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브나로드 운동’ 이끈 명저, 심훈의 <상록수>(1935)

  • 입력 2013.03.12 12:08
  • 기자명 홍이종 시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홍이종 시인’의 한국 근·현대를 움직인 ‘100권의 책’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 만큼 책을 가까이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성공할 확률이 높고 문명과 문화를 창조하는 인간으로서 더 차원 높은 품위와 교양을 쌓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책은 한 국가와 민족의 역사를 한 차원 높게 고양시키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베스트셀러와 여러 세대를 지나며 읽히는 밀리언셀러는 한 국가와 민족의 성숙을 견인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본지는 한국의 근?현대를 움직인 100권의 책을 선정, 그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본다. (편집자 註)

27 한국의 ‘브나로드 운동’ 이끈 명저
심훈의 <상록수>(1935)

◀왼쪽부터 : 심훈 선생, <상록수> 초판본(1935)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오면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 전문) 

1919년 독립만세운동 후 발표한 시 ‘그날이 오면’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격정의 문장이다. 시인의 마음으로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모집에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민족적 계몽주의를 표현한 소설 <상록수>를 발표한 심훈은 기독교의 봉사정신과 일본의 압박에 사회현상으로 나타난 민족의 자존감을 소설로 형상화했다.
심훈의 대표작이기도 한 <상록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사실적인 인물묘사와 대한제국의 사회구조인 농업과 근대적 사회구조에 대한 치열한 작가의식을 보여준 역작이다.
<상록수>는 1930년대의 농촌의 풍경과 도시의 사회구조를 세밀하게 관찰하게 하는 심훈의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1930년대 사회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은 브나로드 운동의 영향과 심훈 개인의 사상성을 엿볼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은 유한하며 국가와 사회에 개인의 존재가 나타낼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심훈은 박동혁을 통해, 이상적인 인간 본성에 충실한 작가 자신의 삶의 부분을 표현해냈다. 전국적인 문맹 퇴치운동과 미래 민중의 불안감을 농촌계몽운동으로 민족의식의 단결에 민중과 함께하는 실천적 행동을 보여준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새로운 사회적 환경의 서사구조를 보여주는 소설 <상록수>는 조선이 일본에게 강제합병 당한 문제를 지식의 모자람으로 생각하고(누구든지 학교로 와라, 배워야 무슨 일이라도 한다) 소설의 본문에서 배움의 목적을 주장했다. 
‘지식의 진보 없이는 미래는 없다’는 선구자적 예언을 보여준 심훈의 세계관은 자신의 일생을 국가의 주권을 찾기 위한 열정으로 대중적 계몽소설을 통해 사회적 문제의식을 국민에게 호소했다.
실제 농촌에서 살며 상록수를 집필해 소설의 사실성을 더한 심훈은 소설작법은 머리로 쓰는 글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예술가의 진정성으로 독자를 감동케 했다. 심훈은 1936년 사망하기까지 연극과 영화에 참여해 국민의식의 향상에 예술가의 본분을 다한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28 향토적 정서를 담지한 ‘모더니즘’의 정수
<정지용 시집>(1935)

◀왼쪽부터 : 정지용 시인, <정지용 시집> 초판본(1935)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새처럼 날러 갔구나!”
(정지용의 시 ‘유리창’ 전문)
1935년에 펴낸 <정지용 시집>은 한국의 서정과 직관, 절제된 근현대 문학의 전위적 언어로  한국 현대시의 빛남을 보여준 시집이다. 1926년 잡지 <학조>에 ‘카페프란스’를 발표하며 모던한 현대의 모습과 자신의 생활을, 이국적인 시로 표현해 시의 출발을 보여준 정지용은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휘문고보, 일본 동지사대학을 거쳐 휘문고보 교사, 이화여자대학에서 영문학과 라틴어를 가르쳤다.
1919년 일본어 수업을 배척하는 운동으로 대한제국 국민의 자존감을 표현한 실천적 생활을 보인 정지용은 잡지 <신민>, <문예시대>, <가톨릭청년>, <시문학> 등에 참여해 새로운 시의 발표로 새로운 외국의 문화가 만들어 낸 사회현상과 정신의 자유를 금하는 일본의 강압적인 정책에 맞서 국가의 전통과 아름다운 대한제국의 강산을 멋진 시어로 남겨 새로운 시의 세계를 후대에 전한 시인이다.
1930년대는 ‘모더니즘’과 ‘사회주의’로 양분된 사회적 환경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다양한 시의 언어를 발표해 많은 국민의 마음에 위안과 자존감을 세운 정지용의 시집은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문물을 보여주는 정신의 통로로 지식인과 국민에게 삶의 방향성을 보여주었다.
시의 언어는 시인 자신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존재다. 널리 알려진 정지용의 시 ‘향수’와 ‘백록담’은 시인의 눈으로 각인된 대한제국의 현재 진행형의 환경적 시어를 앞세운 자연의 소중함을 시인의 마음으로 쓴 아름다운 문장이다.
근대문명의 도구인 유리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깨달은 시인의 눈으로 본 시 ‘유리창’은 시인이 타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시어의 표본으로 유리의 안과 밖에 존재하는 삶의 모습을  시인의 직관적 사고와 투명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1930년대의 시인 정지용의 자화상 같은 시 ‘유리창’이 수록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죽음의 이유와 슬픔을 빛나는 시어로 표현한 <정지용 시집>의 탄생은 세계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대한제국의 운명을 시인의 저항의식으로 표현한 시인 정지용의 정신이 담겨진 소중한 유산이다.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