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을 간직한 천선대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에서 내려줄 두레박을 기다리는 나무꾼이 되어 하늘의 천사를 만나고 싶어 간절한 소망으로 눈을 감고 기도를 한다. 심연(深淵)의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햇빛을 반사하는 만물상의 기암들이 진주알처럼 눈이 부시다. 겸제 정선이 이곳에서 금강산을 화폭에 옮기던 때로부터 50년이 지난 뒤 단원 김홍도는 같은 자리에 앉아 금강산을 그렸다. 그리고 다시 20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같은 자리에 앉아 그들을 흠모하며 또 다른 금강산을 그린다.정조 10년(1786)에 42세의 김홍도는
80 평생 노력하여 비로소 의 실상을 완벽히 파악하게 되어 글을 쓰면서 비장한 마음이 든다. 그 전체를 새로이 밝히게 되어 글을 쓰고 있지만 한편 두려운 마음이다. 한국 범종의 실상은 매우 고차원의 절대적 진리가 담겨 있으나 그 내용을 말하면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선학들의 범종에 관한 연구가 축적되어 있으나 올바르지 않은 부분도 있어서 혹 저항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학의 연구가 있어서 범종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다고 감사드린다. 왜냐하면 그런 글을 읽으면서 내 연구의 좌표를 알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대
1972년에 국립공원 제9호로 지정된 가야산국립공원은 경상남도와 북도가 서로 잇대어 있는 성주군, 합천군, 거창군의 경계에 위치하며, 해동의 명승지 조선8경중의 하나로 옛날 가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하여 가야산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산세의 모양이 소의 머리와도 같다 하여 우두산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 산의 높이는 해발 1,430m이다. “아홉 굽이 날아 내리는 물 격노한 우레런가떨어진 붉은 꽃잎 끝없이 물결 따라 흘러오네 무릉도원 가는 길 이제도록 몰랐더니오늘에야 산 빛조차 시샘하는 그 곳에 다다르리“ 조선초기의 문신 김종직(金
진리는 진실을 밝히는 눈이다. 진리를 발견하는 것은 눈을 뜨는 것이니 개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학의 대가이신 변만리 선생의 이론을 적용하여 설명해 본다. 우주와 인생의 진리는 우주와 인생을 환히 관찰할 수 있는 눈이다. 진리는 논리다. 논리는 상식이다. 상식은 보편적인 것이다. 진리는 영구불변이다. 누구나 쉽게 터득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상식적인 현상이다. 진리는 말한다. 우주와 모든 생명을 창조한 것은 태양의 火와 태음의 水라고 물론 기독교의 교리에서는 천지창조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이론적으로 성립하
회화는 오랜 세월 동안 제1 예술로 자리매김해 오고 있는 예술 장르다. 여러 세기에 걸쳐 생산돼 왔고 그 중 시대를 뛰어넘는 걸작들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수많은 영감과 감동을 안겨왔다. 인류는 그림 또는 예술작품들을 수용하며 대리만족을 해왔고 때로는 신앙과 철학적 사고를 고양시키는 매개체로 기능해 왔다. 나아가 어떤 작품들은 이념과 사상을 전파시키는 도구로 사용됐는가 하면 거대한 담론 형성에도 기여해 왔다. 예컨대 세기를 초월하여 문화적 비전을 제시하기까지 한 작품들은 정말 많았다고 할 수 있다.16세기 초로 가본다. 가톨릭 교황
관람객 규모는 어땠는가? “이게 재밌다.” 김 작가는 설명한다. “1,2,3관의 관람객들이 각각 다르다. 어떤 분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자녀들의 전시 작품을 보기 위해 주로 3관을 찾는다. 또 어떤 이들은 신식 도구에 밀려 구석에 처박아 두고 잊고 지내던 예전의 구식 농기구가 자신들의 산 역사였다는 것을 자각하고 향수를 느끼는 식이다. 이런 분들은 농협창고에 꾸린 ‘문화쌀농’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한편으로 제2관에서 보이는 반응은 또 다르다. 작가들의 그림을 접하고 나서 구매를 문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술제라는 큰 울타리
공화주의란 말이 갑자기 생소하게 느껴진다. 오랫동안 잊고 살아서인지 귀에 쏙 들어오지도 않는다. 억지 주장에 입각한 패거리 정치 속에서 살다 보니 그렇고, 그도 저도 아니라면 180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의회 폭거와 국가의 공적시스템인 국회를 야당 대표의 방탄용으로 사용하는 식의 횡포가 끝을 모르고 계속되는 탓일 테다.그렇다면 공화주의란 무엇인가. 함운경 대표와 외교부 외무관 출신 김동규 박사가 공동 집필한 ‘공화주의 솔루션’에 의하면 공화국이란 그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은 온전한 ‘자유로운 시민’들이 만든 자발적인 공동체를 의미한다
