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없는 봉사와 헌신, 화가·시인·가수·무예인으로 전 세계 80개 국 순회, 해선스님의 불굴의 열정

20년 간 하루 1~2시간 쪽잠에 열 개 이상 행사 소화, 자비 털어 성주 보림사에 세계인이 찾는 한국 전통문화 천국 만들어 한익희 기자l승인201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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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오늘도 열 개가 넘는 일정을 소화하시고 노을이 내려앉을 무렵이 되고서야 겨우 인터뷰 자리에 도착하셨다. 인터뷰 중간 함께 공양을 하는 시간마저 스님은 절 안팎을 왔다 갔다 하시며 다른 손님을 맞느라 정신이 없었고, 사찰 뜰의 연못 무대에는 곧 있을 음악회 연습이 한창이었다.

“하루 1~2시간 잠이 벌써 20년”
이게 가능한 일일까. 일전에 다큐멘터리 촬영 차 보름 동안을 스님과 함께했던 TBC-TV 담당 PD가 결국엔 과로로 입원하다시피 했을 정도. 스님께서 하루 잠에 드는 시간은 고작 1~2시간 남짓. 그것도 중간 중간 잠깐 눈을 감는 것이 전부다. 3시까지 꼬박 그림 작업에 몰두하시고, 30분가량 새우잠을 자고 나면 3시 반이 새벽예불 시간이다.
 “제가 좋아하는 노리개가 둘 있어요. 하나는 팽이인데, 이 녀석은 맞지 않으면 돌지 않거든요. 그 순간 팽이는 죽는 거예요. 늘 나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시련들은 나의 살아가는 의미예요. 할 수만 있다면야 편안하게 살 수 있죠 하지만 그러기 싫어요. 또 하나 바람개비는 바람만 좋으면 스스로 돌아가거든요. 하지만 여건이 맞지 않으면 내가 직접 발로 뛰어다녀야 바람개비를 돌릴 수가 있어요. 별 수 없이 내가 뛰어야죠, 그러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나는 쉬는 그 순간은 곧 죽은 시간인 거예요. 죽고 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잖아요.”

“5살 때부터 붓을 들어 현재 화가, 가수, 시인, 무예인이 되기까지”
 스님이라는 직함만 아니라면 어쩌면 그는 이 시대 최고의 만능 엔터테인먼트라 불릴 만한 사람이다. 화가, 가수, 시인, 수필가, 행위예술가, 무예인, 체육인까지 그는 홀로 열 사람의 몫을 하는 것도 모자라, 하루 24시간을 마치 이틀 삼일처럼 쓰는 사람이다. 속세와 다시 인연을 맺기로 결심한 지난 1996년 이후 각종 미술대전과 예술제에 초대작가로 공연가로 초청이 되었고, 그 스스로도 미술공예대전 유치위원장과 심사위원으로 행사를 주관해 왔다. 또 대한불자가수 대구지회를 설립해 공연을 주최했다. 지금까지 공영방송 출연도 셀 수가 없고, 2012년에는 수필 부문에, 그리고 이듬해에는 시 부문에 등단하면서 시/수필집 ‘허공마저 비워라’를 출간하였다.
 “이 밤 가득 // 설익은 단어들을 굴리고 굴려 / 한 가닥 실바람으로 / 그리움을 꿰어 묶어 본다 –염주 中”, “다 자란 산빛이 / 새색시처럼 수줍어 / 고개를 떨군 채 / 시냇물 소리 따라 / 빠알간 사연을 / 흘려보낸다 –만추 전문”, 아닌 게 아니라 스님은 뛰어난 시적 감각을 소유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스님과 함께 대면하면서 느꼈던 그 마음 씀씀이와 환한 얼굴이 그러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봉사가 아니다”
 지난 시기 해선스님은 성서공단 노동자, 외국인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동청과 경찰청 등 유관기관을 안 가본 곳 없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현재도 모 다문화가정 후원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봉사를 하면서도 사연은 끊이지 않았다. 1996년도에 우연한 기회로 만남을 갖게 된 맹인불자회원들과 난생처음 영화구경을 갔던 날, 바다를 끔찍이도 보고 싶어 하는 1급 장애인들을 위해 해병 제 1사단장에게 무조건 전화를 돌려 2개 중대를 지원해달라고 했던 일, 스님은 여기 성주 보림사 외에도 대구의 성서불교대학과 여래선원을 열고 벌써 17년 째 운영 중이시다. 그것도 또 다른 두 곳의 절은 자신이 너무도 바빠 지인 스님에게 맡기셨단다.
 “봉사는 말 그대로 봉사예요. 그러니까 앞 못 보는 봉사, 눈에 뵈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거죠 다시 말하면 이해타산을 하면 이미 봉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누가 봉사한다고 그러면 대뜸 물어요. 선글라스 꼈어요? 지팡이 짚었어요? 하며, 봉사도 분명히 도움을 줄 사람 안 줄 사람 정확히 가려서 해야 한다는 거죠.”

