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애’의 의미

  • 입력 2013.01.28 13:34
  • 기자명 김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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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의 의미

김인석|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 철학박사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돌연 엄습하는 운명의 강타를 경험한다. 이 중 진정 사랑하고 아끼던 상대와의 사별의 체험은 고강도의 부적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50대 후반의 모 씨는 10년 넘게 키우던 골든 레트리버 종 개와 사별하고서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는 개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방안에서 같이 지냈다. 모 씨는 개를 “단 한 번도 개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말 그대로 아들이었다”고 고백한다.
모 씨의 절망은 잃어버린 상대가 다시는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엄중한 사실에 근거하고 있었다. 사별은 사망한 그가 현재 살아있는 다른 그 어떤 것이나 누구에 의해서도 대체될 수 없는 존재이며, 그와의 삶은 더 이상 되풀이 될 수 없다는 의식을 일깨웠다. 잃어버린 상대가 ‘유일무이’하다는 의식이 강할수록 상실감과 절망의 정도는 그만큼 더 컸다.
사별의 경험은 모 씨를 정신적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 위기는 자기가 불가피하고 좌지우지할 수 없는 한계에 처해 있음에 대한 자각에서 발생했다. 그리고 이 운명의 사실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한층 더 참을 수 없는 것이 된다. 모 씨는 사랑하는 그가 없어져 버린 세상과 이 세상에서 영위하는 자신의 삶은 아무것도 아니며, 이런 세상과 삶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과연 모 씨는 절망의 늪에서 나올 수 있었는가? 모 씨는 절망할 근거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기 시작했다.
왜 이 좌절이 발생하는가? 자기를 초월해 있는 사랑하는 대상이야말로 자기가 살아갈 이유, 의미이다. 사람이나 동물 등을 사랑하고 사랑받음으로써 삶의 이유를 발견하고 삶을 충족시킨다. 생명으로서 사랑하는 대상의 육체를 만지고, 보고, 음성을 듣고, 냄새를 맡고, 상대의 심리적 흐름을 마음에서 경험할 때에 그 사람은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사별의 절망은 자기를 넘어 있는 사랑의 대상이 무화됨으로써 의미객체가 아울러 무화되는 경험이다. 자신의 삶이 지향해야 할 대상이 없어짐으로써 삶이 방향감각을 잃고 공허해지는 것이다.
모 씨는 물었다. 과연 지금 오관에 의해 경험할 수 있는 것만 실재(있음)하는 것인가? 나의 눈은 과거에 망자와 함께 했던 곳곳에서 현재 황량한 정경만을 본다. 하지만 사랑하던 이와 나누었던 그 모든 빛났던 경험의 순간들마저 없어져 버린 것인가?
유기체적 생명을 유지하는 것만이 사랑하는 그의 실재 및 존재를 결정짓는 유일한 척도인가?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는 사라질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 인간과 동물들이 행하고 경험했던 그 모든 아름다움과 가치, 의미 및 그들의 존재가 함께 무화되는가? 그래서 일체의 것은 허무한 것인가?
모 씨에게 자연스럽게 마음의 깨달음이 왔다. 망자가 나에게 주었던 아름답고 숭고한 그 사랑과 헌신은 그가 육체적 생명을 잃었다고 해서, 혹은 내가 사망해서 더 이상 기억할 수 없게 되었더라도, 혹은 이 지구가 우주에서 사라져 버렸다고 해서 훼손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록 그의 심리와 물질적인 육체로서의 존재양식은 없어졌을지라도, 그는 더 이상 육체적으로 죽어가지 않는 불멸의 가치 및 의미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과거 속에로 사라졌다. 그리고 과거라는 곡창 속에 보존되어 있다. 과거야말로 훼손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참된 보물창고이다. 모 씨는 절망해야할 이유가 없음을 깨달았다.
모 씨는 아울러 비로소 비애의 의미를 깨달았다. 비애를 통해 망자의 삶이 모 씨 자신 안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모 씨는 망자를 그리워하고 슬퍼하면서 망자의 모습을 관조하며 망자와 생생한 대화를 나누었다. 모 씨는 망자가 자신을 위로해주는 모습을 마음의 눈으로 보고 마음속으로 들려오는 음성을 들으면서 깨달았다.
사랑은 구원이라는 것을. 사랑은 어떤 절망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육체의 죽음이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모 씨는 통렬하게 인식했다. 사랑이야말로 죽음보다 강하며, 이 사랑 속에서 망자의 존재는 불멸하다는 사실을. 사랑이야말로 모든 생명체를 공통적으로 구원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모 씨는 관조의 경험을 통해 망자의 유기체적 생명이 사라진 세계와 삶에서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 아니라, 망자가 남긴 존재, 즉 망자가 주었던 빛나는 사랑이라는 의미와 가치가 나에게 기대하는 책임있는 답변에 몰두하는 것이 진실로 의미 있음을 깨달았다. 이 답변은 다름 아닌 사별의 가시가 주는 괴로움을 이를 악물고 참아내며, 떠난 이의 존재(사랑의 가치)가 발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며 이를 자기의 삶에서 실현하는 것이었다.
모 씨는 절망에서 벗어났다. 모 씨의 정신적 소생은 ‘로고테라피의 원리’에 입각한 치유사례에 속한다. 로고테라피는 삶의 빛난 순간들이 비록 과거의 것으로 되었더라도 무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친다. 삶은 무상하지만 결코 무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든지 단순히 깨달을 수 있는 진실인 것이다. 로고테라피는 이러한 치유원리를 ‘시간의 존재론적 치유’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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