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선진화 방향 모색하는 세계적 안목의 경제학자 _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 회장·경제학박사 · 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경제학과 BK21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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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선진화 방향 모색하는 세계적 안목의 경제학자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 회장·경제학박사 · 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경제학과 BK21 교수

갑작스레 불어 닥친 IMF를 극적으로 극복한 이후, 한국은 이어지는 미국 발 금융위기와 글로벌 경제 침체의 격랑을 해쳐나가며 특유의 저력을 과시해왔다. 그러나 때 이른 현실안주, 구시대적 각종 규제와 글로벌 경제 침체로 기존 인식과는 완전히 다른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할 순간이 찾아왔다. “후대에 굳건한 대한민국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냉혹한 채찍질을 아끼지 말아야한다”며 선진국 도약을 위한 마음가짐을 주문하는 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오정근 교수. 아시아 경제석학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민간 경제 외교의 가교역할에 매진하고 있는 그를 안암동 캠퍼스 연구실로 찾아 미래 한국 경제의 청사진에 대해 인터뷰했다.

아시아 금융경제학 석학들의 교류마당 ‘아시아금융학회’
지난해 6월 9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아시아금융학회 정기총회에서 오정근 전 고려대학교 교수가 일본 중국 태국 금융경제학자와 함께 임기 2년의 공동회장으로 선임됐다. 한국은행 외환연구팀장, 통화연구실장, 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으로 한국경제를 연구하고, 독일 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ESCAP) 컨설턴트, 동남아중앙은행 조사국장으로 해외에서도 외국학자는 물론 경제당국자들과도 교류하는 등 세계경제와 국제금융 최전선에서 활동하며 현실감각과 이론적 배경을 두루 갖춘 경제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제가 아시아지역 20여 개국 중앙은행이 회원인 동남아중앙은행의 조사국장으로 근무하던 2008년은 때마침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때라서 아시아지역 중앙은행 재무부 등 경제당국자들은 물론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기구 이코노미스트들, 유수대학 경제학자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매달 2번 정도는 국제회의를 주관하거나 참가해야 했으니까요. 30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맹위를 떨치고 있던 2009년 대학으로 옮긴 후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해 같이 연구하자는 의기투합한 국제금융 전공 교수들과 함께 창설한  한국국제금융학회의 회장직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아시아 민간 경제 교류의 청사진을 구상하게 됐죠.”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동아시아 경제는 힘없이 휘청거리는 위기상황이었고, 이를 극복하고자 각국의 학자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기에 이른다.
“통화스왑를 포함한 각종 경제대책을 학계차원에서 논의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하자는 주장이 아시아 각국 경제학자들로부터 제기됐습니다. 우선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태국 등 아시아 각국 경제학자 50여 명이 작년에 서울에 모여서 아시아금융학회를 공식적으로 창립하고 창립기념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앞서 2011년 태국 푸켓에서 개최되었던 비공식 세미나가 모태가 되었습니다. 올해는 서울과 동경에서 동아시아 금융협력에 관한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금년 컨퍼런스에서는 중국과 일본 간의 분쟁 등 위기에 처한 동아시아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필요한 동아시아 통화 금융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할 계획입니다."
사람들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를 단순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알고 있지만, 이후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외화유동성위기에서 찾아야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가 디레버리징(de-leveraging: 차입 축소)을 유발하면서 위기에 처한 국제 금융기관들이 자본 확충을 통해 자산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해 국내에 투자한 증권을 매도해 자본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주가가 폭락하고 외환시장은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해외자본이 국내에서 빠르게 빠져나가고 우리나라 상품의 수요기반인 미국 등 선진국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수출마저 급감해 성장률 하락과 큰 폭의 고용감소가 나타나는 등 본격적으로 경기침체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해 온 우리 경제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위기에 다시 한 번 취약성을 노출하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외환보유액을 확충하는 동시에 유사시 언제든 달러를 수혈 받을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확보해야하는데, 여기서 파이프라인의 역할을 국가 간 통화스왑이 수행하게 된다. 지난 2008년 외환당국이 미국과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왑 계약을 체결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하루새 177원이나 급락시킬 정도로 강력한 효과를 보여줬다.
