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馬)과 말(言)의 언어유희로 말타기 놀이하는 유쾌한 개구쟁이 화가

말(馬) 작품을 감상하는 법, 발상의 전환이 아닌 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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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영 작가
한상영 작가

[서울=피플투데이] 탁정하기자=뮤즈는 예술적 영감과 학문적 재능을 의미하는 여신으로 ‘생각에 잠기다, 상상하다, 명상하다’라는 뜻의 ‘무사(Musa)’라는 고대 그리스어가 어원이다. 신화에 의하면 뮤즈의 여신이 살고 있는 보이오티아(Boeotia)의 헬리콘(Helixon)산 정상에 있는 ‘히포크레네’ 샘은 페가수스가 하늘로 올라가며 땅을 걷어찬 자리에서 솟아난 샘이라고 한다. ‘히포크레네’란 이름의 뜻도 ‘말(馬)의 샘’이다. 신화 속의 페가수스는 아름다운 모습과 여신들에게 ‘히포크레네’ 샘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뮤즈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예술의 여신 뮤즈와 페가수스 신화의 영향인지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많은 예술가들이 말[馬]을 작품의 주제로 삼는다. 한상영 작가도 말(馬) 사랑이 지독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한 작가는 말(馬)에 대한 집착은 유난스럽다 못해 별나다. 6년 동안 말(馬)만을 그리는 그녀는 자신의 말(馬)작품 앞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에게 발상의 전환이 아닌 직관을 요구한다. 의도한 듯 의도하지 않은 듯 그어진 검은 선들 사이에 무심한 표정의 작은 하얀 말(馬)의 소리 없는 외침이 눈물겹다. 얼룩말 한 마리가 그려진 작품 앞에서 “난 말이야” 라는 작품명이 내포한 작가의 의도를 분석하느라 고민하는 관람객들에게 너무나 단순한 작가의 설명은 우리를 적잖이 당혹스럽게 한다. 그녀는 그냥 말(言)의 중의적 표현이 가지는 언어의 유희가 재미있다고 말한다.

난말이야_80cm x 180cm_mixedmedia on canvas_2014
난말이야_80cm x 180cm_mixedmedia on canvas_2014

한상영 작가는 자신의 작품 제목은 특별하거나 어떤 심오한 뜻을 내포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한 작가는 의도하지 못한 제목이 가지는 중의적 표현으로 작품 속에 내포된 작가의 의도를 해석하고자 생각에 빠지는 관람객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런 고민을 하는 관람객들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단순히 조형적인 아름다움만을 찾으며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작품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술 작품은 작가의 정신이 담긴 것을 알기에 작가의 자아가 투영된 작품을 감상하며 작가가 숨겨둔 수수께끼를 풀고자 하는 높은 수준의 예술적 안목을 가진 사람들임을 알기 때문이다.

“난 말이야” “거짓말이야” 유쾌한 말(馬)타기 놀이
한상영 작가는 감각 상 색상·채도가 없고 명도(明度)로 구별되는 무채색(白·灰·黑)만으로 적(赤)·녹(綠)·청(靑)·자(紫) 등 모든 유채색의 강렬함을 압도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단순한 선으로 조밀함으로 표현되는 번잡스러움을 다스리는 그녀만의 구도가 이채롭다. 그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말(馬)들은 작가 자신이자, 작가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랑하는 이들의 분신이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각기 다른 말(馬)들은 서로를 향해 자신의 언어로 서로에게 말을 한다. "말머리", "난 말이야", "내말 맞나" , "저말이야", "말놀이", "거짓말이야", "말잇기", "말걸기"와 같이 작품 제목으로 작가는 말(馬)타기 놀이를 한다. 하지만 중견 여류화가의 작품이 갖는 심미적 세계의 깊이가 투영된 그녀의 작은 말은 섬세한 작업과정 때문에 완성에 적지 않은 긴 시간의 프로세스가 요구된다. 유쾌한 웃음의 개구쟁이 소녀 같은 그녀는 순백의 하얀 말에 검은 선이 덧 입혀 얼룩말을 그린다. 작은 얼룩말은 아이들의 동화책에서 금방 나온 듯 귀엽고, 재미있고, 친근한 모습이다.

