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산으로 길이 남을 아카이브의 미술, 위대한 전설의 아이콘 조기현 화백

“현대조형미술의 창조적 르네상스, 아베스타의 감동의 미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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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의 생각할 틈도 허락하지 않는 즉흥적이면서도 대담한 구상이 보자마자 먼저 즉시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든다. 그리고 한꺼번에 물을 끼얹듯 한순간 확 들어오는 총천연한 단색의 향연이 다시 한 번 온 신경을 압도한다. 한참을 그의 그림에서 시선을 떼어 놓지 않는다. 그의 그림에는 단순히 본다, 감상한다는 차원이 아닌 빨려들고, 흡수되고, 사라져 없어질 때까지 혼을 빼고 넋을 놓게 되는 파격과 메타포, 끊임없는 사유가 있다. 형태와 색채 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이 모조리 대범하기 이를 데 없다. 팔십이 넘은 노화백에게서 이런 힘과 열정이 어떻게 나오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오색찬란 총천연의 색의 교향곡”
 우리나라 화단의 대표 원로작가이자 한국 예술계의 인간문화재로까지 평가되는 그 앞에서 섣불리 그의 그림에 대해 아는 척을 하기보다 그저 순수하게 한 사람의 감상인으로서 기자가 본 조기현화백의 그림은, 한 마디로 한 사람의 가슴에 단번에 불을 확 지르는 느낌이었다. 수묵화적인 굵고 힘이 뻗쳐오르는 선에다 한국 고유의 단청과 오방색, 색동색깔, 청사초롱빛, 금수강산의 수를 박아 놓은 듯한 오색찬란한 무지개빛깔, 산과 들과 바다와 구름과 하늘과 꽃과 새와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 굽이 굽이 넘실 넘실 춤을 추고 노래하고 덩실 덩실 하나로 어우러져 하나같이 생의 빛나는 환희를 합창하고 있었다. ‘춤추는 모녀’, ‘봄의 교향곡’, ‘사랑의 아이콘’, ‘학의 노래’, ‘아리랑 강산·’, ‘꽃들의 연주’, ‘아리랑 사랑’ 등등 그림의 제목마다 그렇게 저마다의 위대한 찬가를 울리고 있었다.

“그 어떤 말과 수사로도 표현이 불가능한 태양의 화가”
 한 개의 화폭 안에 이처럼 풍성한 이미지의 교향악이 울릴 수 있는 이유는 사실 그의 믿기지 않은 다양한 이력에 기인한다. 그는 세계적인 미술의 아이콘이면서도 시인, 수필가, 문학·미술·음악 평론가, 그리고 그 자신이 라틴댄스와 모던댄스 전체를 아우르는 댄스스포츠 분야에 오래 몸을 담아 온 전문 무용가로서까지 전방위의 예술적 천재성을 지니고 있는, 단순히 프로페셔널이라고 명하기에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대가 중의 대가다. 현역의 후배들은 아직도 고문님 따라가려면 멀었다며, 조기현 화백의 넘치는 에너지와 끊임없는 창조의 원천에 대해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래서 현 한국 화단에서 그를 일컬어 “조형미술의 거목”, “미술계의 천지창조”, “태양의 미술” 등등의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떤 말과 수사로도 조기현 화백을 표현하기는 불가능하다. 지금으로부터 이미 7년 전인 지난 2009년에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 3003개의 작품을 수록한 무려 104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집인 『태양의 미술』을 출간해 세간을 놀라게 했다. 지금의 작품들은 물론, 누드와 캐리커처, 꽃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해석 등등 이 작품집 태양의 미술 한 권이 그에 대해, 그리고 이 시대 미술과 예술의 모든 것에 대해 말해준다.