미술제를 치르고 난 전체적인 소감은?“지난해에 비해 규모를 확장하는 문제로 긴장을 했었다. 규모가 늘어나는 것을 두고 걱정하는 기류도 있었고. 하지만 기존의 비닐하우스 3개 동에 보절면 농협창고와 빈 점포 두 곳을 추가하여 미술제를 진행했다. 점포가 더 이상 슬럼화 하는 것을 막고 제대로 살려보려 한 것이었는데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미술제가 끝나고 나자 ‘고맙다.’며 먼저 다가와 ‘TV 잘 봤다.’고 인사를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개막식에서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합심이다. 준비할 때부터 주민들이며 관람객들의 반응이
우리는 와당의 본질을 더 추구해보기로 한다. 지난 회에서 2점만 다루었는데 2점을 더 살펴보자. 수막새에 표현된 연꽃을 현실에서 보는 연꽃이라고만 알고 있으면, 와당의 본질을 전혀 연구해 나갈 수 없다. 연꽃을 위에서 본 와당의 연꽃 모양이 보주로 보이게끔 차차 설명해 나갈 것이나, 의 실상을 모르면 풀리지 않는다. 필자가 보주의 본질을 세계에서 처음 밝혀냈기에 연꽃잎들이 보주둘도 보이는 것이고 중심의 씨방의 무량보주에서 사방으로 보주들이 확산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와당의 본질은 파악할 수 없다.
3개 공중파 방송과 24개 언론매체가 주목한 보절미술제 米美味, 남원‘보절미술제’는 단 열흘 동안 한시적으로만 기능(技能)한다. 농한기를 틈타 잠시 비어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여는 미술제이기 때문이다. 미술제의 주체도 힘 있는 사람이 아닌, 지역 농민들이다. 보절면은 인구절벽에 직면해 있는 곳이라서 애당초 문화행사를 열기에는 무엇 하나 탐탁한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첫째는 제한된 공간, 불완전한 환경 때문이다. 전시공간이 비닐하우스인지라 제대로 된 조명시설을 갖추질 못했다. 부득이 자연채광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농사와 비교
잠시 벚꽃 이야기벚꽃과 관련한 내 기억들은 아름다운 추억의 연속이다. 벚꽃이 워낙 예쁜 꽃이다 보니 벚꽃동산을 드나들며 즐거워하던 어린 시절의 일들은 지금도 오롯이 연분홍 꽃물이 들어 기억의 보물 상자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군산은 벚꽃으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114년 전 일본인들에 의해 계획도시로 출발한 항구도시 군산은 경관이 좋은 곳마다 벚꽃이 심겨있었다. 벚꽃을 자기네의 대표적인 꽃으로 내세우고 있는 일본인이 부지런히 심은 결과다. 군산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는 월명공원과 은파호수공원이고, 주변에는 지금도 근 100년의 수
들어가며11월이 시작되는 첫 금요일이었다. 전북 남원의 보절면 황벌리 은천마을 일대는 열흘간 열리게 될 미술제 개막으로 평소와는 다른 기운이 번지고 있었다. 이곳의 남다른 점이라면 주민들의 대다수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옥토를 단단히 지키고 있는 고장이라는 점이다. 총 835가구 중 67.2%가 농가로 분류되는 점을 봐서도 그렇다. 행정상으로는 25개 이장(里長) 단에 면장 한 사람, 작금의 대한민국 어디서나 안고 있는 인구 절벽의 고민을 비켜 가지 못한 이른바 한미한 시골이다. 하지만 눈여겨볼 만한 점이 있는 곳이었다. 자연 호수
백제의 관복제도에 이어서 신라의 복식 제도에 관하여 이야기를 계속해 가려고 한다. 고대국가가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적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있어, 관직 제도를 정비하고 이에 따른 복식 제도를 제정하는 것은 필수적 과정이었다. 신라는 태백산맥에 가로막혀 있는 지리적 특성상 중국과의 교류가 쉽지 않아 삼국 중 가장 발전이 늦었는데, 법흥왕 7년(520년)에 이르러 율령을 반포하고 관복제도를 제정함으로써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완성하였다. 『三國史記』 卷第四 「新羅本紀」 第四에 “七年, 春正月, 頒示律令, 始制百官公服朱紫之秩”, “
사람들은 금으로 만든 금관이나 허리띠, 그리고 금귀고리 등에 열광한다. 그런데 진흙으로 만들어 구운 기왔장에는 그리 깊은 관심이 없다. 우선 양이 많고 깨지기 쉬어서 파편들이 많다. 그러나 파편들이라도 전모를 복원할 수 있어서 귀하다. 필자는 경주 생활 15년 동안에 신라 왕궁이나 규모가 큰 사찰 터를 발굴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엄청난 양과 기와의 아름다움에 경탄해 왔다. 기와 연재도 반년은 되어가는 듯 하다. 마침내 고구려 와당을 거쳐 백제 와당을 다루어 보기로 한다. 기와는 통칭이고 와당은 수막새와 암막새 등 아름다운 문양
