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설아 기자
- 승인 2015.10.13 14:32
윤문영 작가는 최근 사람들의 기억에서 거의 잊혀진 독도의용대 33명을 모델로 한 ‘독도수비대’, 위안부 이야기를 소재로 다룬 ‘평화의 소녀상’ 등을 작업하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요즘 방송을 통해 똘똘이 유학생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타일러 라쉬(Tyler Rasch)와 영문판 제작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를 기존의 매체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서 쓰고 있다. 인물 스토리 작업만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1952년 미·해병 소속으로 전장에 투입돼 방탄복을 입고 전쟁터에서 50회 넘게 화약을 날라주며 미·해병들의 목숨을 살린 군마(軍馬) ‘아침해’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도 구상 중에 있다. 레클리스(reckless, 무모한녀석)라는 애칭을 얻는 ‘아침해’는 2013년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세계 100대 영웅에 뽑혔고, 해병대 공원에 ‘아침해’ 동상이 세워질 정도로 전쟁 명마로 유명한 녀석이다. 또한 인물화 전문작가로서도 국내는 물론 일본과 미주지역에서도 의뢰받아 활발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소월부터 고은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시인 100분을 두 차례나 그렸으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작가다.
만능엔터테이너, CF감독부터 일러스트레이터까지
수줍게 분홍빛 볼 터치를 한 듯 발그레한 얼굴로 즐거웠던 지나온 시간을 꺼내는 그의 표정은 인상적이었다. 그의 첫 느낌만으로도 기자는 설레기에 충분했다. “날라리 감독이었지. 편집실에서 밤새 담배 세 갑씩 피웠던...” 지금은 그림작가 윤문영으로 불리지만 그는 글, 노래, 연출 분야에서의 실력도 만만치 않다. 다재다능한 만능엔터테이너다. “친구는 아직도 나에게 ‘가수를 했었어야지’ 할 만큼 노래도 잘 했다고 말해요. 한 우물을 파야 되는데... 그때는 혼자 다했어. CF 카피 상도 두 번이나 받았어요. 팔방미인이 아니면 힘들었지...” 라며 과거를 회상하다가 만감이 교차했는지 깊은 한숨과 함께 말꼬리를 흐렸다.
“가장 좋아하는 광고는 하와이교포 여학생을 모델로 한<오란·씨>, 지금까지 안성기가 나오는 <맥스웰 커피>, <고래밥>, 김현식을 시켜 노래 부르게 한 술 광고용 음반 ‘사나이의 노래’제작한 <동해백주>예요. 다 소중하지.” 그는 감각적이고 직관력이 뛰어난 CF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도 연예계에서 존재감만으로도 영향력이 대단한 김창숙, 선우용녀, 김혜자, 김혜선, 전인화 등 수 많은 여배우들을 발굴하고, 함께 작업하면서 호흡을 맞추고, 친분을 쌓았던 감독, 촬영장에서 가수 못지않은 노래 솜씨로 정태춘의 ‘북한강에서’을 구성지게 불러 분위기를 살릴 줄 알았던 감독, 혼자서 매달 10편 이상의 CF를 뚝딱 만들어 내며 16mm 흑백필름 시대에 광고계를 주도했던 감독이다.
그리고 현재는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이 인생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작가다. <나는 지금 네가 보고 싶어>, <무던이>, <아큐정전>, <압록강은 흐른다>, <슬퍼하는 나무>, <우리 독도에서 온 편지>, <할아버지 방패> 등 70여 편의 동화책과 그림책에 그림을 그리고 직접 쓰기도 하며 작업하고 있는 그림작가이다. 그리고 ‘월간 일러스트’에 ‘Y문영의 그림 속 책읽기’를 7년째 연재하며 쉬지 않고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와이(Y), 윤문영
막상 이렇게 소개하고 보니 너무 지루하다. 아무래도 윤문영 작가를 다시 소개해야 할 것 같다. 그는 가수 ‘싸이’와 같이 가보고 싶은 마음에 ‘와이(Y)’라는 예명을 쓰고 있는 작가, 세상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모든 것은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작가, 아이유의 매력에도 빠질 줄 아는 작가,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 김애란,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좋아하는 작가, 투명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 밑그림 없이 작업하는 작가다. 아마도 그가 빠져든 소설가들의 작품에 드러난 섬세한 묘사를 비롯하여 그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모두 그의 투명한 배경에 마음껏 스케치 되었을 것이다.