“대한민국 예술계의 뿌리 깊은 원로 중의 원로”
 그는 미술교사 재직 시 한국화, 동양화, 서양화, 판화에 서예, 공예, 디자인에다 조각과 조소 등등 7개 과에 달하는 미술 분야의 학습을 지도했다. 대학원 교육과정에 특별로 초빙된 데다, 국내외 430여 회에 달하는 각종 전시회에 참여했다. 화단의 고문을 넘어 원로 중의 원로임에도 여전히 그는 여기저기서 그를 찾고 원하고 필요로 하는 터에 그 나이에도 좀처럼 맘 편한 휴식이 어렵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다음날 참여할 미술대회 심사위원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있는 눈치였다. 모 단체에서 협회 회장까지 요구하는 것을 거절했다. 한맥문학 시 부문 대상, 세계시문학 가야금관왕관상, 한국예술문화 대상전 외 2회 대상 수상, 전국현장교육연구대회 최우수상 푸른기장 2회 수상, 일본신원전 국제그랑프리상, 베이징올림픽 국제미술대전 국제금상, 소크라테스 예술 대상 등등이 모두 그의 굵직한 수상이력이다. 한국미술협회·한국문인협회·한국공간시인협회 회원, 한맥문학 이사 및 부회장, 대한민국 신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자문위원, 한국미술 국제교류협회 운영위원장 및 미술교사협의회장 역임, 이 모두가 대한민국 예술계에서 뿌리 깊은 그의 위상을 말해준다.

“불가능하리만치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포에지의 세계”
 그가 지금 같은 형태와 색채를 분출해 내기 시작한 것은 2~30년 전쯤 부터다. 그전에는 수채화나 크리스마스카드와 같은 상업성이 있는 그림, 모자이크와 마블링기법(미술 표현의 한 기법으로,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지 않는 성질을 이용해 우연의 효과를 살려 작품을 제작하는 기법)을 이용한 불확정적인 우연한 추상을 펼치기도 했다. 물론 한국화와 동양화, 서예와 공예, 조각, 조소, 판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열정과 에너지는 대단했다. 지금처럼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포에지(poésie; 시풍, 화풍)의 새로운 세계를 열게 되기까지 그는 모든 영감과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아니 그 이상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갈 수 없는 길, 열 수 없는 세계를 조기현 화백은 그렇게 불가능하게 창조해 낸 것이다.

“인간의 근원에 대한 끝없는 손 내밈과 내어 맡김의 예술”
 구상과 비구상, 추상, 입체, 표현주의적인 모든 미술 세계를 아우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의 바탕은 소박하며 순수하다. 근원, 회귀, 고향, 자연, 사랑과 희망, 원시세계에 대한 동경, 결국 그의 예술의 원천은 ‘그리움’이었다. 자기 자신의 시원, 모든 인간에게 있는 원천적인 그리움에 대한 가 닿을 수 없는 끝없는 손 내밈, 내어 맡김이다. 비좁은 작업실에는 발 딛을 틈 없이 그의 환상적인 서양화 작품들로 꽉 차 있었다. 작은 컷 그림만 쳐도 3만여 점에 이른다. 전시관 하나를 꽉 채우는 것으로는 모자를 정도다. 더 늦기 전에 그만의 기념관 하나를 건립하는 것이 지금의 꿈이다. 지금보다 큰 작업실에서 온 벽면을 다 에워싸는 커다란 캔버스를 걸어놓고 거기다 칠하고, 뿌리고, 채우고, 찍고, 바르고, 온통 원 없이 찬란하고 빛나는 색과 형태의 불을 질러보는 것이 원이다.

 충청남도 보령의 보령댐 벚꽃길 인근에는 시인과 문학인의 문학비 120여 기가 세워져 있는 ‘시와숲길공원’이 조성돼 있는데, 조기현화백의 시비 2기가 세워져 있다. 그는 오늘도 여전히 그 좁고 외로운 작업실에서 새벽을 새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쓴다. 올 때나 갈 때나 손수 기자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던 노화백의 여린 손이 잊히지 않았다. 그의 이 모든 불가능하리만치 장대한 예술의 세계는 어쩌면 한 사람 한 사람, 사물 하나 하나에까지 겸허히 손을 뻗는 그의 지극한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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