패션과 법률,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단어는 사실 역사상 오랜 시간 밀접하게 관계를 맺어 왔다. 과거 법과 제도로 패션과 의복을 규제하였던 역사적 기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후 계급과 신분제가 붕괴되고 개인의 패션에 대한 규제가 사라지면서 현대사회에서의 법과 제도는 패션의 창작성과 패션 산업을 보호하는 쪽으로 그 역할을 변모하였다. 본 지면을 빌려 삼국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패션과 법률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 왔는지 역사적 시간순으로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한다.패션(fashion)은 ‘특정한 시기 또는
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산수화의 고향 계림을 찾았다. 계림 공항에 도착하여 깨끗하게 단장된 국제공항으로 변모한 모습에서 발전하고 있는 중국의 일면을 확인한다. 공항의 앞 광장에 거대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항상 거대한 스케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중국인의 특기를 다시 한번 느낀다."저는 여러분의 계림 여행안내를 맡은 가이드 미스터 박이라고 합니다. 많이 피곤하시죠, 잠시 후에 제가 호텔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미스터 박, 자네 아버님 직업이 의사가 아니신가?""아니, 초면에 어떻게 그걸 아십니까?""내가 관상을 좀 볼 줄
2003년 여름 중국의 남경 서화원에서 한․중 작품 교류전을 갖기 위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남경공항의 활주로에 도착한다. 의형제로 서로의 믿음이 깊어가고 있는 남경서화원 원장 주도평을 찾아 서화원으로 달린다. 고속도로 주변의 여유로운 풍경과 현대화되어 가는 모습들이 이미 중국이 한 단계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남경시의 한복판에는 거대한 현무호가 있고 그곳에는 다섯 개의 커다란 섬이 있다. 그중에 하나인 취주섬에 남경서화원이 있다. 주도평과 나는 결속된 형제의 우애를 자랑이라도 하듯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
15년 전쯤의 일이다. 첫눈에 보아도 편안해 보이지 않는 50대로 보이는 여성 한분이 허름한 옷차림으로 필자의 사무실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늘 하는 일이지만 정중하고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사연을 들어본 즉, 어느 지인이 본인의 사정이 너무 어려운 것을 보고 송학 선생을 찾아가서 상담이라도 한번 받아보라고 하며 소개를 해주어 방문하였다는 것이었다.여성분 사연의 내용은 이렇다. 젊은 시절 마음에 들지도 않는 남자를 친정에서 밀어붙이는 바람에 억지로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생활력도 없고 술주정과 노름이 심하여 자식도 딸 하나만 낳고 살았단
1996년 봄 강소성의 남경시에 있는 남경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기 위하여 두 번째 중국 여행에 나섰다. 상해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마치 세계 중고 자동차 박물관에 초대를 받은 기분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각양각색의 중고차들이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4년 전에 방문했을 때보다 차량도 많아지고 복잡해진 거리의 풍경이 발전하고 있는 역동적인 중국을 느끼게 한다. 상해에서 남경으로 달리는 2층 고속 기차는 이국적 분위기를 더욱 느끼게 한다. 차내에는 테이블도 있고 의자도 편안하여 스케치를 하면서 여행하기에 아주 좋은 시설이다. 차창에 전개
고구려 살구모양 보주와 제3영기싹 영기문 결합문 수막새작품 명칭이 매우 길다. 간단명료하게 지으면 ‘영기문 수막새’다. 은 내가 만든 용어로 영기문 일체는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 그리고 보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체의 영기문은 조형언어로 성립되어 있는데, 조형언어는 이상의 4개의 형태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영기문은 반드시 나에게서 배워야 한다. 내가 세계 최초로 밝힌 조형언어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찾아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영원히 누구도 밝혀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세계 미술품 30