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학- 반전 문학 작가 시대의 아픔을 글로 풀어내다

6·25 전쟁의 아픔을 겪은 작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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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은 그것을 겪은 당사자만이 온전히 아픈 것. 우리는 그 아픔에 공감과 위로를 할 수 있지 만, 당사자가 겪는 아픔의 무게에 견줄 수는 없다. 아픔, 고통, 상처는 한 인간의 삶을 궁지에 내몰게 한다. 하지만 그 고통을 극복했을 때는 승화된 삶으로 고통의 꽃을 피우기도 한다. 6·25 한국전쟁은 아직 대한민국의 기억속에 잔존한다. 1950년 6월 25일에 북한국의 불법 남침으로 일어난 전쟁의 그 날을 기억하고, 다시는 한 민족 간의 아픔을 겪지 않겠다는 우리의 의지가 담겨 있다. 대한민국국민 모두에게 6·25 전쟁은 아픔이고 비극이었지만,  그 시대에서 직접 형제자매 부모를 빼앗기는 전쟁의 비극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삶 전체가 뒤흔들리는 아픔과 가슴 찌르는 깊은 상처로 남았다. 
이런 아픔은 그들의 삶과 함께했다. 6·25 전쟁을 겪고 반전문학의 한 장르를 장식하고 있는 송진현 작가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문학을 통해 아픔을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여내면서 독자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 메시지는 전쟁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문학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쟁을 반대하고 아픔을 전한다.

문학을 통해 전쟁에 반대하는 의지를 담아 
송진현 작가는 경남 산청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소설과 시, 수필을 쓰면서 왕성한 문학 활동을 해 왔다. 장편소설 ‘돌개바람’으로 소설(1995년), 현대시문학에 시(2002년), 문예시대에 수필(2003년)로 등단했으며, 한국문인협회, 부산문인협회, 연제문인협회, 남강 문학, 시림 문학 등에 소속되어 있다. 산청·함양사건 양민희생자유족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장편소설 ‘돌개 바람’ 외 1권, 시집 ‘가나다라 마바사’ 외 3권을 내기도 했다. 이런 활동을 바탕으로 한국전쟁문학 상(2006년), 인권문학상(2014)을 받았다. 
송진현 작가는 6·25 전쟁을 실제로 경험했고 가족을 잃은 경험자이기 때문에 전쟁의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심정으로 문학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뜻이 담긴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므로 송진현 작가 의 글은 주로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 작품이다. 장편소설 ‘돌개바람’은 6·25 전쟁 전후에 공비 소탕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을 무차별 학살한 국군의 만행과 억울하게 학살당한 국민들의 참 상을 낱낱이 고발한 저서이다. 시 작품은 ‘바다를 걸어가는 바위섬’, 반전 시 ‘마파람’, 6·25 사변을 서사시로 묶은 ‘아리쓰리 아리랑’이 있고, 100개의 시가 수록된 ‘가나다라 마바사’는 최근 2015년에 발간되었다.

