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삼강오륜을 찾기는 힘든 세상

대종회가 지역에서 하는 역할은 남아 있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문가탐방 - 달성 서씨 대종회

달성서씨대종회 회장 서영택

달성 서씨(達城 徐氏)는 시조 서진(徐晉)이 고려시대 봉익대부 판도판서 달성군, 아들 서기준(徐奇俊)이 달천군, 손자 서영(徐穎)이 중대광 달성군으로 3대가 봉해 지면서 세거하게 되었다.
증손 서균형(徐鈞衡)은 공민왕(1360년) 때 문과에 급제해 간관으로 있으면서 신돈을 탄핵하고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아들 서침(徐沉)은 정포은의 문인으로 전의소감과 제처사에 이르렀는데, 세종때 달성토성(현 달성공원)을 국가에 헌납하고, 그 상과  세록을 논 할때  모든것을 사양하시고 대신 부민(府民)의 환곡이자를 한섬당 5되씩 감하게 청하니 임금께서 윤허 하시어 조선조말까지큰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이에 부민(府民)들이 선생의 박시제중(博施濟衆)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1665년 구암서원을 건립하여 봉향하고 있다.
현재 달성서씨는 7世를 기준으로 9파로 분파(현감공파, 학유공파, 판서공파, 감찰공파, 백진사공파, 생원공파, 계진사공파, 참판공파, 종사랑공파)하여 약 50만 종원이 대구 경북 등 일원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흩어져 선조들의 얼을 되새기며 살아가고 있다.

달성서씨 대종회의 사업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번째가 선조에 대한 위선사업이며 두번째가 종원간의 돈목이라 할 수 있으며 세번째가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족보 전산화를 통해 전산대동보를 만들고자는 사업, 종보 발간을 통해서 소식지의 역할에서 종원간에 화합과 타 문중과의 유대와 소통과 화합의 공간으로 넓히고자는 부분,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단법인 영남선비문화수련원을 통해 올바른 인성과 가치관을 갖춘 새로운 시류(時流)에 전통 미풍양속을 더해 아름다운 인성과 품위를 양성하는 것이다.

족보전산화 사업은 이미 1년 정도 지났다. 그동안 각 파종회장 및 파별임원, 관계자 등에 대한 안내 전달과 대종회 상임대의원회,임원회  정기총회 등의 심의, 의결을 통해 관계 규정 제정을 했다.
달성서씨 대동보는  1702년(壬午譜)을 시작으로 1955년(乙未譜)까지 총 8차례 간행되었다, 그동안 교통과 통신의 미약으로 인해 자손의 입보가 누락된 것을 이번 족보전산화 사업으로 50만 종원이 전원 참여하여 빠짐없이 수록 되었어면 한다.

달성서씨 대종보는 계간으로 발행하고 있다. 그동안  발행 되어온 신문형에서 책자 형태로 변화 하면서 단순한 소식지의 범부를 벗어나 전 종원이 참여하고 소통 할 수 있는 화합의 매개체가 되고 중요한 자료로 오래동안 보관하도록 하였다. 여기엔 2014년 달성서씨 청년회 창립이 큰 전환점이 되었고, 능동적 역활을 하고있다.

달성서씨 대종보는 계간으로 발행하고 있다. 청년회의 활동은 1년정도 되었으며 다른 내용이 아니라 소식지나 대종회 활동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위임해 일을 시켜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대종보는 청년회에서 위탁형태로 발행하고 있다.