“80개 국을 다녀본 열정으로 보림사에 문화천국을 만들다”
 그 자신이 스포츠 관련 국제교류 위원으로서 무려 80여개 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느끼게 된  점이 많아 지금 해선스님은 아주 중차대한 일을 준비하고 계신다. 세계 어느 곳을 가나 그 나라만의 전통과 문화를 나타내는 공연장소가 많다. 그런데 스님의 귀에 한국에 관광을 온 중국인들로부터 이런 소리가 들렸다. “오라고 해서 왔더니 보여주는 것이 고작 이것이냐! 면세점 말고는 본 것이 제대로 없는 것 같다”고.  한국의 부처님오신날도 이만큼 국제적 문화축제로 바꾸어 놓은 일에 앞장섰던 스님의 바람은, 이제 세계에서 오는 관광객들에게 제대로 된 우리의 생생한 소프트문화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바로 이곳, 성주 땅의 보림사가 이제 그 첫 번째 시발점이 되는 셈. 보림사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벌써 특허청에 상표 등을 출원한 상태다. 전통문화공연을 비롯, 퓨전국악공연과 음식, 한지공예와 천연염색 등의 우리 전통문화체험 등 지금 해선스님의 머릿속에는 가슴 뛰는 아이디어들로 가득하다. 기관들로부터 단 1원의 돈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이기에, 해선스님은 오늘도 불가능할 정도로 열 몇 개의 행사를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 보림사 무대에서 연습하는 20여 명의 단원들 모두가 해선스님으로부터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 적지 않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스님의 작업실 바닥에는 새벽 내 그리다 만 호랑이 그림이 그대로 놓여 있다. 스님은 지금 어느 것 하나 손에 놓을 수 없다. 지키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것이다. 시간이 너무도 아깝다.

“보림사 무대는 벌써 손님 맞을 채비에 분주해, 전국 100개 체인을 꿈꾸며”
 “만일에 우리 보림사와 같은 장소가 전국에 100개소만 만들어진다면 청년실업에, 가출청소년 문제까지 해결하는데 작으나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곳에 취업을 하고 동시에 자신의 잠재된 끼를 발휘하며 공연문화를 배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꿈을 키우라는 것입니다.”
 한국문화체험관을 마련하고 각종 문화공연(퓨전국악, 전통국악, 민요, 판소리, k-pop, 전통무용, 현대무용)과 전통놀이(딱지치기, 제기차기, 구슬치기, 비석치기 등), 사물놀이 따라 하기, 한복체험, 음식문화체험(비빔밥, 김밥, 김치 만들기) 등을 즐기며 추억을 회상하게 되는 장소로 이미 준비되어 있으며, 벌써 많은 이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이제 손님 맞을 채비에 분주하다. 이것은 정부가 앞장서서 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문제일 것 같다고 기자는 꼭 그렇게만 생각되었다. 스님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올해 다시 경북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사회복지 쪽에서도 정책행정을 공부하려는 것이다. 내가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제는 조금씩 행정기관과 협조의 길이 열리고 있다. 금번에 이곳 대구경북지역이 방문의 해를 선포하고 아예 중국관광객유치 전담 팀을 따로 만들었다. 올 한해 대구경북 관광 예정 인원이 집계자료 상으로 중국관광객 등 약 100여만 명이 예약돼 있다고 한다. 이들 중 일부분의 관광객이라도 보림사에 들러 우리 전통문화를 체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아, 어머니 나의 어머니……”
 이곳 성주의 보림사는 한국 최초로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갖춘 법당이다. 여래선원장, 성서불교문화대학장, 범국민복지등불봉사단 전국연합 추진위원장, 그리고 (사)세계문인협회에 가입된 시인에 가수, 화가, 무술인에 여전히 배우고 봉사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 해선스님이 이렇듯 힘을 다해 세상으로 나가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스님은 어머님을 생각할 때마다 여전히 박달나무 회초리처가 아프게 가슴 한 켠을 짓이기는 것 같다고 한다. 어찌해야 어머님께 지은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참회할 수 있으려는지. 스님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 큰 불로 온 몸에 화상을 입고, 그 때부터 검게 그을린 피부로 세상과는 격리된 채 외롭게 살으셨다. 스님의 유년시절에 학교행사라도 갈라 치면 늘 큰 누나를 어머니를 대신하여 대동했다. 한번은 어머니의 모습이 부끄러워 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며 눈시울을 붉히신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내 어머님이야말로 진정한 관세음보살님이셨다”는 것을. “이제 할머니라 부른 불효는 더 많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희망과 사랑, 배려와 헌신의 수행으로 회향하려 한다.”
 “하고 싶은 말은 참으로 많아요.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해서는 내 길이 아무리 험할지라도 끝내 가고야 말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전 선글라스 끼고 지팡이 짚을 거예요. 저 죽고 나면 절대 깨우지 마세요. 극락이 어디 따로 있나요. 내 안에 있는 걸 극락으로 꺼내 쓰면 그만인 것이지요. 그냥 전 욕심이 많아서 이렇게 사는 것일 뿐이랍니다.”

“그것이 욕심이 아니었네”
 그것은 욕심이 아니었다. 기자가 부끄러울 정도의 헌신과 열정, 그리고 끝이 없는 겸허함과 순수함 그 자체였다. 스님의 시집을 몇 번이고 펼쳐보면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나보고 천당에 가란다 / 뭣 하러 그곳에 가야 하지! / 그곳은 / 착하고 아름답게 살던 영혼들의 세상 / 이미 더 이상 구제할 이가 없는 곳 // 난 지옥이 좋다 / 업장의 무게가 죄가 되어 무간의 형벌을 받는 곳 / 난 그곳에서 그들의 벗이 되고 싶다…… 이 생의 인연을 마무리하고 떠나갈 때 / 나 지옥의 문을 향해 달려가리라…… -난 지옥이 좋다 中”, “앞서 가신 큰스님은 /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 사바하 // 뒤따르던 동자승은 / 아찌 아찌 봐요 아찌 봐요 시님 아찌 모자 쓰바라…… 맨 뒤의 노보살님 / 도대체 어떤 아제가 모자 안 썼노 // 모자는 어디 있노 / 천상에서 바라보신 관세음보살님 // 그래 염불이야 어찌하든 / 그 마음만은 변치 마라…… -아제 아제 바라아제 中.”


한익희 기자  snufkinn@epeople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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