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 입력 2013.04.08 14:08
  • 기자명 김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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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전한’의 추억 속으로


공포


그녀가 불러주었다. 잊고 지냈던 그 노래를.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두웅실 떠 가는, 연못에서 사아알살 떠 다니겠지.’

이렇게나 노랫말이 아름다운 동요가, 나에게는 어릴 때 가장 공포스러운 노래로 들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대명동 ‘안지랭이’라는 동네. 아지랑이가 많이 피어 오르는 곳이라 해서 그 이름, ‘안지랭이골’.

가을날 스산한 바람 등지고 집으로 가는 길에 키 큰 미루나무들이 서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고 미루나무 낙엽들이 마구 흐드러지게 낙하하던 그 길. 그 길 아래쪽에 있었던 연못 비슷한 웅덩이에 나뭇잎 배들처럼 둥둥 떠다니는 미루나무 낙엽들.

가을바람이 창문을 흔드는 밤이 되면 웅덩이에 떠다닐 나뭇잎들이 걱정되었다. 그 어둠 속에서, 이렇게나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자연의 만물은 모두가 그 어둠 속에서 홀로 떠다니는 외로운 것들이라는 막연한 공포감.

나는 이렇듯 따뜻한 방에 누워있는데 그 나뭇잎들은 어둠의 물 위로 떠다니고 있겠지, 싶은 공포감. 그럴 때 조용히 불러보았던 그 노래.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이렇게나 아름다운 노래가 그렇게나 외롭고 공포스럽게 다가 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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