또 그는 몽환적인 작품을 내놓는 UNO AKIRA나 초상화를 많이 그리는 David hockney를 흠모하는 작가다. 연륜이 묻어나면서도 담백하며 동시대성을 잃지 않는 작가라서 좋다며, 매 순간 짜릿함과 새로움을 갈망하는, 낯선 작품을 선보이고 싶어하는 그의 욕구를 고스란히 투사시켜 그들의 관념과 공상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동일시하고 싶은 무의식을 드러냈다. “너무 공들여 곱게 잘 그려진 그림은 왠지 마음에 안 들어서 힘을 빼고 다시 그리곤 합니다. 많이 고민하지 않고 그린 작품으로 보이고 싶어요.”
즉흥성이 발동하면 작업에 열을 올리다가도 한편으로는 이대로 대충 변변찮게 늙어 아무도 찾지 않는 시간이 오지 않을까하는 공포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한다. 창작의 무한근원이 되었던 자유로움을 만끽하다가도 외로움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작가다.
작가의 초상, 독도
그런데 이런 그가 왜 독도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동화를 쓰게 됐을까. 당연히 독도의 매력에 빠져들었으니까 썼겠지만.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독도의 가치를 알리고 독도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독도에서 온 편지>를 쓰고, ‘독도의 사계’를 그렸다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크다. 물론, 우리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면서도 독도에 대해 자세히 말해보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정작 한마디도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작가의 에너지를 끌어내고 펜을 움직이게 했을 동기로는 너무 약하지 않은가. 대화를 나눈 시간은 짧았지만 그는 웬만한 자극이 아니고서는 작업에 들어가지 않을 만큼 자유로움이 강한 작가였다.
“독도! 진짜 예뻐요... 아름다워요.” 그는 마치 시를 읊듯 감탄조로 내뱉었다. 독도의 아름다움을 거창하게 설명하는 그 어떤 화려한 형용사 한마디 사용하지 않고 독도를 표현한 것이 오히려 ‘독도’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반해버린 그의 순수한 감동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기자는 윤 작가가 독도에 얽힌 굉장한 사연이 있을 줄 알았다. 아마 그가 개인적인 사연을 잔뜩 늘어놓았다면 독도의 아름다움에 대한 공감은 이보다 못했겠지.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윤 작가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독도를 외로운 자신의 초상으로 그린 것임이 틀림없다.
독도(獨島), ‘외로운 섬’이라는 뜻이다. 270만 년 전 용암이 솟아올라 파도와 바람에 씻기고 깎여 만들어진 섬이다. 독도에는, 그가 작업한 <독도에서 온 편지>에는 멋진 바위와 암초, 바닷 속 산호초, 물고기, 바위들의 표정, 수평선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파란 바다, 토종삽살개, 야생초, 빨간 우체통, 괭이갈매기, 바다제비, 도요새, 가마우지, 녹색 비둘기, 바람, 밤하늘의 별들, 솔개, 뿔쇠오리, 올빼미, 물수리, 고니, 흑두루미가 있다. 모두 윤작가의 외로움이, 아쉬움이, 자유로움이, 그리고 즐거움도 섞여있을 삶의 스토리가 투사된 자연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다 이뤘다고 말하지만 마치 젊음에 대한 갈망과 술로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아요. 일과 작품활동으로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으니까...” 자유로움과 외로움은 공존할 수 밖에 없는가.
직접 작업한 12개월의 독도의 풍경을 담은 ‘독도의 사계’를 꺼내 보여주었다. 유람선, 시인, 돌고래, 패러글라이딩, 오징어잡이 배, 요트, 낚시꾼, 화가, 삽살개가 독도와 함께 있다. 독도의 평화스러운 모습이다. 이젠 전혀 외로운 독도가 아니다. 피플투데이에 매월 연재할 예정이다.
<약력>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서양화과 졸업
제5회 홍익대학미술대전 최우수상
한국방송공사(KBS)무대부 그래픽 담담
경향신문 주간부 화보담당기자
동양방송(TBC)에니메이션부 팀장
제일기획 국장
제일프로덕션 대표 및 CF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