“한미간 통화스왑을 롤 모델로 동아시아에서도 금융 안전망 구축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우리 금융 당국은 중국, 일본과 각각 500억 달러, 700억 달러 규모로 통화 스왑 규모를 확대해 독자적인 안전망을 구축해놓은 상태이나 지난 번 한일 통화스왑 연장불발이 보여준 것처럼 그 기반이 견고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학회는 민간차원의 학술교류를 통해 이러한 유대의 끈을 더욱 공고히 다져놓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오정근 교수는 자주 일본, 중국, 동남아 학자들과 교류하며 금융 협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학회 차원에서 국제 컨퍼런스 등 여러 회의를 통해 아시아의 통화 금융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동아시아 통화스왑 외에 최근 경제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일본 아베노믹스(엔저정책을 기반으로한 경기부양책)에 대한 대책도 논의 중에 있습니다. 아베노믹스는 명백한 근린궁핍화정책으로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이웃 국가들의 수출에 큰 타격을 줄 것입니다. 조만간 서울에서 개최될 국제컨퍼런스에서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과 공동대응방안을 논의할 계획입니다.”

“향후 5년은 선진국 도약의 마지막 기회가 될 터”
이어 오정근 교수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조건과 국민에게 필요한 각오를 제안했다. 그는 “안정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인당 GDP 3만 달러를 돌파해야합니다. 하지만 현재 잠재성장률은 하락 중으로써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죠. 우리는 절대 지금 향유하고 있는 수준에 만족하거나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 등 후발 국가들은 과거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속도와 집중력으로 우리 경제를 따라잡고 있는 중입니다. 그들을 따돌리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산업구조 개편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대량생산체제보다 질적 상향평준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새로운 기술집약적 산업과 고부가가치 지식집약 서비스산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육성해야합니다”라며 미래 한국의 성장모델을 제시했다.
이제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고 향후 5년이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느냐, 주저앉느냐 결정되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국민들도 잿더미에서 쌓아올린 경제신화에 만족하지 말고 후대에 더 큰 풍요를 안겨주겠다는 각오로 임해야한다.
“일단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잘 잡은 듯 보입니다. 초기 인선과정에서 난항을 겪고 있어 큰 문제입니다. MB정권 출범 초기에도 5년 동안 선진국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초기에 터진 광우병 사태로 정책 추진력이 크게 약화된 바 있는데 이런 점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당초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웠던 박근혜 정부의 경제공약도 인수위 과정을 거치면서 전례 없이 파격적인 일본의 엔저를 토대로 한 아베노믹스가 등장하는 등 새로운 한국경제의 위기요인들이 대두되고 있는 점을 반영하여 "경제부흥" "제2 한강의 기적"을 전면에 내세운 점은 현실을 제대로 본 아주 잘 된 수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어 그는 박근혜 정부가 내걸고 있는 창조경제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보였다.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에서는, ‘제1물결은 growing(키우는 것) 즉 농업에서, 제2물결은 making(만드는 것) 즉 제조업에서 부가 창출되었으나 앞으로 제3 물결에서 부의 창출 원천은 thinking(생각하는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의 근간인 첨단기술산업이나 고부가가치 지식집약 서비스산업이죠.  선진 한국 경제는 창의력 기반의 고부가가치 산업이 주력이 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분야와 IT기술을 융합한 혁신기술과 서비스 산업이 큰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싱가폴의 경우 금융, 교육, 컨벤션 산업으로 작은 국가 규모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경제력을 과시하고 있지요. 그에 반해 우리는 경제에 대한 규제가 너무 많고 복잡합니다. 즉 규제의 족쇄가 창조를 억압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경제의 핵심인 창조성은 규제가 없는 자유로운 창의성에서 나옵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난점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미래 경제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소의치병, 중의치인, 대의치국
경상남도 진주에서 당시 전란 중에 태어난 어린 오정근 교수는 항상 한국인들이 왜 이렇게 가난한가에 대해 생각했고 그러한 극빈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운명처럼 미래에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일하겠다는 비전을 세웠고 그러한 각오가 자연스럽게 경제학공부로 이어졌다고 한다.
