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예술로 항거한 근현대 희곡의 ‘효시’

  • 입력 2013.01.28 14:02
  • 기자명 홍이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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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종 시인’의 한국 근·현대를 움직인 ‘100권의 책’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 만큼 책을 가까이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성공할 확률이 높고 문명과 문화를 창조하는 인간으로서 더 차원 높은 품위와 교양을 쌓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책은 한 국가와 민족의 역사를 한 차원 높게 고양시키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베스트셀러와 여러 세대를 지나며 읽히는 밀리언셀러는 한 국가와 민족의 성숙을 견인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본지는 한국의 근?현대를 움직인 100권의 책을 선정, 그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본다. (편집자 註)

25 일제에 예술로 항거한 근현대 희곡의 ‘효시’
동랑 유치진의 희곡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1933)


시각적 사실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희곡은 고조선 이후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등 민속신앙과 자연과의 동질감을 표현하기 위한 개인과 집단의식의 표출이었다. 이는 삼국시대의 ‘가면극’과 고려시대의 ‘팔관회’와 ‘연등회’, 조선시대의 ‘인형극’과 ‘탈춤’, ‘마당극’, ‘판소리’, ‘창극’, ‘신파극’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이후 1908년 원각사에서 최초의 연극인 이인직의 ‘은세계’가 초연된 이후 1921년 일본 유학생들의 모임인 극예술협회의 김우진과 조명희, 홍혜성, 고한승, 조춘광, 유춘섭 등의 신극운동으로 이어져 민족주의적인 연극의 출발을 보여주었다.
1931년 순수예술과 창작을 신극의 목표로 정한 극예술연구회의 유치진은 판소리와 창극의 문화를 잇는 신극의 대중적 출발을 알린 희곡 ‘토막’과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 ‘소’ 등의 작품으로 일반 국민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희곡 ‘토막’과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 ‘소’ 등의 작품은 당시 대한제국의 주요 경제주체인 농업인의 삶과 도시의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표현, 가난으로 해체되는 가족과 이웃의 모습을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냈으며 일제의 강압적인 수탈에 저항하는 민족정신을 담지해냈다. 상업성보다는 계몽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연극의 연출을 중요 테마로 설정한 유치진의 희곡은 일본의 감시와 압박에 ‘마의 태자’, ‘원술랑’, ‘자명고’ 등 역사적 작품을 통해 일본제국주의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근현대 연극의 기초를 세운 동랑 유치진과 극예술연구회원들은 당시 번역 작품인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헨리 입센의 ‘인형의 집’, 고골리의 ‘검찰관’, 안톤 체홉의 ‘개’  등 외국 작품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 연극의 대중화에 많은 노력을 했다.
1930년 당시 일제의 강압적인 문화정책의 와중에서도 우리 민족의 예술혼을 보여준 많은 예술인들이 있었다. 동랑 유치진과 함께 원각사 최초의 공연인 ‘춘향전’의 신재효, 협률사의 명창 김창환과 송만갑, 재담의 명수 박춘재, 신파극의 신일선과 차홍녀, 신파극연출자인 임성구, 황치삼, 장희원과 가수 윤심덕, 전옥, 아리랑으로 민족의 자존감을 세운 나운규, 극작가 신불출, 고한승, 임선규, 신극운동의 선구자 현철 등이 바로 그들이다.
동랑 유치진은 희곡을 통해 조국의 고단한 국민의 현실을 보여주었으며 연극으로 대중에게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환상과 꿈을 주었다. 그는 현대극으로 이어지는 안내자로서의 입지를 다졌으며 연극을 통한 외길인생을 실천한 근현대 연극의 산증인이었다.

 

26 시의 회화성을 보여준 역작
김기림의 <시론>(1934)


김기림의 <시론>은 한국 근현대사에 나타난 문학을 평론으로, 시인의 존재의식을 철학적 담론으로 정리한 명저다. 1933년 ‘조선일보’에 ‘시론’을 쓰기 시작해 월간지 ‘여원’에 ‘시의 회화성’이란 제목으로 시의 의미와 방향성을 제시한 김기림은 평론의 의미를 뷰퐁(Buffon)의 ‘글은 사람이다’라는 예문을 통해 시론이란 말과 글로써 표현되는 문명비판의 출발점임을 주장했다.
김기림은 <시론>의 머리말을 통해 “1930년대 조선의 풍경은 많은 지식인들이 일제의 압박을 피해 예술이라는 연막(煙幕) 가면을 쓰고 자신을 지키려 하였다”고 표현해 그의 <시론>이 대한제국의 근현대 문화비평에 논쟁적인 위치를 보였음을 드러냈다.
<시론>에서 시와 사람과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우의 수를 찾아 자신이 세상에서 배운 생활의 지식을 말과 글이 살아있는 생활인의 언어로 표현 할 것을 제시했는데, 후일 발표한 <문장론>에서도 동일하게 보여주었다.
<시론>에서 김기림은 시의 역사가 감성에서 이성으로, 사람의 감정이 점차 엷어지는 현상에 주목하고 사람이 문화의 출발이 되는 어느 순간에도 잊지 않아야 할 감각적 언어의 표현 방법 이유를, 안톤 체홉이 막심 고리키에게 보낸 편지를 인용해 표현했다.(당신이 달빛과 하나 된 이유를 나에게 보여주시오. 깨어진 병 조각에 보이는 달빛의 투명함과 빛남을.)
현대의 생활에 문화와 문학이 과학과 같이 새롭게 태어날 것을, 미래 문화의 창조는 평론의 진보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하는 김기림의 <시론>은 현대 문화의 담론이 환경적인 문화현상에 새롭게 파생되는 세계의 역사에 주목하고 있다.
김기림이 말의 의미를 현대시론의 부분으로 선택한 후 참여한 ‘구인회’는 사상성의 충족과  문학의 정의를 위해 선택한 예술모임으로 모든 사회적 단체에서 나타나는 제약적이고 규범에 얽매이는 풍습을, 자유로운 담론과 새로운 문화의 비판, 새로운 사상을 표현하는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구인회는 이태준, 이무영, 이효석, 김기림, 정지용, 박팔양, 이상, 김유정, 김태환 등으로 모더니즘과 사회주의적인 시대적 문학을 새로운 문화의 세계로 나가는 구심점으로 삼았다.
이성적 세밀함에 주목한 과학적 서정에서 출발했지만 그 과학에 종속되는 문화현상을 체험한 후 세계사적인 전체 시론의 완성으로 미래적 담론인 비평의 의미를 보여준 김기림의 <시론>은 근현대 문화의 방향성을 보여준 근현대 비평의 기수였던 시인 김기림의 역사의식을 보여준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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