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이라는 주제는 나의 카르마 Karma

나를 뛰어넘어 진정한 나를 찾다

  • 입력 2016.03.23 11:29
  • 수정 2016.03.23 12:03
  • 기자명 서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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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을 대표하는 화가 전혁림. 산뜻한 색채의 조화와 선명한 이미지가 가득한 전혁림 미술관은 아직도 봉평동 언덕에 자리잡고 통영항을 내려다보고 있다. ‘가장 통영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이야기는 통영인이라면 누구라도 동감하는 내용이다. 부산과는 완전히 다르게 마치 유럽과 같은 색을 띄는 미항 통영. 통영대교를 건너고 있노라니 여러 갤러리나 책자에서 봤던 여러 그림들과 오버랩 되었다. 통영항을 찾았을 때는 첫 봄소식을 전하는 동백이 꽃망울을 준비하는 계절이었다. 통영항 바로 옆에 위치한 조용한 작업실에서 설 화가를 만나 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동백꽃은 바로 자아(自我), 통영 그 자체 

1995년 충무시와 통영군이 재통합되어 탄생한 통영시는 유수의 인물배출이 많은 지역으로 유명하다. 시인 김춘수, 김상 옥, 극작가 유치진, 전혁림 화가를 비롯한 유명한 예술인들 외에도 토지의 소설가 박경리, 작곡가 윤이상, 공예가 김봉룡이 모두 통영인물로서 통영인들의 자부심을 더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통영에는 시화‘동백꽃’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이 모이고 있어 관심이 집중된다. 바로 동백작가인 설희숙 작 가의 활동이다. 지난 2015년 12월에 통영시민문화회관 대전 시실에서 열렸던 두번째 ‘아! 동백’전에서는 몽환적 동백이 손에 잡힐듯말듯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2010년을 넘어서며 설희숙 작가의 작품이 갑자기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보다 설희숙 화가는 동백꽃을 너무 사랑하고 통영을 좋아한다. 화가는 동백을 그린 이후 차츰 작업이 안정화 되었고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동백꽃에는 유년시절 뛰놀았던 예전의 통영이 반영되어 있어요. 그 기억속 꽃의 색감이 다채롭게 나에게 다가왔고 동백꽃을 그리며 바로 자아를 찾아냈어요.” 설화가의 작품속 동백꽃은 늘 붉은색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작가의 심성이 반영되어 보라색이나 흰색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어둡거나 매우 화사하게 변화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이경모 미술평론가는 설 화가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대상의 재현으로 출발하여 자아의 표상으로 발전한 그의 동백꽃은 이제 그에게 있어 삶의 존재이고 정체성이다. 작가의 직관은 그만의 시각으로 이를 재해석하여 감성이 투사된 새로운 형태의 자연으로 그리고 유년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시야를 확장시키게 되는 것이다. 설희숙은 그간의 작업적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변주를 시도하고 있다. 형상이 해체된 동백은 여전히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유형·무형의 추상적 모티브들은 동백과 그 가지의 여운을 드리우고 있으나 확고하게 대상을 정의하기보다는 물결 같은 연속성을 보이면서 미완(未完)의 형태로 남아있다. 설희숙은 자연의 본질과 형태를 이어 주는 끈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페미니즘적 기운 가득한 동백 

설 화가의 작업은 대부분 불규칙적으로 이뤄진다. 연속된 작업이 며칠씩 어어지기도 한다. 붓을 잡는 순간 작가의 눈빛부터 달라진다. 화려함의 극대화를 위해 배경을 금색으로 칠하면서도 손에 쥐어진 붓은 작가의 사념과 이념을 떨쳐버리고 이리저리 사방으로 뻗으며 무(無)의 공간을 뜨거운 기운으로 가득 채운다. 그래서 작가의 동백꽃 작업실은 차가운 겨울날에 온기 가득한 장소로 변해 있었다.

설희숙 작가는 석사논문 <은유적 조형언어로 형상화한 정체성 연구>를 통해 동백꽃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표현하고 싶어하는 작가들은 공동체 정체성으로 파악하곤 하는데, 본인 역시 통영이라는 지역적 공동체 정체성을 위해 동백꽃이라는 매개체와 자신의 경험에 각인되어 있는 지적, 시각적, 사회적 이미지들이 본인의 내면언어와 형상화되면서 자연과 인간이 공감하고 소통됨을 작업과정에서 얻을 수 있었다. 부드러운 선과 화려한 색상 배열과 황금종이의 꼴라쥬는 아르누보적 양식이며, 여성의 정체성 및 은유적 조형언어의 매체인 꽃을 확대하고 분석적으로 표현하고 이미지를 감상자가 페미니스적으로 소통되게 시각화했다.” 

설희숙 화가의 최근 동백은 페미니즘적 색깔이 강해져 있었다. 여성의 우아하고 섬세한 라인을 베이스로 한 모습이 꽃이자 여체(女體)이고, 희미하게 보이는 꽃 속의 모습은 여성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여성의 경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 동안 통영에서 봐 왔던 작품의 영역과는 다른 부분을 개척하고 있으며, 작품속에는 내러티브한 동백이 속삭이고 있었다. 세상의 동백꽃은 모두 캔버스에 담고 싶다는 설희숙 화가.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따뜻하고 매혹적인 동백은 강렬한 색과 부드러운 선의 조화로 만휘군상(萬彙群象) 중 단연 으뜸인 다이아몬드와 같은 모습을 가지며, 창작과정을 거쳐 만족 스러운 결과를 이뤄낸 작가의 내면적 프라이드를 담는 거울 이었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과거모습을 뒤로 항상 현재에 머물리지 않고 한 발씩 전진 하는 설희숙 작가의 모습은‘ 열정으로 가득한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솔직함이 담겨 있다. 통영을 떠나오며 설 작가의 몽환적인 동백이 통영대교, 통영 앞바다와 함께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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