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인 조각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운 바람소리의 향연, 조각가 김희양

“미술대전 특선·조형물 공모 최우수 여러 번에도 그저 아름답고 예쁜 걸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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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고향집 ‘팔봉재 조각공원’엔 박물관·체험학습장·교육장까지 평생의 그림 꿈 꿔”

지난 1997년 대전광역시전 입선을 시작으로 미술대전 특상과 대상만 해도 여러 번이고, 각종 조형물 공모 등 거의 매년 수상을 놓치지 않은 뛰어난 작가이지만 그저 상복이 있을 뿐이라는 간단한 대답 뿐, 논밭에 들어갈 때나 신는 낡은 진흙장화 차림의 그에게선 여느 시골 농부의 사람 좋은 냄새가 먼저 났다. 기자의 이런저런 질문에 아무렇지 않은 듯 내내 여유롭게 내뱉는 말마다 한결같이 정이 묻어났다. 으레 묻는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해서도 평론가야 어떤 말을 하든 자신은 그저 아름답고 예쁜 걸 한단다. 보기에 좋지 않으면 만드는 것도 이렇듯 시골에 내려와 사는 것도 별 의미가 없으니 말이다.

“주택공사, 토지공사, 서울 도시개발공사 등등 굵직한 공모작품과 미술대전 당선 여러 번”
 돼지 먹이를 주고 온 차림 그대로 인터뷰 자리에 앉았다. 작가의 가장 최근 작품은 지난 제 5회 거창화강석 조각심포지엄 전국공모 당선작품인 ‘화합.’ 3개월의 작업기간을 거친 높이 9미터에 달하는 조각이다. 거창화강석 조각심포지엄은 지난 2007년 제 1회를 시작으로 2015년이 그 대단원의 막이었다. 때문에 경남 거창스포츠파크 내 가장 큰 메인탑을 공모했는데, 때마침 김희양 조각가의 작품이 선정된 것이다. 원래 유명한 거창석이었지만 사람들에게 차츰 잊혀져가던 차였고, 때문에 군에서는 계속해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공모하면서 거창의 돌을 활성화시켜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15년 아예 종합편으로 해서 마지막 대형설치물을 구상한 것이다. 한 작가의 메인작품 하나만을 영구히 올리기로 한 것. 때문에 김희양 조각가로서는 의미가 더 컸다. 서산시에서 6억 5000만 원을 투입한 공모사업에 당선된, 나라사랑기념공원 내 현충탑도 작가의 의미 깊은 작품이다. 주택공사, 토지공사, 서울 도시개발공사 등등 굵직한 공모작품과 미술대전 당선만 해도 여럿이고, 용인·장성·거제·순천만·청계천·부천·안산·구리·대전충남, 그리고 고향인 서산 등등 전국 각지의 기념관 및 전시관, 공원마다 작가의 조각이 세워져 있다.

 

“고려시대부터 있던 풍수 제일 고향집터, 생활박물관·체험학습장·교육장까지 아우른 종합 조각공원 꿈 꿔”
 작가는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 꼭 3년만 고향 서산에 있자고 했다. 그것이 올해까지다.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님께서는 워낙에 바쁘게 사셨던 분이라, 그것이 오롯이 아들인 자기 몫이 되었다. 일주일에 3번 한서대와 공주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빼고는, 파주 작업실도 자주 왔다갔다 하지도 못하고 당분간은 이곳 일에 열중이다. 닭과 염소, 돼지에다 오리와 거위는 마당 한 켠의 못에서 풀어놓고 키운다. 트랙터, 포클레인에 이양기까지 해서 논농사도 조금씩 하고 있고, 지금은 방학이라 밀린 숙제 실컷 하는 기분으로 이것 저것 분주히 일하고 있다. 작가의 말로 대지예술을 하고 있는 것이란다. 땅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니, 작업 스케일이 훨씬 더 커졌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 집터가 옛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풍수지리 상으로 팔봉산 여덟 봉우리 맨 끝자락에 턱하니 위치해 있어 충청도에서는 제일 좋은 곳이다. 팔봉의 모든 기운이 여기에 다 몰려 있으니 풍수 하는 사람들도 곧잘 찾아와 보고 간다. 작가의 계획은 따로 있다. 지금 사실 김희양 조각가는 자신의 집 주변으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 돼지를 키우고 유기농으로 채소를 가꾸는 것도 모두 다 그의 그림 안에 있는 것들이다. 여기서 모두 자급자족을 해서 집터는 풍경 좋은 식당으로, 집 앞으로는 미술관과 건너편으로 생활박물관을, 그리고 미술교육이 전공이었던 작가의 바람대로 그 사이 공간에는 체험교육관과 아이들의 체험학습장을 만들어 놓을 생각이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종합적인 공간이 되는 셈이다. 작가가 얘기하기를 하나 하나 예쁘기 만한 제자들이 졸업하고도 종종 자기 스승님을 보러 놀러 오고,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찾는다고 한다.

