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로 인생 후반전이 행복합니다

경찰관에서 서예가로 다시 태어난 선학(仙鶴) 송기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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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100세 시대, 도전하기 늦은 나이란 없다. 그래서 난 오늘도 붓과 화선지를 꺼내 든다.’ 故레이건은 80세가 넘어 재선에 성공해 미국 대통령이 됐다. 중국의 등소평은 90세 가까운 나이에 실용주의에 입각한 개혁조치로 중국경제 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 도전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특히 100세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여기 정갈한 서체로 인생 후반전을 뜨겁게 시작한 이가 있다. 바로 서예가, 선학 송기수 선생이다.

서예와의 첫 만남
경찰관으로 30년 간 공직생활을 한 선학 송기수 선생. 종로구 인사동은 그의 오랜 관할 지역이었다. 골목골목을 오고 가며 자연스럽게 옛 것과 서예작품들을 접했다. 특히 어린 시절 한문 선생님이었던 조부에게서 배운 붓글씨 경험까지 더해져 퇴직 후 그를 서예의 세계로 안내했다. 여기에 좋은 스승을 만난 건 더 없는 행운이었다. 문방사우 구입을 위해 들린 인사동 한지집 주인에게서 서예가 전정우 선생을 소개받았다. 그는 120서체로 720종류의 천자문을 완성시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수많은 명필가들이 천자문을 써왔지만 원나라의 조맹부가 6체, 명나라 문징명이 4체, 당나라 구양순이 3체 그리고 우리나라 한석봉이 2체의 천자문을 남겼다. 이것만 보더라도 전정우 선생의 위엄을 알 수 있다. 그런 스승이 바로 옆에 있었으니 송기수 선생의 수련 강도야 오죽했을까. 쓰고 또 쓰며 화선지를 채워나갔다. 화장실 한 번 한 가고 6시간을 앉아 있었던 것도 수 날. 7년 지났을 때 비로소 첫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고 벌써 17년째 손에서 붓을 놓지 않고 있다. 이제 붓은 신체의 일부처럼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필체를 닮아가다
서예는 점과 선•획(劃)의 태세(太細)•장단(長短), 필압(筆壓)의 강약(强弱)•경중(輕重), 운필의 지속(遲速)과 먹의 농담(濃淡), 문자 상호간의 비례 균형이 혼연일체가 되어 미묘한 조형미를 이루는 예술품이다. 한자의 필체는 총 7체로, 예서, 정서, 행서, 초서, 특별체 등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 7체를 배우기 위해서는 7년에서 10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긴 인내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서예가의 명함을 내밀 수 있다.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듯 서예 필체를 보면 글쓴이의 성향이 드러난다. 송 선생은 각지지 않고 부드러운 예서체를 주로 쓴다. 그래서일까? 글을 쓰고 있노라면 “마음도 편안해지며 부드럽게 정화되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보기 좋은 음식이 맛도 좋듯, 보기 좋은 글씨는 감상하는 이의 마음까지 아름답게 한다. 분주했던 마음도 송 선생의 글을 보고 있으면 차분하게 정리된다. 그의 실력은 ‘국제미로기술대전 국회부의장상’, ‘한국향토문화미술대전 금상’등 수많은 대회에서 수상으로 이어지며 대중들과도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각종 도록에 실린 그의 글은 국공립 도서관 등에 구비돼 많은 이들에게 힐링의 시간을 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온 정신을 쏟아 한 자, 한 자 쓰다 보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너무 집중해 쓰다 보니까 새벽 4시까지 쓴 적도 있어요. 아내가 걱정되니까 빨리 자라고 불을 끄고 가더라고요. 보통 하루에 6-8시간씩 써요. 밥 먹는다고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와서 글을 쓰면 글씨가 달라져요. 그러니 잡생각을 버리고 정신을 집중해서 쓸 수밖에 없죠. 인내가 필요하고 10년 정도는 수련을 해야 해요. 그렇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꾸준히 계속해야죠. 10년 열심히 했다고 오늘 안 하거나 수련을 게을리 하면 영락없이 붓질이 티가 납니다.”

서예로 세상을 이롭게
서예를 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좋은 생각, 바른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글귀를 많이 접하고 더 나아가 정성스레 쓰다 보면 생각의 불순물이 없어진다”고 송기수 서예가는 말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서예를 접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불 같이 화를 내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한자가 낯선 젊은이들에게 좋은 글귀를 전파하고 서예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위해 송기수 서예가는 늘 고민한다. 최근에는 성경구절을 한자로 집필하면서 우리말로 함께 번역하여 새긴다. 조금이나마 서예를 편하게 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그는 서예의 이로움을 알림과 동시에 후학 양성을 위해 대외적인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사단법인 대한민국기로미술협회의 감사직을 맡고 있는 것. 2012년 설립된 이 협회는 만 60세 이상이면 누구나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어르신들에겐 서예와 미술을 통해 삶의 활력을 불어넣고 젊은이들에게 전통 예술인 서예, 문인화 등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단체에서 매년 개최하는 ‘향토문화미술대전’은 매년 5천점 이상의 작품이 출품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명성이 올라갈수록 단체가 비대해지고 출품 절차가 까다로워지는 여느 단체와 달리 이곳은 모든 이에게 문이 열려 있다. 작가들의 부담은 줄이고 오직 실력으로만 평가하기 위해 접수비도 받지 않는다. 비리와 학연•지연 없는 예술문화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찬란하게 피어나는 인생 후반전
송기수 서예가는 서예학원을 첫 방문했던 17년 전 그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서예를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배우기에 너무 늦지 않았나, 고민이 많았죠. 일단 학원을 갔는데 거기에 80대 어르신이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당신은 아직 60살도 안 됐는데 뭘 걱정이냐는 거죠. 당장 내일부터 나와서 배우세요, 하시는 거예요. 나오면서 내가 왜 이렇게 망설였지, 아직 젊은데. 나도 도전할 수 있구나, 가슴이 벅찼죠.”
그렇게 시작된 서예와의 인연이 20년을 향해 간다. 처음엔 그냥 뭔가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기뻤다. 그러나 서예에 빠져들수록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더라고요. 더욱 열심히 정진해서 죽기 전에 국무총리상, 대통령상 꼭 한 번 받아보고 싶어요. 단순히 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목표가 생기면 지금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게 되더라고요. 더 열심히 살게 되더라고요.”
꿈이 있는 사람은 나이 들지 않는다 했던가. 붓을 든 그의 손에선 주름살 대신 열정과 패기가 선명하다. 서예를 하면서 그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오늘은 어떤 작품을 써볼까, 또 내일은 어떤 글귀를 만들어볼까 생각하다 보면 하루가 짧다. 퇴직 후 누군가에겐 길고 지루했던 17년의 시간이 송기수 선생에겐 도전과 설렘의 시간이었다. 다시 시작된 송기수 서예가의 인생 후반전은 봄날의 꽃 봉우리처럼 찬란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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