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차를 담는 차그릇을 만드는 사람

다구 도예가 현암요 오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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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택 도예가와의 인터뷰는 내내 무슨 선문답과도 같았다. 무슨 도인 흉내를 내듯이 아니라 그는 그렇게 비우고 또 흐르며 살고 있었다.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이기 보다 그는 그렇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즐기며 또 세상에 감사하고 있었다.

“고요히 도예가로 살아가는 인생”
 “천천히 하면 되요. 조용하게. 피차 서둘 일이 뭐 있나요. 이렇게 흐르듯 얘기하는 거죠.”
 마루에 오르자마자 보이는 소박한 접대실에는 도자 다구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차다발은 그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꽃잎사귀였다. 그 가운데로 연꽃대를 심었고, 거기에 차주전자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찻잔이 신기했다. 사실 주인이 거기에 찻물을 따라 주어 알았지, 처음에는 이게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궁금했다. 어느 여름날, 송이채로 땅에 떨어진 능소화꽃을 주워들고 아내는 남편을 찾았다. 기자가 보기에도 남편을 닮아 아내는 참 순결한 미인이었다. 그 능소화가 지금의 찻잔이 되었다. 바닥이 넓적한 것도 아닌데 꽃을 어떻게 찻잔으로 세울까. 가는 꽃줄기가 달린 능소화 꽃은 따로 빚은 작은 그루터기 구멍에 꽂았다. 그러니까 이 찻잔은 우스운 소리로 분리형이다. 집게와 찻숟가락을 놓는 다구도 깊은 뜻이 있었다. 인간이 다 먹어 치우고 버린 물고기의 가시, 가시물고기 사이 사이에 작은 다구들을 꽂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자신의 호인 ‘현암요’를 따라 손수 이름까지 ‘현어’라고 지었다. 현암은 차그릇을 만드는 가마를 뜻한다. 그게 바로 오순택 도예가가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이다. 문경이 고향이지만 이 터는 2004년에 당시 황무지를 매입한 것이고, 그렇게 2년에 걸쳐 지금의 황토집을 지었다. 자그마치 5000만 원의 사비를 들여 손수 뒷동산에 돌담도 쌓았다. 바쁠 것 없이 하나 하나 쌓다 보니 어느새 야트막한 담장이 되어 있었다. 마당 한 켠으로는 이곳 주월산 자락의 맑은 물이 사시사철 떨어져 내린다.

“차가 좋아 시작했던 다구 도예”
 도예가의 세 남매 모두 아버지를 닮은 도공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억지로 무엇을 하라고 시킨 일이 없었다. 거의 방임에 가까울 정도로 아이들을 풀어두었다. 집 주변 곳곳으로는 그런 아이들이 한창 도자기를 공부하면서 만든 형형색색의 작품들이 놓여 있었다. 그 상상력에 있어서만큼은 청출어람인 듯, 기기묘묘한 얼굴들도 많았다. 물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20살에 시작한 도제일이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았나 기자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도 꿈이 없이 취업에 지쳐있는 20살 청년들에 비하면 빠른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오순택 도예가는, 때문에 자신의 모든 작품이 다구이다. 자기가 만들어서 차를 마시고 싶어서였단다.
 “하나의 형상은 곧 그의 생각입니다. 사람을 보고서가 아니라 그 주변의 형상을 보면 그를 알 수가 있어요. 그 모든 형상들엔 일기처럼 그의 생각들이 녹아들어 있죠. 굳이 부연할 필요가 있나요. 부족하니 그러지요. 부연이라는 말 뜻 자체가 그렇잖아요. 덧붙인다는 것. 본연이 바르면 부연은 필요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선 다시 도예가는 말을 잊었다.

“세상의 모든 차를 담고 싶은 차그릇”
 오순택 도예가는 지금까지 차도구만 만들어 왔다. 자신이 생각이, 살아가는 주제가 차에 머물러 있어서 그렇단다. 도자가에는 그 가지가 많지만, 오순택 도예가가 다구를 고집하는 이유는 그저 간단하다. 할 수 있는 게 이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란다. 하지만 결코 다구가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도예가는 지금도 세상의 모든 차를 담을 수 있는 그런 차그릇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물음표를 만들고 여전히 계속 풀어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부지런히 차를 마시는 것이 그에게 있어 가장 큰 공부다.
 “사람도 화려하기만 하면 오래 가지 않아요. 그냥 수더분한 사람이 오래 가는 법이지요. 그릇도 마찬가지입니다. 담백하면서도 그 속에 세련미가 녹아 있어야 하지요. 무심하게 빚는다는 것이 아무 생각 없이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끊임없는 고민과 훈련을 통해 자연스레 작품 속에 나의 생각이 베어든다는 것이죠.”

“흙 본연의 색감과 질감”
 오순택 도예가의 다구 작품을 보면 가공을 했다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보면 볼수록 원래 흙 그대로의 색감과 질감이 묻어난다. 그래서 보고 또 보고, 만지고 또 만지고 싶어진다. 이런 식의 느낌은 유약을 하지 않고 알몸으로 불을 만나면서 생기는 것이다. 불과 그대로 만나고 남은 여운이다. 이런 도자기는 변수가 있어서 더욱 재미있다. 자신도 이것이 들어가서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옛날 우리 어른들은 요변(窯變, 도자기를 구울 때 예기치 않게 색깔과 상태, 모양 등이 변형되는 일)이라 하여 아니라 생각했지만, 아름다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은 만들고 실패해 보는 것이다. 그런 속에서 하나 하나 고쳐 나가는 것. 하지만 어느 것도 실패해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에는 그 순간만의 답이 있다.

“봄산을 닮은 도예가 오순택”
 2001년에는 상해 정부 초청으로 중국대사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그 당시는 중국, 일본, 대만 등 바쁘게 돌아다닌 시기였다. 그리고 2004년 개인전을 끝으로 지금까지 이곳 문경 밖으로 잘 나가려 하지 않았다. 올 4월 30일부터 일주일여 간 열리는 문경찻사발축제에서 그간의 기다렸던 오순택 도예가의 작품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도예가와의 짧은 이야기를 마치고 화구(아궁이)가 있는 뒤뜰에 올랐다. 그곳을 잠깐 돌아 오르자 오래된 산수유 거목이 한창 노란꽃망울을 터뜨린 옆으로 기와를 얹은 온돌방 한 채가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들어가 함께 앉으니 참 오랜만에 뜨끈한 옛날의 구들을 반갑게 만날 수 있었다. 작은 기와집 위로도 경치 좋은 정자가 또 하나 놓였다. 이 모두가 지금까지 오순택 도예가와 그의 아내가 하나 하나 쌓고 올린 것들이다. 도예가는 잠시 정자에 앉아 먼 발치 봄날의 문경을 내려다보았다.
 “작품이 뭐 얼마나 대단하고 많고를 떠나, 지금까지 나는 재미나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어요. 지금도 그냥 매일 열심히 사는 것밖엔 없어요. 이렇게 봄이 되면 산에도 갈 줄 알고요. 일만 열심히 하면 다인 줄 알았던 젊을 때와는 다르죠. 예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이렇게 조금씩 살아가는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나는 노래 하나가 있었다. 양희은의 ‘인생의 선물.’ “봄산에 피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정말로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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