“소의치병(小醫治病), 중의치인(中醫治人), 대의치국(大醫治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사는 개인의 병증을 치유하지만 경제학자는 국가경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 방법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대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너무도 가난하고 분배도 불평등했던 한국경제의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영국의 정치경제학에서 찾아보고자 당시 유행이던 미국유학보다는 영국유학을 결심하고 오정근 교수는 한국은행에 재직 중 영국 대사관에 문의하게 된다. 그리고 정치경제학으로 유명한 맨체스터 대학교에 영국정부장학금으로 유학한 최초의 한국학생이 되었다.
늦은 나이의 유학이니 수업에 임하는 자세 또한 진지하고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매 수업마다 어김없이 질문을 던지던 동양인 젊은이는 교수들의 눈에도 특별해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정말 많은 지혜를 배웠습니다. 특히 저의 박사학위를 지도해주신 마이클 아티스(Michael Artis) 교수님은 케인즈 학파의 거두이자, 정교수로서 명망이 대단히 높은 학자였습니다. 영국에서는 30 여명의 학과 교수들 중에 정교수는 대개 3-4 분 정도 거든요. 그런 분께서 이름 모를 국가에서 찾아온 동양인 학생의 박사학위를 직접 지도해 주시겠다고 먼저 제안해 왔어요. 대단한 파격이었습니다.”
은사에 대해 항상 감사함을 갖고 있던 오정근 교수는 귀국 후 한국은행에서 주최한 국제컨퍼런스에 아티스 교수를 초청했는데, 서울의 번화한 거리를 본 그는 크게 놀라며 “한국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잘 사는 것 같구먼.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고 말했다고.
“맨체스터 대학교는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 영국 본국과 함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54개 국가로 구성된 국제기구) 정부 관료를 초청해 경제개발론을 가르치는데 그 대부분이 한국경제론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30년 만에 최빈곤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성장한 한국을 배우기 위함이죠. 한국의 경제성장 모델은 후발주자들에게 '우리도 한국처럼만 하면 한세대 안에 선진국진입 까지 내다볼 수 있겠구나' 하는 복음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정근 교수는 학교에서 60년 이후 현재까지의 경제발전의 역사를 담은 ‘한국경제론’과 '국제금융세미나'를 가르치고 있다. 특히 한국경제론은 전반부는 현대 한국경제발전사를 개관하고 후반부는 각 분야별 현황과 문제점을 토론식으로 가르친다고 한다. 학생수는 매학기 대략 100명을 넘는 정도라고 한다.

오정근 교수는 “경제학자는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두뇌를 가져야한다”는 케임브리지의 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 1842년 7월 26일 ~ 1924년 7월 13일)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젊은 후배들에게 너무 뜨거운 가슴만 가지고 현실분석을 등한시해서도 안 되고 너무 냉철해서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어서도 안되므로 인간을 사랑하되 정확한 현실 분석을 토대로 올바른 처방을 제시하는 경제학자로 성장해 조국과 민생의 삶의 질을 한층 발전시키는 대의(大醫)가 될 것을 부탁했다. 아울러 자신도 젊은 시절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국민들을 가난에서 구해보겠다며 경제학을 시작하던 초심을 잊지 않고 있는지 이따금 자문해 보고 있다고 했다. 세계를 아우르는 시각으로 경제학 연구에 구슬땀을 흘려온 오정근 교수. 사명감과 균형감각을 두루 갖춘 그이기에 후학양성은 물론 아시아금융학회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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