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가수가 되는 것이 꿈”

세상이란 주머니를 막 비집고 나온 송곳 같은 가수 정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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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어릴 적 간직했던 꿈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어릴 적 꾸었던 꿈을 이룬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대단하다.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이 경제적인 부분이든 사회적인 시선이든 만만치는 않기 때문이다.

이상은 달콤하지만, 현실은 달콤하지만은 않은 경우가 많은데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너무나도 커서 메꿀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늘은 어렸을 적 꿈꾸었던 가수라는 꿈을 잊지 않고 실현해 나가고 있는 정소이 가수를 ‘제12회 독도문화제’에서 만나보았다.

송곳 정소이, 세상이란 주머니를 뚫다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한다. “음악은 상처 난 마음에 대한 약이다.” 라는 말도 있듯이 정소이 가수에게도 이 명언은 적용되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 그녀는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혼자서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유년시절을 강원도 영월 산골 마을에서 지냈던 정 가수는 자연을 벗 삼아 숲 속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다 보면 그 시간만큼은 걱정이나 불안을 떨쳐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노래를 부르면서 실력이 자연스럽게 쌓였지만, 자신이 가진 노래 실력에 대해서는 정확히 인지를 못하였던 것 같다. 20대 때도 다른 사람들이 주변에서 가수를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노래를 잘 불렀지만, 가수를 막상 하려고 하니 어떻게 가수를 하는지도 몰랐고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덮어놓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낭중지추란 말이 있듯이 정 가수는 송곳이었다. 주변에서 계속되는 가수 권유와 지금 해보지 않으면 평생 못 이룰 것 같다는 정가수의 굳은 결심이 결합해 지인이 소개시켜 준 노래 강사협회와 연계된 노래학원에 들어가게 된다.

정가수는 노래학원 수업이 끝나면 행사장을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노래를 부르다 보니 실력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서 행사장이 아닌 무대에 초청받아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이런 정가수를 눈여겨본 노래강사가 행사장에서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현재 정가수의 스승인 신민호 작곡가에게 소개시켜 주었고 그렇게 정소이 가수는 세상이란 주머니를 뚫고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의 멘토, 신민호 작곡가
정가수는 인터뷰 내내 스승인 신민호 작곡가를 많이 언급했다.
“ 사실 처음에는 신민호 선생님이 저에게 신경을 별로 쓰시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제자를 10명 정도 배출하셨는데 교수님이 저를 선생님께 추천했을 때는 더 제자를 받을 생각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저에게 관심이 별로 없으셨습니다.”

이렇게 제자를 더 이상 받을 생각이 없던 신 작곡가의 마음이 바뀐 것은 정 가수의 진지함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젊은 나이도 아닐뿐더러 가수라는 어릴 적 꿈을 위해 하던 일까지 그만두고 진지하게 임하는 태도를 보여줬던 것이 신 작곡가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습을 할 때 마이크를 한 번 잡으면 5시간 동안 놓지 않을 정도로 연습에 몰두하였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빛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런 태도를 보이자 신민호 작곡가가 먼저 정가수에게 큰 무대에 한번 서도록 해보자고 제안하였고 그때부터 신 작곡가로부터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 음악을 처음 배웠을 때 모창을 연습하면 노래 실력이 쌓인다고 모창을 연습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민호 선생님께서는 가수는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모창을 절대 못하게 하셨습니다. 저와 선생님이 같이 연습한 동안 저만의 색깔 찾는 것이 가장 힘들었는데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긴 하지만 이제는 선생님 덕분에 저만의 색깔을 어느 정도 정립한 것 같습니다. ”

스승에 대한 애정은 작은 부분에서도 드러났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요즘은 신민호 작곡가님의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였다. 평소 독특한 목소리를 좋아하던 정가수는 신민호 작곡가의 목소리가 남들과 다르다고 하였다.

“선생님이 가수생활을 하였고 창도 하셨는데 창을 하셨기 때문에 소리가 다른 분들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아직도 따라 하기는 힘들지만 들어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소리가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이 듣는 사람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이 점이 노래를 배우는 과정에 있는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마움을 아는 가수 정소이
정가수는 어릴 적 꿈이었던 가수로 활동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자신이 노래를 해야만 하는 사람인 것을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라고 한다. 그간 가수를 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현실적인 문제나 가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였던 것이 아쉬웠다면서 이 말을 덧붙였다.

“ 꿈을 위해 계속 도전을 하는 사람도 있고 현실적인 문제로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꿈이란 것을 가지고 있으면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주변에 꿈을 위해 도전하라고 권하는 편입니다. 저 역시도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하였고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힘든 일이 더 많겠지만 두렵거나 걱정이 되기보다는 과정이 즐겁습니다. ”

자신의 어릴 적 꿈인 가수를 위해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가수생활을 하는 정 가수는 꿈을 위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주변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어서 감사하다고 하였다.

그녀가 감사하다고 말한 것이 진정성이 느껴진 것은 말이 아닌 그녀가 하고 있는 행동에서였다. 정가수는 요양원에 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녀가 가는 곳은 파주의 재능기부 참사랑예술단, 안산 대부동 아름다운 요양원, 사회복지 법인 프리웰 누림홈, 강서구 GSC 요양센터, 자유로 요양병원, 파주 거북마을 요양원, 파주 진인 요양원, 김포 향유의 집 등 다양한 곳에서 노래봉사를 한다고 하였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어르신들을 보면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 요양원에 많이 가는 편입니다. 요양원에 가면 주로 민요풍의 노래나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트로트 노래를 불러 드립니다. 가서 노래도 불러드리고 말동무도 해드리고 오면 보람을 느낍니다. 저도 여기까지 오기까지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마음을 잊지 않고 늘 봉사하는 삶을 사려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관객이 적을수록 더 떨려
정가수는 노래를 열심히 해서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가수라고 인정받고 싶다고 말 하면서 사람들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녀도 여느 신인가수처럼 노래를 할 때 관객이 2~3명 일 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수는 한 명의 관객이 있더라도 노래를 해야 한다는 것이 가수로서의 신조라고 말하면서 이 말을 덧붙였다.

“ 무대에서 노래를 할 때 관객이 많을 때보다 적을 때가 더 떨리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이 이상해서 스스로 생각을 해보니까 관객이 적을수록 제 노래를 들어주시는 분들이 더 집중해서 들어주셔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관중이 저의 노래에 집중할 때 제가 즐거움을 주었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은데 앞으로 가수활동을 오래 하면서 이런 기분을 많이 느껴보고 싶습니다. ”

정소이 가수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낭중지추라는 말이 떠올랐다. 낭중지추는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것처럼 빼어난 인재는 숨어 있어도 저절로 드러난다는 의미인데 사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주머니 밖에 있는 송곳은 그저 송곳일 뿐이다. 송곳이 주머니를 뚫기 위해서는 일단 주머니 속에 들어가야 한다. 주머니 밖에 있는 송곳은 주머니를 뚫지 못한다. 이런 관점에서 정소이 가수도 주머니에 들어가려고 부단히 노력하였고 그 결과 세상이란 주머니를 뚫고 나올 수 있었다. 주머니를 뚫고 나온 정소이 가수가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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