작가의 모든 작품은 6·25 전쟁과 밀접한 관계

‘부모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말자. 다른 사람들 배운 만큼 나도 배우자.’ 
송진현 작가가 유년기 때 이미 6·25 전쟁은 시작되었다. 전쟁 끝은 하루 아침에 나지 않았다. 지리산 인근에 숨어든 북한군 2만명 가량을 소탕하지 못해 늦게까지 치열했다.
1950년 9월에 이승만 대통령은 남원에 본부를 둔 공비 토벌대를 조직해 공비소탕을 꿈꾸었지만 전쟁을 다 경험하고 산에서 더 빠른 공비유격대를 잡기는 어려웠다. 그후 1951년 2월 7일에 산청군 금서면에서는 슬픈 역사가 새겨진다. 국군이 양민을 모아 공비라고 누명을 씌워 학살하는 사건이다. 결과를 받으려 조이는 정부 보고를 위해서였다. 산청군 금서면에는 화계와 서주가 강을 경계로 있는데 서주에 사람들을 모아서 줄을 세워 앉혔고, 국군이 양민을 학살했다. 그때 희생된 인원이 354구의 후손만 정식 등록되었지만, 단 체에서는 700여 명이 넘을 뿐만 아니라 그때의 군인들은 1계급씩 특진했다. 
어린 송진현 작가는 북계라는 촌락으로 피난했다. 곰고개를 넘어가는 순간 총소리가 들렸지만, 전쟁에 일어나는 흔한 총소리라고만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수많은 양민들이 학살되었고 그중 부친도 사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큰집에서 살았고, 직계형제는 없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부친이 국군 한테 죽었다는 이야기를 절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저는 트라우마가 생겨 집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었습니다. 명절날에는 친척들이 모이는 데 그때도 방 안에만 있으면서 사람들과 담을 쌓으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제 어린 시절은 스스로 사람들과 단절한 채 웃음이란 것을 모르고 흘러갔습니다. 그때 제 애칭이 ‘판권이’었는데, 제가 너무 웃음이 없어서 간혹 한 번이라도 웃음을 보이면 어른들이 우리 판권이가 웃는다고 반가워하며 좋아할 정도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전쟁으로 인해 부친을 잃은 고통을 견뎌내야 했던 송진현 작가는 세상을 향한 침 묵과 고립을 선택했다.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면서 나무를 나르는 소일거리로 집안일을 돕 는 생활을 이어나가던 중 어느새 청소년 시기에 접어들었다. “그때 마침 저희 동네에 독립운동을 했던 김봉권이라는 분이 고등국민학교라는 것을 설립했습 니다. 그곳에서 저는 중학교 과정을 다니며 졸업까지 했습니다. 졸업 시기가 되자 경호 중학 교라는 명칭으로 정식 인가가 되었지요.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나서 2년간 저는 집에서 농사 를 지으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저와 달리 친구들은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그때 전 어린 마음 에 부친께서 돌아가신 게 무지하셨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공부하고, 배우고자 하는 의 지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나무하러 갔다가 골목 방앗간에 지게를 벗어두고 30리 길을 뛰어 서 함양까지 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함양 농업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진학서를 적고 싶다고 했 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와서 백모님과 결판을 내는 심정으로 토로하였습니다. 학교에 다녀야 만 하니깐 부친께서 일본에서 돈 벌어 산 논밭을 팔아 학교에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학교에 다니라는 허락을 받은 후 18살 되던 해에 고등학교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학업에 충실하였고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는 집안일을 도왔습니다.” 
송진현 작가는 2시간 반을 걸어서 다녀야 하는 학교를 통학하다가 나중에는 함양읍 부근에 있 는 외가에서 숙식하고, 주말에 큰집으로 오는 생활로 학업을 이어나갔다. 송진현 작가는 자신 이 처한 상황에서 두 가지 각오를 품게 되었다. 부모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말자는 것 과 다른 사람들 배운 만큼 나도 배우자는 것이었다. 코피가 날 정도로 1년 내내 학업에 매진 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졸업 후에는 다시 1년 동안 집안 농사를 도와야 했다. 
이후 우수한 성적으로 진주교대를 입학하였고, 군대를 다녀온 후 졸업을 했다. 졸업 후에는 거제대 왜관 초등학교로 발령이 나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송진현 작가는 학교 근무를 해 오 면서도 50세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공부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며 대학원을 졸업하는 의지를 보였다.

전쟁의 아픔, 다시는 겪지 않길 바라며 시작한 반전문학 
송진현 작가에게서 전쟁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그래서 그 아픈 기억을 후손들은 겪지 않 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제 인생은 전쟁으로 인한 피해로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 서 후손들에게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안 가도록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저의 문학 활동이 모두 반전의 의미가 되었습니다.” 
송진현 작가의 작품들은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한 내용을 고백하고, 시를 통해 6·25 사변에 대한 서사시와 전쟁을 반대하는 작품이 주를 이룬다. 송진현 작가는 50세 되던 해에 부친의 명예회복에 전력을 다하고 싶다는 뜻을 품게 되면서 1990년대부터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도 신문보도가 활발했기 때문에 자료 수집을 많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비로소 1996년에 산청 함양 양민사건 특별조치법이 통과되면서 이 사건이 국군에 의한 학살 사건임이 인정되었고, 송진현 작가의 부친과 당시 희생자들은 명예가 회복될 수 있었다. 하지 만 배상 관계는 아직 해결이 안 된 상태이다. 2001년에 거부권 행사로 인해 보류 상태가 된 것이다. 국회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에는 올라가고 있지만, 마지막에 통과가 되지 않으면서 현재까지도 진행이 안 되고 계류된 상태이다. 
송진현 작가는 전쟁의 비극을 체험한 당사자이자 작가로서 문학 활동을 활발히 하며 반전문학 을 계속해서 써 내려 갈 계획이다. 유족회 부회장으로 있던 그가 명예퇴직한 이유도 이 때문 이다. 현재는 ‘삼시 세끼’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올해 발간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수필집 ‘삼 시 세끼’는 2014년에 조선일보에 투고된 작품으로써 주로 전쟁을 다룬 내용이다. 
송진현 작가를 통해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어린아이의 영혼을 바라본다. 송진현 작가는 그 고통의 무게를 아직 짊어지고 있으며 6·25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삶에서 부단히 노력 해 왔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 누구도 전쟁의 상처를 겪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그는 고통으로 인해 고독했지만, 그 고통을 통해 사람들과 연대하고 소통하기를 원했다. 비로소 승화된 그의 삶은 문학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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