“정적인 조각에서 느껴지는 바람소리의 향연, 자유로운 작가의 작품세계”
 작가는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조형물 공모 당선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을 했다. 청계천 홍보관 바로 앞에도 김희양 작가의 조각이 있는데, 조금 특별한 케이스의 작품이다. 일반 사람들의 십시일반 모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바로 청계천 문화의 다리 성금사업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염원을 담아 공모를 실시한 것. 그런데 덜컥 1등에 당선된 것이다. 작가는 아직까지도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고 한다. 그런 작가가 꾸준히 패턴을 가지고 작업하는 주제는 ‘씨앗’이다. 초기 씨앗의 모양을 형상화해서 작업하던 것에서 나무로 옮겨갔고, 이것은 다시 나무에서 큰 줄기만을 없앤 숲 형상의 추상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전의 정적이던 것에서 보다 동적인 전체의 숲모양으로 한 단계 더 진화하였다. 수많은 추상적인 이파리들이 저마다 하늘하늘 자유롭게 날아오른다.
 요즘 꽂힌 것은 조각에다 바람구멍 같은 크고 작은 구멍들을 자유로이 내 주는 것이다. 돌이나 주물 등에 일종의 숨길을 뚫어주는 것인데, 작가 스스로는 이것을 ‘인어의 눈물’이나 ‘인어의 물방울’로 비유한다. 이러한 숨구멍, 눈물방울 형상의 콘셉트는 사실 이전 작품에서도 미리 예견되어 있었는데, 마당 앞 한 켠에 둥글게 서 있는 작가의 돌조각 작품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작품명은 ‘바람소리.’ 계란 형상의 커다란 돌의 중앙 위쪽으로 입체적인 구멍을 크게 뚫고, 주변 지름으로 내려오면서 다시 몇 개의 크고 작은 구멍을 내었다. 2011년 청동조각 작품 ‘바람향연’에서는 이전의 서 있던 계란형상이 옆으로 누웠는데, 마치 사람의 한쪽 눈구멍을 연상케 하듯 구멍 하나를 크게 뚫고는 그 위로 풀어헤쳐진 여인의 머리칼처럼 수많은 구멍과 구멍들을 자유롭게 날려 보내고 있다. 마치 파도가 수없이 물거품을 일으키지만, 그 원 바다는 변함없이 그 모든 물방울들을 품듯이 말이다. ‘바람소리’와 ‘바람향연’의 작품명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전의 ‘소리’가 모여 지금의 ‘향연’이 된 셈이다.

“작가의 꿈, 그리고 평생의 그림”
 그럼에도 김희양 작가는 더 새로운 영역을 늘려가려 한다. 지금 이렇게 고향에 내려와 쉬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변화를 일구어 나가고 있다. 조만간에도 아파트와 호텔 준공에 맞춰 설치물을 준비하고 있지만, 내년부터는 다시금 본격적으로 작업에 몰두할 생각이다. 상업조각이라 해서 순수작품과 전혀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상업적인 설치물 또한 건물과 주변환경, 주문자, 그리고 지나치며 이를 보는 사람들 모두의 여건이 균형 있게 고려되어야 한다. 상업조각 또한 작가의 작품에서 주로 모티브를 딴다. 조각도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맞아 들어가야 조화로운 작품이 탄생하듯, 설치물과 전시작품 또한 마찬가지다.
 실은 조각하는 사람들은 전천후다. 용접부터 시작해 나무, 돌, 시멘트, 철골, 유리, 흙, 모래조각 등등 마치 건축하는 사람처럼 웬만한 것은 다 만들고 올린다. 김희양 조각가 역시도 이런 저런 조각작품 뿐만 아니라 나무장승도 깎고 방갈로도 짓고, 또 지금은 이렇듯 자신의 고향집 주변으로 나름으로는 원대한 조각마당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마당 한 뒤켠으로 직접 청동으로 세운 조부의 동상이 인상적이었다. 마당 여기저기로도 작가의 작품이 세월의 무게를 버티고 굳게 서 있었다. 벌써부터 작가의 집 앞에는 작가가 직접 조각하고 아로새긴 ‘八峰齋(팔봉재) 조각공원’ 비(碑)가 우뚝하니 세워져 있다. 지난 20세기 한글 서예 보급의 선도적인 역할을 한 서예가 일중(一中) 김충현 선생의 제자인 죽림(竹林) 정웅표 선생의 친필 휘호다. 이 모든 것이 김희양 조각가의 꿈이자, 평생의 그림인 것이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기는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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