품세계, 공감적 상상력을 지닌 조각가 박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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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고단함속에서도 늘 우직하게 가족의 울타리를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이 땅의 아버지들이 있다.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해보지만 현실의 벽은 그리 만만치 않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어라 일만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황소”와 닮았다. 소를 빌려 아버지의 삶을 이야기 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나가는 조각가가 있다. 그의 작품은 오래 감상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가 되는 ‘쉬움’과 작가의 개인적이며 절실한 표현이 공감을 통하여 모두의 스토리가 되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소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을 풀어내며 우리 시대 슬픈 역사 속에서 잔잔한 감동과 미소를 선사하는 작가 박민섭님을 만나 보았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조각을 하게 된 동기와 남다른 손재주를 가진 가정사
 박 작가는 바다와 육지가 공존하는 아산만 부근의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5학년 올라갈 무렵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뼈 속 깊이 사무쳐있었다. “그 당시 동생은 초등학교 2학년, 위로 중학교 다니는 형과 누나가 있었죠. 농사지을 땅이 얼마 안 되었기에 어머니는 농번기 때 늘 품을 팔러 다니시며 고생해서 저희 4남매를 키우셨어요.”라고 지금은 돌아가신지 8여년 정도 된 어머니를 회상하였다.

중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취업을 나갔는데 졸업 무렵에 교장 선생님이 그의 재능을 아깝게 생각하셔서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군대를 다녀와서는 ‘대학을 안 나오면 할 게 없다.’는 생각을 해 열심히 공부하여 홍익대 미대 조소과를 입학하였다. “다른 학생들이 중학교 때 부터 4~5년 정도 준비하는 미대입시를 학력고사를 마치고 45일정도 실기를 준비하였는데 어려서부터 남다른 손재주가 있어서 그런지 쉽게 합격하였다.”며 원래는 80학번이어야 할 나이지만 실제는 86학번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조상 중에 손재주 있는 유전인자가 있는지 여쭤보았더니 “아버지가 그렇게 손재주가 있어서 가마니를 짠다든지, 멍석 같은 것을 짜면 꼼꼼하고 이쁘게 잘 만드셨어요.” 또 “누나가 한복에 그림 그리는 재주가 뛰어나다.”라며 손재주가 많은 것이 유전적인 요인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예술 활동의 고달픔과 애환 및 위기극복 미대입시제도의 문제점과 장단점
작가지망생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미래가 막막하다. 박 작가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입학정원이 40명인데 지금 14,5명이 작가활동을 하고 있을 만큼 작가의 생활이 어렵다. 작품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판매가 쉽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어있다.
“저 같은 경우는 남다른 손재주를 인정받아 흉상 조각 등 여러 가지 주문들이 들어와서 간간히 생계를 이어나갔어요. 하지만 미술재료들이 워낙 비싸다보니 작업을 근근이 할 수 밖에 없었어요”라고 했다.
그 역시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남의 작업만 뒤치다꺼리한 적도 있고,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 교육보험 등 많이 가입했지만 끝까지 유지한 것이 없다. 그럴 때는 우유배달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꼭 조각 관련 일거리가 생겼다.” 며 어려운 시절을 회고하였다. 그러나 작가로 생활하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아르바이트를 해도 조각과 관련된 일을 했다. 손이 놀고 있거나 다른 일을 하면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해서 대학 때부터 쉬지 않고 계속 작업하였다고 한다. 인체에 대해 잘 이해해서 대학 재학 중에 ‘캐리커쳐’ 등을 그리고 만들어 신문이나 언론에 주목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박물관에 있는 ‘미니어쳐’는 그가 상당수 제작했다고 귀뜸해 주었다.

바뀐 미대 입시제도에 대해서도 그의 생각을 간단히 들어보고자 하였다.
“오늘날 대부분 미대에서 보는 입시미술은 획일적이에요 .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어떤 주제가 주어지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그려내는 기술에 집중합니다. 손재주는 기계적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테크닉 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머리에서 생각하고 지시하는 것입니다.”라며 창의적 생각보다는 기계적 손기술 연마에 집중하게 하는 입시미술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한 홍익대의 경우 실기를 안보고 중고등학교 시절에 어떤 미술활동을 했는지 ‘미술활동보고서’를 써서 제출한 포트폴리오와 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지만 이 제도에 대해서도 그는 “성적 좋은 학생이 미술활동 보고서를 잘 작성해서 대학에 입학해도 다시 미술학원에 다니는 진풍경도 벌어지고, 보고서 허위 작성 등을 통해 부정입학을 하고자하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다”며 새로운 제도 또한 허점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평가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핵심이라며 “철학적, 인문학적 사고를 통해 얻어지는 창의성과 반복 숙달을 통해 얻어지는 손재주에 대한 평가의 균형”을 강조하였다.