 “말(馬) 갖고 말(言)장난하는 게 즐겁다”며 유쾌하게 웃는 한 작가 알똥말똥한 웃음의 의미가 그녀가 그린 말(馬)과 말(言) 사이에서 맴돈다. 말(言)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로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목구멍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를 말한다. 또 다른 말(馬)은 페가수스의 신화처럼 단순한 가축이 아닌 상상의 동물이면서 공상(空想)과 환상(幻想)의 또 다른 세계의 존재로 동양에서 제왕 출현의 징표였고, 초자연적 세계와 교류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말(馬) 중에서도 특히 흰 말이 신성시 되었고, 날개 달린 천마는 신이 하늘을 달릴 때 타는 것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말은 새와 함께 승천하는 영혼의 조력자임을 상징하였다. 천마총에 그려진 천마(天馬), 고구려 장천1호 고분에 그려진 천공을 날며 구름 위를 힘차게 달리는 백마(白馬), 신라와 가야 고분에서 많이 출토되는 의식용 말(馬)모양 토기, 토우 등이 이러한 관념 즉, 피장자의 영혼을 싣고 승천하여 죽은 영혼을 다음 생으로 이어준다고 믿어 부장(副葬)되었던 것이다.

난말이야_33cm x 33cm_mixed media on canvas_2012
난말이야_33cm x 33cm_mixed media on canvas_2012

가장 솔직한 감정은 말(言)로 말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馬)의 모습은 갈기를 휘날리며 힘차게 달리는 모습이다. 남성적인 야생마도, 신화속의 페가수스도 말은 달리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강렬함으로 존재로써의 생명을 얻는다. 그런데 한상영 작가의 말(馬)들은 달리지 않는다. 그녀의 작은 말은 달리지도 않고 좀처럼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의 말(馬)은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항상 분주한 듯하다. 말(言)은 우리의 중요한 소통 수단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가장 솔직한 감정은 말(言)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런 솔직한 감정은 우리의 표정, 몸짓 따위와 같은 말(言)이 아닌 비언어적 표현으로 말하곤 한다. 대화는 언뜻 말(言)로만 이루어진 듯 보이지만 말(言)이 전달하는 것은 표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말(言)은 생각보다 적극적인 표현수단이 아니다. 말(言)에는 색이 있다. 같은 말(言)을 하더라도 음성의 높낮이나, 떨림, 말하는 속도에 따라 그 뜻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이렇듯 그녀의 말(馬) 힘차게 뛰지는 않지만 섬세하고 다양한 색을 갖고 있다. 그녀가 작품 속에서 표현하고 있는 말(馬)들은 달리지 않지만, 각기 다른 색을 갖고 저마다를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말(馬)은 각자의 몸과 공간을 통해 몸짓으로 말(言)을 풀어낸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말(馬)들이 언제 뛰어다닐지, 날아다닐지,  계속 멈춰 서 있을지 알 수 없으나, 당분간 작가의 말(馬)장난은 계속 될 것 같다. 지금은 가만히 서서 한쪽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말들을 뛰게 할지, 날아다닐지, 그대로 서 있을지는 그녀가 풀어야할 과제다. 그럼에도 작가는 여전히 유쾌하다. “그녀의 말(馬)들이 말(言)한다.”

한상영 작가에게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된 동기에 대해 물어보았다. 한 작가는 텍스타일디자인(Textile Design)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텍스타일디자인(Textile Design)과 관련된 일을 해오면서 느꼈던 작가로써의 갈증과 자신만의 예술적 감성을 표현 하고 싶어서 뒤늦게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지난 11월 고양시 고양어울림누리에서 전시된 ‘고양아티스트 365展’에 작품을 출품하여 갤러리를 방문한 관람객들에게 중견 여류화가의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말’을 이용한 언어유희의 경쾌함을 입체나 부조 형태의 말 형상에 담아내는 한상영 작가의 작품은 ‘고양아티스트 365展’에서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었다. 아틀리에(atelier)에서 작품 활동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녀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며 같이 놀던 아들들과 나눈 정서적 교감도 예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가능했다고 말한다.    

예술가의 거처는 무언가 다르다. 주상복합 건물 로비를 장식하고 있는 작품이 인상 깊어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한 작가가 웃으며 말한다. 자신과 다른 작가들의 공동 작품이어서 그 자리에 걸어두게 되었다고, 자신의 작품으로 아이들을 위한 동화 작품을 완성하고 싶다고 말하는 한상영 작가는 대중적 소비를 이끌어내는 예술의 영역이 넓지 않은 현실에서, 일반인이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말했다. 2016년 그녀의 말(馬)들이 내놓는 또 다른 수수께끼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 말(馬)과 함께 나아가는 그녀가 보여줄 말(言)의 향연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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