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각된 경제 살리기에 ‘훈풍’될까, ‘미풍’일까”

  • 입력 2013.03.11 14:33
  • 기자명 조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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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각된 경제 살리기에 ‘훈풍’될까, ‘미풍’일까”

박근혜 정부 불황 출구전략인 ‘지하경제 양성화’
복지재원 마련 등 필요성 크다는 게 중론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민들의 시선은 ‘경제민주화’와 ‘박근혜식 복지’가 얼마나 실현되는지에 모아지고 있다. 이를 위한 재원 마련에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것이 이른바 ‘지하경제’의 양성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후보 시절부터 경제 활성화와 복지실현의 일환으로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특히 새 정부는 별다른 증세 없이 135조 원의 복지재원을 마련하려면 ‘지하경제’의 양성화는 필수적인 단계로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하경제’ 양성화의 실현에 부정적이거나 후폭풍 때문에 오히려 역풍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견해도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조성기 기자 maarra21@epeopletoday.com

복지재원 마련 위해 반드시 필요
지난 1월 28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회의실. 당시 박근혜 당선인이 주재한 고용복지분과 국정과제 토론이 벌어졌던 회의실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며칠 전 노령연금 부족분을 국민연금으로 충당하겠다는 인수위의 입장에 많은 국민들이 반발하면서 논란이 됐던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서 박 당선인은 노인들에게 월 20만원의 기초연금을 보장해주겠다고 자신의 의지를 밝혔다.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월 2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것이었다.
재원 논란을 예상한 듯 박 당선인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강조하면서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24% 수준”이라고 구체적인 수치까지 언급했다. 더욱이 “지하경제 양성화는 ‘조세정의’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지하경제 양성화에 대한 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다시 한 번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박근혜 정부의 야심찬 재원마련 프로젝트라는 게 대선 후보 시절 캠프의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는 대선 토론회에서도 박 대통령 본인이 직접 언급했던 부분으로 특히 대선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재원 마련이 가장 시급한 데 증세를 통해서가 아니라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게 기본적인 박 대통령의 입장이기도 했다.
사실 한국사회 곳곳의 많은 분야들에 끼어 있는 잘못된 관행들이 어떻게 보면 다 ‘지하경제’라는 데 이견을 보일 이는 없다. 여기에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웠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지 ‘지하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경제민주화’의 실현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는 여야 후보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부분이었다.
지난 17대 대선에서는 민주당의 정동영 후보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 확대를 경제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사실상 박 대통령의 복지 공약들이 전반적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견해가 팽배한 상황에서 ‘지하경제 양성화’에 대해 이와 같이 강조한 것을 미루어 보면, 그나마 반쪽짜리 복지일지언정 실현시키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엿보이는 대목.
확실한 통계는 없지만 우리나라 지하경제의 규모에 대해 여당은 국내총생산(GDP)의 24~29% 규모로 파악하고 있다. 민간 전문가들과 국책 연구기관, 경제학자들은 이보다 약간 낮은 17~25% 선이 될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이 비율만큼 세금으로 거둬들여야 할 재원이 출혈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재원을 연간 약 8조원 규모로 잡고 있다. 5년 동안 40조원의 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새 정부가 공약한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전체 재원 135조원의 30% 규모로 작은 규모는 아니다. 

‘지하경제’ 범위부터 명확히 세워야‘
지하경제’의 범위는 사채나 마약 거래, 도박, 매춘 등 불법적인 경제활동과 탈세 등 합법적이지만 정부기관의 공식 통계에 나타나지 않는 음성화된 각종 경제활동을 아우른다. 때문에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 음성적인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시장의 규모와 범위, 이 시장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징세 규모 등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 조세전문가들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국세청에 ‘지하경제’를 전담할 전문기관을 두는 것이 좋다고 입을 모은다. 참여연대 강병구 조세재정센터소장은 “별도의 전담조직 구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핀란드의 경우 지하경제 조사국 등 전담기구를 두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선진국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국세청이 요구하고 있는 ‘금융정보분석원’의 현금거래정보 접근권을 적극 허가하되 세무권력의 비대화를 막기 위한 제도적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국세청의 정보이용에 대한 오?남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
음성화된 지하경제의 폐해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2011년 탈세와 자금세탁 혐의가 포착된 거래는 무려 32만 9,000여 건으로 이 가운데 국세청에 자료가 제공된 것은 전체의 2.3% 수준인 7,500여 건.
포착되지 않은 돈의 흐름은 이보다 최소 서너 배는 넘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개인의 금융정보 침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세청이, 금융위원회와 검찰이 쥐고 있는 현금거래정보 접근권을 요구하는 이유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의 본질적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은 현실적으로 ‘시기상조’라는 것.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사채나 도박 등 ‘지하경제 양성화’의 주된 타깃이 될 불법적인 검은 돈보다 저소득 자영업자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자영업자들의 경우 소득의 70% 가량이 세무당국에 신고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칫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간이과세제도’를 손볼 경우 연매출액 4,800만원 미만의 영세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 따라서 이들은 영세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후 지하경제 양성화 작업을 시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하경제’의 범위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에 대한 기준이 없어 일정한 범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조세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토대
‘유흥업소 접대비’에 대해 무조건 지하경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유흥업소의 세금 신고’가 정착됐기 때문에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배치되는 게 오늘의 현실. 또 현금을 선호하는 자영업자들의 상황을 지하경제의 단면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있어 ‘지하경제’의 명확한 기준 설정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하경제의 한 요소로 성매매가 지적되는 만큼 지하경제 양성화는 성매매 합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억측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당장 ‘지하경제 양성화’에 대한 실무적 접근보다는 명확한 기준제시가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국민들이 바라보는 ‘지하경제’도 정치인들이나 전문가들과의 ‘온도차’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수위원회 국민참여센터에 올라온 의견을 보면, 현재 실질적 비과세 영역으로 남아있는 종교인 과세문제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 주식보유세제를 입법화 하자는 의견 등이 제시됐다. 또 현금거래를 신용카드로 전환시켜 자금흐름을 투명화 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편, 과거 우리 정부가 ‘지하경제’의 폐해를 겪거나 일전을 치른 경우가 많다. 지하경제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가 1982년 발생했던 ‘장영자, 이철희 어음부도사건’였고 정부 차원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시도했던 경우는 1993년부터 시행된 ‘금융실명제’의 실시였다.
최고권력자를 등에 업은 장영자, 이철희 부부에 의해 저질러진 ‘장영자, 이철희 어음부도사건’은 당시 건실했던 기업들이 사채업자들에 의해 도산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당시 사채시장에서의 어음할인은 대표적인 지하경제의 폐해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다.
이 사건에 놀란 전두환 정권부터 금융실명제법 실시를 추진하려 했지만 경제계의 반발로 늦춰지다 지난 1993년 김영삼 정부에 와서야 시행될 수 있었다. 금융실명제의 실시로 범죄자금과 뇌물 등 지하경제의 면면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정치권의 비자금도 포착이 가능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가 완벽하게 투명한 것은 아니었다. 바로 ‘차명계좌’를 허용했기 때문. 이는 돈 세탁의 온상으로 이용돼 실명제법의 애초 의도를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2000년 들어 국민의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신용카드 활성화는 지하경제의 주요 수단인 현금거래 비중을 낮추고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반면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저금리 정책과 경기부양책의 경우는 지하경제를 확대하는 한 축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낮은 금리로 빌린 돈은 부동산에 투자되고, 시세차익은 다시 시중은행으로 들어가 재투자되지 않고 지하로 들어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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