작품의 구상과 현실사회를 풍자하거나 황소 같은 아버지를 의인화한 작품세계
처음에는 사실주의 작품 등을 하다가 소띠해인 2009년에 장은선 갤러리에서 9명의 작가들에게 ‘소’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있어서 황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평생을 우직하게 고생만하다 가는 소를 보면서 아버지의 삶과 모습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아버지가 첫 작품이고 제목은 ‘아버지’였다. 그 당시 그 소가 주목을 받게 되어 언론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고 소 작업을 해달라는 주문이 이어졌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개인전을 선뜻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충하거나 요식행위 같은 것을 싫어해서 개인전을 하려면 제대로 해서 보여주고 싶어 했다.
다소 늦은감이 있었지만 첫 개인전을 2004년에 열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솥단지와 숟가락을 이용한 <생존게임>은 미시적인 것부터 생존경쟁을 하게 되어 태어나는 인간의 본성을 형상화 하였다. 그리고 미국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을 재현한 후 횃불대신 기관총을 든 <유아독존>은 이라크 전을 전후해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대한 작가의 통렬한 비판이 드러나 있다. 국내적으로는 고단한 지하철의 풍경,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노숙자 등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이유 있는 반항>이 있다. 백범 김구나 다산 정약용 같은 위인들과 동일선상에 놓여있는 <어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을 모나리자로 패러디한 작품에선 거칠어진 어머니의 손을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강조하여 위대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작품세계는 심오한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진솔성을 찾는다고 한다. 젊을 때는 사회적인 현실을 찾았지만 지금은 소중하게 생각하는 소소한 것들을 작품 속에 표현하고자 한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그의 작품에는 소가 많이 등장한다. 소는 오늘날엔 소고기라든지 우유 같은 유제품이 전부이지만, 과거에는 무거운 짐을 다 지고 힘든 농사일을 도맡아 할뿐만 아니라 농촌에선 재산 목록 1호이자 단순한 가축 이상의 존재였다. 죽을 때는 가죽과 살과 뼈까지도 모두 남기고 떠난다. 그런 소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현시대에서는 ‘가장’인 아버지가 아니던가?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서 평생을 헌신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아버지의 자리가 위태해지고 불안해지고 무너져 가고 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에 대한 존엄이나, 고단함을 풍자하는 작품으로 서정적, 서사적인 것을 담고 싶어 한다. 예컨대, <버티기>라는 작품은 가족을 위해서라면 물러설 수 없는,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텨내야만 하는 아버지이며 또한 그의 숭고한 정신인 것이다.

이루고 싶은 소망과 향후 작품 활동에 대한 계획
다양한 소재로 창의적인 작품을 꾸준하게 제작하고파

재료적인 것도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있고 창의적인 작품을 하려고 하고 있다. 최근작품은 ‘고재’ 즉 한옥을 허물 때 나온 대들보를 가지고 꺽쇠로 이어 만든 작품이 있다. 고재는 금강송으로 만든 한옥에서 나무가 휜 것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비싸다. 틀어질 만큼 틀어지고 휠만큼 휘어서 100년이 넘어도 변형이 되지 않고 그대로라고..건축물의 잔재를 사용하는 것은 아버지의 존재를 다시 세운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농경사회에서는 소가 노동력의 상징이었다면 현대문명에서는 자동차가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그래서 요즘 그가 만드는 작품은 자동차가 소임을 다하고 폐기처분 될 처지에 있는 자동차 앞 프레임(모노코크)들을 이어서 강력하고 힘센 황소 이미지를 형상화 하였다.

황소작업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할 예정이란다. 아울러 이곳이 파주시 ‘삼방리’라는 동네인데 여기에는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고 해서 그런 인생을 담고 싶어서 “삼방리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이곳에는 순수하고 순박한 사람들도 있고, 외국인 노동자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작품으로 하고 싶은 인생이 있어서 스토리로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실제로 몇 분들은 도움을 주신 분들도 있고 어떤 분들을 사진도 찍기 싫어하는 분들도 있다. 대략 15명 정도 등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구멍가게 아줌마도 모델로 쓰고 싶다는 뜻을 전했지만 아직은 본인인물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은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조각가의 눈으로 얼굴을 보면 인생을 살아온 인생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할 것인지 아니면 느낌으로 표현할 것인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들을 보관할 수 있는 수장고를 만들고 싶고, 시대정신을 가지고 사회를 고발하면서도 잔잔한 여운이 남는 작품들, 생활 속에 묻어나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작품 속에 꾸준하게 담아내고 싶은 소망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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