Q. 현대에서 달성서씨 대종회에서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인간관계에서 기본인 삼강오륜이 있다면, 삼강도 무너지고 오륜도 실종된 현시대, 대종회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다. 예전처럼 충효사상을 강조하는 전통가치관만을 갖고 추진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지역사회을 순화하고 정신문화을 순화하자는 내용으로. 선비정신을 널리심어 오륜이 살아 남는 사회를 만들고자.금년 8월7일 사단법인 ‘영남선비문화수련원’ 개원식을 개최하였으며 그 뜻을 살리고자 하며 특히 위선(爲先)을 하고 종원간의 돈목을 이룩하는 종무(宗務)가 대종회의 공유의 업무며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Q. 대종회에서 연간 치뤄지는 행사는 무엇이 있나요?
대종회는 정기총회, 임시총회, 상임대의원회, 임원회와 매월 첫째주 목요일과 셋째주 목요일은 대구거주 각 파종회장 4명 집행부 6명 등 10명이 정례회를 개최하며 사업의 입안 및 기획, 확정 및 집행은 물론이며 위선사업으로 이루어 진다 또한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2호인 구암서원 숭현사에서 매월 첫째주 월요일 오전10시에 분향봉심례를 봉행하고 매년 음력9월초하루(금년은 양력 10월1일)는 대구, 경북의 유림이 주관하여 향례를 봉행하며 중식 후 대종회 정기총회를 개최한다.
Q. 시조 묘제는 어떻게 치뤄지나요?
매년 한식일에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양리(永慕齋) 봉계산에서 달성서씨 전 종원이 모여 시조(徐晉)묘제와 2세조(奇俊), 3세조(潁), 4세조(均衡) 묘제를 봉행하고. 중식 후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中心齋) 선산에서 5세조 서침(徐沈)조의 묘제를 봉행한다.
Q. 대종회와 파종회장의 선출은 어떻게 하나요?
대종회장은 대종회 회장단회에서 추천에 의해 임원회의 추인을 받아 정기총회에 보고를 하게 되어 있으며. 임기는 2년이고 연임이 가능하다.파종회장은 각파(各派)의 규정에 따른다.

<서영택 회장> 
서영택 회장은 80년간 구암서원 숭현사가 위치한 대구시 북구 산격1동, 한 집에서 살아온 지역의 산 증인이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할아버지 그 위의 조상들까지 한 지역에 살아10대조로 이어 내려오는 긴 역사를 자랑한다.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집안에는 농사와 함께 정미소를 경영했다. 1932년생, 서영택 회장은 일제시대 국민학교를 다녔고 해방이 되던 해에 중학교로 진학했다.
외향적이고 활발해 운동을 좋아했던 서영택 회장은 지금도 남다른 ‘건강’을 자랑한다. 경북중학교 시절부터 왕복통학거리 8km씩 걸어 다니던 운동을 평생이어나가 매일 지금도 4~5km씩은 걷는다고 한다.
경북중 6학년(지금의 고3) 시절에 한국전쟁에 참전 후 경북대학 사학과로 진학했다. 대구의대와 대구농대, 대구사범대가 합쳐져 경북대학과 경북사범대의 종합대로 성장했던 1953년에 입학했다. 
“당시만 해도 직장은 거의 없던 시대입니다. 농사위주의 1차산업이 지배했고 그나마 정미소라도 했으니 나름 장남으로서 역할을 하기 부족함은 없었어요.”
지역에 살면서도 격랑기가 몇 번 있었다. 민족대이동과 같은 전란의 시대를 겪으면서 여기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지역과 고장을 지켜야 한다는 남다른 의무감에서였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에 참여했고 현재까지도 지역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초대광역의원에서 시작해 현재 대구향교재단 이사장까지 맡으며 드는 생각은 오로지 하나. ‘어떻게 생각하니 아직 역부족이구나’라는 생각이라고 한다. 진인사대천명을 강조하며 지금까지 종사나 대종회라는 부분을 종원들 사이 뜻있는 사람끼리 모여 일체감을 느끼고 역량을 넓히려 애썼으나, 한계를 늘 느꼈다는 점을 솔직하게 전했다.
서영택 회장은 앞으로 위선, 돈목(敦睦)을 목적으로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달성서씨 대종회의 활동을 계속해 나가며 대종보전산화 사업을 의미있게 마무리 하고자 한다.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